[장마당 돋보기] 돈주들은 왜 금을 사서 땅에 묻나?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국제 정세 불안 속에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의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금 수요 폭등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북한에서도 금에 대한 개인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손 기자, 그런데 북한에서 금을 판매하는 행위는 반역에 해당된다고요?

북한에서 생산된 금은 모두 김정은 비자금?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의 「귀금속관리법」에 따르면 '귀금속은 나라의 귀중한 재부이며 화폐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중요 수단(2조)'으로 '국가는 귀금속을 유일적으로 장악하고 책임적으로 관리하도록 한다'(3조)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귀금속 종류에는 금과 은, 백금, 팔라디움 등이 속하는데, 특히 금은 북한이 가장 중시하는 재원입니다. 금 생산과 수매, 보관은 중앙은행이 장악해야 한다는 게 북한 법의 근간인데요.

하지만 북한의 현실은 법과 완전히 괴리됩니다. 「귀금속 관리법」이 명시하고 있는 귀금속의 생산과 수매의 대상을 본다면 평안남도 회창 광산과 평안북도 운산 광산 등 인민 경제와 당 경제가 운영하는 국영 광산이 금 생산 대상이고, 충성의 외화벌이계획으로 연간 1g의 금을 당 조직에 무조건 바쳐야 하는 전국의 공장노동자들이 금 수매 대상입니다. 생산과 수매로 당국이 거두는 금이 적지 않다는 말인데요. 이 모든 금을 중앙은행이 보관하고 중앙은행의 승인을 받아 지출한다는 게 법 조항이지만,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가 법 위에 군림합니다.

그러다 보니 전국의 국영광산에서 채취한 금돌을 문천제련소, 정주제련소 등 국영제련소로 운송되어 제련되는 금괴는요. 국제시장에 등록된 상표와 단위에 맞게 kg으로 제련되어, 금괴 정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은행’이라는 국장을 박은 후 중앙은행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중앙당 39호실로 집계됩니다. 따라서 금이라는 상징은 최고존엄의 금고와 직결되어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되는 거죠.

북한에서 개인이 금을 보관하거나 매매하는 행위가 최고존엄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정치범으로 취급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질서는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유지되었죠. 하지만, 90년대 후반 장마당이 등장하며 무너졌습니다. 개인의 금 장사가 급증한 배경인데요. 특히 당국이 2009년 화폐교환 정책과 비사행위라는 명분을 만들어 개인이 저축한 현금과 재산을 몰수하면서 주민들에게 금의 상징은 화폐보다 안전한 자산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일부 돈주들이 암시장에서 금을 사들여 땅에 묻어두는 이유입니다.

진행자: 개인이 몰래 금을 소유하고 있다는 건 몰래 빼돌린 금이 있다는 얘기이고, 또 거래가 되는 암시장이 있다는 건데, 어디에서 빼돌린 금이 어떻게 거래가 되고 있는 겁니까?

금괴를 빼돌리면 반역자, 금돌을 빼돌리면…

손혜민 기자: 금은 일반 상품처럼 빼돌릴 수 없습니다. 제련소나 운송 도중 중앙은행 국장이 박힌 금괴를 빼돌리다 적발되면 반역자로 몰립니다. 언젠가 신의주에서 평양으로 호송되던 금괴 운송 차량이 습격 받는 사건도 있었지만, 이런 사건은 정말 드물거든요. 시장으로 유통되는 금은 대부분 기관, 기업소, 외화벌이기지, 개인이 자체로 생산한 건데요. 금을 생산하려면 금돌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 금돌을 바로 국영광산에서 빼돌리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금돌은 문제가 크게 되지 않습니다.

