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돋보기] 김씨일가 동상에 생화 꽃바구니 바치면 생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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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작년 이맘때 북한 노동신문에는 "희망찬 새해를 맞으며 수도 평양과 전국 각지의 급양봉사기지들에서 인민들을 위한 명절봉사 준비로 흥성이고 있다"며 새해를 앞두고 붐비는 꽃집 사진이 실렸습니다. 한겨울에도 생화로 보이는 꽃들이 가득했는데요. 북한 사람들에게 꽃은 마냥 예쁘게만 보일 것 같지 않습니다. 각종 행사와 명절에 의무적으로 꽃을 사서 동상에 헌화를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손 기자, 북한에는 조화를 파는 꽃집과 생화를 파는 꽃집이 따로 있다면서요?

손혜민 기자 :북한에서 꽃에 대한 이야기는 3대 세습만큼이나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꽃의 상징성이 수령 우상화에 초점이 맞춰져 생산과 소비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요. 우선 김일성의 초상화가 가정 살림집마다 내거는 것이 의무화된 1960년대 말부터 전국의 각 도, 시, 군 에는 '꽃방'이 설치되었습니다. 시 인민위원회 산하에 사진관, 도장방, 시계 수리소, 구두 수리소가 편의봉사사업소 형태로 운영되었는데, 그 속에 꽃방도 소속된 겁니다.

지방정부 산하 꽃방에서는 조화를 전문으로 만들었는데요. 당국은 가정집마다 내걸린 김일성 초상화 액틀 밑에 종이 꽃다발을 드리우도록 했거든요. 그 꽃다발을 꽃방에서 만들면 개인이 그것을 구매하여 김일성 초상화 액틀에 달았습니다. 북한은 위생 환경이 열악해 여름에는 가정 집에 파리가 많습니다. 초상화 꽃다발에 파리똥이 많으면 또 교체해야 한다는 말이죠.

정부가 운영하는 꽃방 수익이 얼마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 초상화에 꽃다발을 드리우도록 했던 당국의 조치가 없어졌는데요. 신격화의 부작용을 우려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고 우상화에 사용되던 꽃의 상징이 없어진 건 아닙니다. 명절마다 진행되는 정치행사에 참가하려면 반드시 조화로 만든 꽃다발이 필수였거든요.

예를 들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나 지방대의원 선거가 다가오면 전국의 학생들은 거리와 마을을 집체로 돌면서 ‘찬성 투표하자’고 노래하며 꽃다발을 흔들어야 합니다. 꽃다발이 꽃방에서 파는 건데요. 초등학교 때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아 쇠줄에 연분홍 진달래꽃송이가 나란히 붙은 꽃다발을 아파트 밑에 있는 꽃방에서 샀던 기억이 납니다. 꽃다발을 살 돈이 없으면 집에서 자체로 만들기도 했는데, 꽃종이가 귀하다 보니 개인이 만들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종이로 만든 조화꽃은 개인이 팔 수 없다는 얘기네요?

손혜민 기자 :북한의 꽃 문화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달라집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변화의 배경에는 식량배급제가 무너지며 부각된 장마당이 있습니다. 지방정부 산하 꽃방은 여성노동자들이 국가에서 꽃종이와 물감 등 자재를 공급받아 꽃을 만들어 판매한 수익을 국가에 바친 대가로 월급을 받았습니다. 자재 공급과 식량배급이 중단되면서 이 꽃방은 기능을 상실했죠.

꽃방처럼 지방정부 산하 편의봉사사업소에 소속되어 운영되던 구두수리소, 시계수리소가 장마당 입구로 옮겨져 개인이 운영한 것처럼 조화를 팔던 꽃방 역시 장마당 주변이나 개인 집에서 운영됐습니다. 개인 꽃방은 꽃종이와 물감 등을 장마당에서 사서 다양한 꽃을 만들어 판매했는데, 수요에 따라 가격을 정합니다. 곧 새해가 다가오지 않나요. 설날(1.1)을 맞으며 북한 당국은 태양상, 영생탑에 집체 헌화하도록 조직합니다. 조화 꽃 가격이 올라간다는 말이죠. 이렇게 시작된 개인 꽃방에서 생화도 팔기 시작한 겁니다.

진행자 :그렇게 조화를 파는 꽃집과 생화를 파는 꽃집이 구분지어지는 군요. 그런데 조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화는 비싸서 못 사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 출세를 위해서는 값비싼 생화 꽃바구니를 동상에 바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간부한테 뇌물을 고이는 것도 아니고, 김 씨 일가 동상에 생화 꽃바구니를 바치는 게 어떻게 출세로 연결이 되는 걸까요?

