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이맘때가 되면 북한 매체에 꼭 등장하는 사진이 있습니다. 한겨울 야외에서 썰매나 스케이트,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의 사진인데요. 지난 13일에도 노동신문에 "전국 곳곳에 새로 꾸려진 야외빙상장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는 보도와 함께 썰매 타는 아이들과 부모의 사진이 실렸습니다. 사진을 보면 야간에 환하게 가로등이 켜져 있고, 썰매도 알록달록한 자동차 모양의 플라스틱 같아 보였는데요. 손 기자, 이게 실제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 맞습니까?
손혜민 기자: 늘 그랬듯이 북한 매체가 선전하는 영상은 실생활과는 거리가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노동신문이 선전하는 야외빙상장도 평양 중심으로 한정되어 있는 건데요. 사실 2000년대만 해도 일반 사람들을 위한 야외빙상장은 평양에도 없었습니다. 평양 보통강구역에 자리한 빙상관이 유일했는데, 이마저 국가 선수를 양성하거나 국제 경기가 진행되는 공적 장소였습니다. 김정은 정부가 들어선 2010년대 후반 경부터 평양시 구역마다 평양 시민들을 위한 야외빙상장이 건설되어 운영되고 있는데, 지금도 계속 건설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평양 시민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는 야외빙상장은 유료로 운영되는 건데요. 입장료부터 시작해 스케이트나 알록달록한 썰매를 시장가격으로 대여해야 하는 겁니다. 입장료는 내화 2천원으로 알려졌습니다. 스케이트와 썰매를 대여하는 비용은 시간당 5천원, 1시간 초과하면 시간당 2천원씩 초과된다고 평양에 갔다 온 평안북도 소식통이 전했습니다. 평양시 인민위원회가 평양시민을 대상으로 장사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평양시 각 구역 인민위원회마다 중앙에서 예산을 받지 못하고 자체로 예산을 마련해야 하므로 군밤 매대, 커피숍, 맥주 매대 등 시장가격으로 운영하는 봉사시설이나 계절을 이용한 문화시설을 증가해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겨울철 운영되는 야외빙상장입니다. 북한 당국이 새로 꾸려진 평양시 낙랑구역 야외빙상장을 보면 스케이트 대여실과 스케이트 수리실, 청량음료 매대를 비롯하여 봉사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고, 매일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백 명이 넘고 휴일이면 그 숫자가 수백 명으로 증가한다고 선전하는 것을 보면 수익이 적지 않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보도된 내용을 보면 전국에서 야외빙상장이 지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럼 지방 상황은 어떤 겁니까?
손혜민 기자: 최근 지방도시에서도 도 소재지마다 야외빙상장이 신설되고 있다는 소식도 있지만, 일부 지역으로 한정되고 있습니다. 야외빙상장은 일정한 부지를 마련하고 그 위에 물을 뿌려놓으면 겨울 영하 날씨에 자연히 빙상장이 되기도 하지만 유지 비용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북한에도 이상기후 현상으로 겨울이 그렇게 춥지 않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만든 빙상장은 표면이 녹을 수 밖에 없거든요. 빙상장을 유지할 전기와 원료 등이 필요한데, 그것을 해결하자면 야외빙상장을 이용하는 손님들이 많아야 합니다.
지방 사람들이 먹고 살기도 힘든데 누가 돈을 내고 야외빙상장에서 썰매 타고 스케이트를 타면서 즐기겠나요. 평성과 신의주처럼 도시 규모와 지역 시장화가 발달되어 있으면 괜찮겠지만 그 외 도시에서는 야외빙상장에 간다는 자체가 사치입니다. 그만큼 빙상장 운영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지방에서는 강이나 개울이 얼어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빙상장에서 썰매와 외발기, 스케이트를 타면서 노는 게 보편적이거든요. 특히 북한에는 제설 장비가 없기 때문에 눈이 한번 내리면 길거리와 언덕길이 온통 빙판이 되므로 빙판길이나 빙판 언덕이 야외빙상장이 됩니다. 스케이트는 넓은 빙상장이 필요하므로 빙판길이나 빙판 언덕에서 타지 못하지만, 썰매나 외발기는 좁은 빙판에서도 탈 수 있으므로 겨울철이면 차량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다니는 빙판길과 빙판 언덕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됩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지금 장마당엔 아무래도 아이들이 즐겨 타는 썰매나 외발기가 잘 팔리겠네요.