군 총정치국 산하 외화벌이기지의 경우 군 피복 자금을 해결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금 생산기지를 운영하기 때문에 광산을 운영하며 금돌을 자체로 캐냅니다. 하지만 일반 군부대나 지방정부 산하 외화벌이기지는 규모가 작아 광산 운영이 어려우므로 국영광산에서 캐낸 돌을 톤 단위로 사들이죠. 이게 다 합법은 아니지만, 자력갱생한다는 명분이 있어 가능합니다. 개인도 공장기업소에 부과된 충성의 외화벌이계획을 수행하는 ‘8.3조’라는 명분이 있어 광산 일대에서 금돌을 사들여 금을 추출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폐광 안에 들어가 숙식하면서 곡괭이로 금돌을 캐내고 있는 생계형 주민들은 더 많죠. 다양한 방식으로 확보한 금돌은 미분해야 되는데요. 그래서 마광기와 전기가 필수입니다. 마광기는 군수공장에나 기계공장에 용량을 주문하면 제작해주므로 돈만 있다면 언제든 살 수 있고, 전기 역시 주변 공장이나 송배전소에 돈을 주면 살 수 있습니다. 생계형 주민들은 등에 지고 다닐 마광기를 구입해 수동으로 마광기를 돌리며 금을 추출합니다. 이렇게 생산된 금은 현지에서 전문으로 사들이는 업자들이 주둔하고 있어 언제든 달러 현금으로 전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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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잠깐만 들어도 과정이 꽤나 복잡해 보이는데 금돌이 순금이 되기까지 생산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손혜민 기자: 금을 추출하는 방식은 두 가지로 분류되거든요. 수은 제련을 먼저 본다면, 마광기로 미분한 금돌 가루에 수은을 떨구면 기가 막히게 금돌가루에서 순금만 끌어당깁니다. 이 때문에 북한의 금시장에서 금을 사고 팔 때 가짜 금을 파는 사기꾼을 식별하려면 수은처럼 똑똑해야 한다는 우스개 말도 하거든요. 수은으로 추출한 금은 황색이고, 순도는 70% 정도입니다. 이렇게 추출한 금은 1g 단위로 동그랗게 빚어 페니실린 병에 넣어 보관했다가 팔죠.

이번에는 청화 제련을 보겠습니다. 주요 시약으로 시안산나트륨을 사용하는데, 시안산나트륨은 청화나트륨으로 불리기 때문에 청화 제련이라고 하는 겁니다. 즉 청화제련은 마광기로 미분한 금돌 가루를 커다란 통에 넣고 그 안에 시안산나트륨(분말)을 물에 타서 계속 붓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시안산나트륨은 수은만큼 구입이 쉽지 않으므로 한번 사용한 것을 다시 재활용합니다. 이렇게 시안산나트륨으로 여러 번 반응시킨 금돌을 다시 아연을 비롯한 시약으로 반응시키면 진흙 색깔의 금이 나옵니다.

수은으로 추출한 금은 순도가 70% 정도여서 황색이지만, 청화제련으로 추출한 금 순도는 90% 이상이므로 진흙 색깔이 되는 겁니다. 따라서 수은 금보다 청화제련 금이 훨씬 비쌉니다. 그만큼 같은 금돌을 가지고 금 추출량을 높일 수 있다는 말인데요. 특히 청화제련은 수은으로 추출한 미분 찌꺼기를 가지고도 금 추출이 가능하여 요즘 북한에서 청화제련 기술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북한 기술자, 전문 기술도 돈이 되면 다 팔아

진행자: 청화제련으로 순금을 추출하는 게 간단한 공정은 아닌 것 같네요. 그만큼 아무나 대충 배워선 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 전문적인 기술은 어디에서 익히는 겁니까?

손혜민 기자: 맞습니다. 정밀한 기술이 요구되는 청화제련 공정은 전문교육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국가과학원 과학자들이 청화제련 기술을 시장에 파는 건데요. 과학자들도 월급으로는 먹고 살 수 없으니 뭐라도 해야 살 게 아닙니까. 그러니 자신이 갖고 있는 무형의 자산인 기술자원을 시장상품으로 내놓은 겁니다. 청화제련 기술은 금을 생산하려는 개인 기지에서 과학자들이 며칠 숙박하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금이 나오는 공정을 직접 시행하면서 배워주는 겁니다.

지금까지 북한은 소비재 시장과 서비스 시장이 발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제는 기술 시장도 발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지난 20일 북한 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게재된 기사가 눈길을 끄는데요. ‘나는 과학자로서 제구실을 똑똑이 하고 있는가. 한때는 탐구의 밤을 지새우면서 삶의 보람도 찾고 높은 학위도 지녔지만, 지금은 열정이 식어져 자기의 재능과 지식을 일신의 안일과 가정의 향락을 누리는데 써먹지 않는지, 과학자의 양심으로 대답해보자’고 비판한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정부는 과학자가 오죽하면 지식을 팔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반성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진행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