손혜민 기자 :우선 생화 꽃다발이 등장한 배경부터 설명한다면 신격화의 상징으로만 사용되던 꽃이 개인의 문화로 변화한 겁니다. 2000년대 중반 대도시에서 '꽃 매대'가 등장한 배경인데요. 지방정부 명의로 개인이 운영하는 꽃 매대는 주로 유동인구가 많은 김부자 동상 주변과 역세권 도로, 장마당 주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설날이나 김일성생일(4.15), 김정일생일(2.16)에 증정할 꽃을 구매하던 것이 지금은 연인의 생일이나 만남을 기념해 선물하는 문화로 바뀌었으므로 꽃 매대 역시 매일 운영합니다.

특히 새해 1월 1일은 한해를 시작하는 첫 하루이므로 생화가 잘 팔립니다. 장마당으로 가는 길에 상인들이 물통에 꽂은 생화들을 파는데요. 한 송이 가격은 비싸지 않으므로 젊은 연인들이 사거나 혹은 부모를 찾아 뵙는 자녀들도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새해 첫날 김일성, 김정일 동상 옆에서 생화를 전문 파는 꽃 매대에는 성수기를 맞이합니다. 판매하는 수량이 많은 것보다는 이런 날은 특별히 생화 꽃바구니를 주문하는 간부들과 개인 돈주들이 있기 때문이죠.

북한 당국이 신정을 비롯한 국가 명절이나 기념일에는 김일성, 김정일 동상 옆에서 누가 어떤 꽃다발을 증정했는지 그대로 기록했다가 그것은 그대로 해당 소속 기관, 기업소에 보고되어 개인평정서에 반영됩니다. 예를 들어 생화 꽃바구니 한 개에 최소 50달러, 꽃이 더 풍성하면 100달러 합니다. 가격이 비싼 생화 꽃바구니를 증정하면 충성심이 그만큼 높은 것으로 평가되므로 시장 기반을 넓히는 데도 유리하죠. 개인 돈주들이 전략적으로 계산하여 생화 꽃바구니를 구매해 증정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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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앞에서 잠깐 언급하셨지만 그럼 지금은 헌화뿐 아니라 개인끼리 선물로 주고 받는 일이 흔해진 겁니까?

손혜민 기자 :친구나 연인의 생일에 생화 꽃다발을 선물합니다. 김정은 정부 출범 이후 어머니 날이 제정(2012.11.16)되면서 북한 당국은 자식을 키워준 어머니에게 꽃다발이나 축하장을 직접 써서 선물하는 문화를 독려하고 있거든요. 그만큼 꽃 매대가 많아졌다는 의미인데요. 부유한 계층은 집안 장식용으로도 꽃을 사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합니다.

생화는 계절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요. 여름에 가격이 가장 싸고 새해가 다가오는 12월 말이면 가장 비쌉니다. 보통 생화 한 송이 가격은 내화 1500원, 꽃다발은 꽃송이 숫자와 어떤 꽃이냐에 따라 8천원~5만원으로 알려졌습니다. 생화 꽃바구니도 크기에 따라 30~100달러인데요. 꽃바구니 가운데 김정일화, 김일성화를 꽂아 주고 생화가 풍성할수록 더 비싼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진행자 :가격을 들어보니 한겨울에는 생화가 한국만큼 비싸네요. 한겨울에 생화 재배는 개인이 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손혜민 기자 :생화는 개인이 재배하는 사례가 많지 않습니다. 남새 온실은 영농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하면 되지만, 꽃 재배는 기술이 필요한 것도 있지만요. 전국의 시, 군마다 자리한 김정일온실과 김일성화 온실에서 장마당에 판매할 생화를 전문 재배하기 때문입니다. 김일성화 온실과 김정일화 온실은 2000년대부터 운영되고 있는데요. 수입산 설비를 갖추고 전기도 우선 공급되므로 생화를 재배할 조건에서는 개인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볼 수 있죠.

김일성과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에도 북한 당국은 선대 수령의 생일이 다가오면 해마다 평양에서 김일성화 축전과 김정일화 축전을 진행합니다. 정치적 행사인 축전이 시작되기 전, 중앙에서는 각 시, 군 당 위원회에 김일성화, 김정일화를 얼마씩 바치도록 지시합니다. 이를테면 꽃 계획이죠. 위에서는 김일성화, 김정일화 온실을 운영할 수 있는 자금과 자재를 하나도 공급하지 않고 시 당위원회가 자체로 해결하도록 합니다.

온실 노동자들에게 식량도 줘야 하고, 월급도 줘야 하고, 꽃을 재배할 비료와 자재 등이 필요하므로 온실 지배인의 입장에서는 ‘장마당 전용’ 꽃 재배가 필수입니다. 더욱이 겨울에 생화를 재배해 판매하면 가격이 비싸므로 고수익 장사가 아닌가요. 망할 일이 없는 건데요. 김정일화 화분도 판매되는데요. 우상화의 축소판인 김일성화 온실과 김정일화 온실이 북한식 자본주의 꽃 시장을 촉진하는 매개로 활용되는 점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