손혜민 기자: 그렇죠. 절기로 봐도 지금은 날씨가 가장 춥다는 소한과 대한이 있는 1월이지 않나요. 해마다 1월이면 장마당에서 썰매와 외발기는 물론 스케이트 장사가 성수기인 이유입니다. 주로 썰매는 소학교 학생들이 타고, 외발기와 스케이트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타는데요. 양쪽 날개에 넙적한 판자로 면이 넓게 만든 썰매는 어린 아이라도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외발기는 날개 하나에 두 발을 세워 올려 놓을 만큼 나무 조각으로 만든 것이어서 고등학교 학생도 훈련이 필요하나 썰매 속도보다 몇 배 빠른 장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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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이면 학생들이 즐기는 놀이수단으로 인기 있는데요. 썰매와 외발기는 쇠줄과 철판, 자투리 나무만 있으면 웬만한 남자들은 만들 수 있어 스케이트보다 가격이 두세 배 싼 것도 소비자의 증가를 유인합니다. 썰매와 외발기는 장마당 철물잡화점에서 판매하는데요. 언젠가 우리가 아바이들의 장사에 대해서 언급한 것처럼 썰매와 외발기도 공장에서 퇴직한 아바이들이 겨울 특수상품으로 만들어 팝니다. 가격은 어떤 자재를 썼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같은 썰매라고 해도 썰매 날이 쇠줄이냐, 일반 철판이냐, 스케이트 날이냐에 따라 가격이 다른 건데요. 예를 들어 썰매 날이 쇠줄이면 나무에 박아 놓은 쇠줄 틈새로 이물질이 들어가 빙판 쓸림이 적어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반면 썰매 날이 칼날 모양의 철판이면 빙판이 녹고 거칠어도 속도감이 좋죠.
특히 스케이트 날은 빙상 전용으로 설계되어 공장에서 제작한 것이어서 날 자체가 다릅니다. 스케이트는 국영공장에서 생산되거나 중국에서 수입된다고 하는데요. 스케이트 날이 무디면 교체할 수 있도록 나사로 조립하게 되어 있어 장마당에서 스케이트 날을 따로 팔기 때문에 그것을 사다가 썰매나 외발기를 만들면 모양도 곱고 속도도 빨라 가격이 비싸다고 합니다. 장마당에서 쇠줄을 이용해 만든 썰매와 외발기는 1만원(0.6달러)인데 비해 스케이트 날로 만든 썰매와 외발기는 3만원(1.8달러)으로 알려졌습니다. 덧붙여서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스케이트 가격도 말씀드린다면 국산 제품은 7~8만원(4.3~5달러), 중국산 제품은 15만원(9.3달러)입니다. 국산이든 수입산이든 가격이 비싸 가난한 집 자녀들은 스케이트를 타고 싶어도 타기 어렵다는 말이죠.
진행자: 겨울철 스포츠를 즐기는 데에도 빈부 격차가 크게 느껴지네요. 북한에서 아무나 즐길 수 없는 겨울 스포츠를 꼽는다면 스키가 1번이 아닐까 싶습니다. 북한 매체를 통해 영상을 보면 스키장이 늘 한적하더라고요. 북한 주민들에게 스키는 어떻게 인식되고 있습니까?
손혜민 기자: 일반 사람들에게 스키가 뭐냐 물으면 텔레비죤에서 본 적 있으니까, 날이 긴 스케이트를 신고 산꼭대기 빙판에서 썰매 탈 때처럼 양손에 꼬쟁이를 들고 날다시피 내려오는 '교예'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그만큼 대중문화로 자리잡지 못해 낯설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체육을 중시하는 김정은 정부가 출범한 이후 국제적 수준의 스키장이 건설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2014년 강원도 원산 마식령에 준공된 스키장이 있는데요. 하지만 마식령 스키장은 해외 관광객용 관광지로 꾸렸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 일반 사람들이 이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소득이 높은 중산층에서 스키장을 이용하지 않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접근성이 어려운 것도 하나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스키는 중년층보다 젊은층이 선호하는데, 신의주에서 대학생들이 겨울방학 기간 강원도 원산 마식령 스키장으로 놀러 가려면 평안북도에서 강원도로 갈 수 있는 여행증명서가 있어야 합니다. 기차가 잘 다니지 않으니 이동 수단도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도 젊은 청년들이 자금을 해결해 여행증명서도 해결하고 택시도 해결했다고 합시다. 스키장에서 숙박시설과 스키장 입장료를 지불하고 일주일 정도 스키를 타면서 즐길 정도면 저녁마다 술 파티는 필수겠죠. 이후 이들의 동향은 대학 당위원회에 보고됩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큰돈을 써가면서 시끄러운 일을 만들 필요가 없지 않나요.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고 사상조직생활이 철폐되지 않는 이상 북한의 스키 문화는 대중 스포츠로 자리를 잡는 것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진행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