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시대] ‘AI 권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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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빠르게 진화하는 정보사회 속 점점 흐려지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많은 혁신이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의 주간 프로그램 '가상의 시대' 진행에 한덕인입니다.

오늘은 ‘인공지능 권리장전’에 관한 얘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권리장전’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의 권리를 천명한 헌장과 법률, 즉 한 국가의 시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권리의 토대가 되는 문서를 뜻하는데요. 대표적으로 영국과 미국의 권리장전이 있습니다.

영국 의회가 1689년 말에 공식 승인한 영국의 권리장전은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최초로 법적 선언하는 것과 함께 왕위계승을 규정하는 내용 등을 담았는데요.

영국에서 오랫동안 팽배하게 이어져온 절대주의를 종식시키고 영국 의회정치 확립의 기반을 세운 전환점으로 보는 것이 중론입니다.

이로부터 한 세기의 세월이 지난 뒤 대서양 너머 영국 반대편의 먼 미국땅에서 1791년 12월15일부터 발효된 미국의 권리장전은 헌법의 첫 10개의 수정 법안을 뜻하는 것이기도 한데요.

미국 권리장전은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비롯해 적법 절차, 부당한 압수 및 수색 등에 대한 보호를 법으로 명문화해 연방정부가 잠재적으로 가질 수 있는 권력의 범위를 제한하고 부당한 권력 행사를 견제함으로써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의 권리장전은 200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난 현재에도 일반 미국시민들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주춧돌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공지능 권리장전’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도록 설계된 인공지능은 전례없는 속도로 성장과 진보를 거듭하며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술과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물론 때론 이런 얘기가 피부로 느낄 수 없는 미미한 변화로 여겨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인공지능이 전 세계 사회 전반에 걸쳐 기술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어떤 근거를 내세워 반박할 여지는 많지 않습니다.

지난 10월4일 미국 정부는 도래하는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해 사생활 정보 보호와 디지털 사찰 제한 등 인공지능이 야기할 수 있는 인권 문제에 대한 보호 지침서를 공개했는데요.

미국이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과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원칙을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겁니다.

‘인공지능 권리장전 청사진’(BLUEPRINT FOR AN AI Bill of Rights: MAKING AUTOMATED SYSTEMS WORK FOR THE AMERICAN PEOPLE)이란 이름을 내걸고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 명의로 발표된 해당 문건은 인공지능에 관한 하나의 윤리지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은 총 73장으로 구성된 이 ‘청사진’에서 인공지능에 관한 안전한 체계, 차별 방지, 데이터 사생활 보호, 사전 고지와 설명, 인적 대안 및 대비책 등 기업과 정부 기관들이 지켜야 할 기본 원칙 5가지를 공개했습니다.

백악관이 이같은 문건을 공개한 배경은 미국이 인공지능 기술에서 세계적인 선두주자 국가인만큼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인공지능 투자, 혁신, 실행수준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인공지능 지수’(Global AI Index)를 앞서부터 매년 발표해온 영국의 데이터분석업체 ‘토터스인텔리전스’(Tortoise Intelligence)는 지난 4월에도 새로 갱신한 올해 지수 조사결과를 공개했습니다.

토터스인텔리전스는 조사 대상 62개국의 개발능력과 기반시설, 연구 수준, 정부전략, 운영환경, 인재구성, 산업화 등 총 7개 평가 부문으로 나누어 각 순위를 매겼는데요.

미국은 7개 기준을 모두 반영한 종합순위에서 지난해에 이어 선두를 차지했고, 중국과, 영국, 캐나다, 이스라엘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올해 남한은 종합순위 5위를 차지한 지난해 조사보다 두 계단 하락해 6위에 오른 싱가포르의 뒤를 이은 7위에 이름을 새겼습니다.

남한을 뒤따른 나머지 10위권 목록은 유럽의 네덜란드와 독일, 프랑스가 모두 메웠습니다.

시장조사기관 포춘비지니스인사이트(Fortune Business Insight)는 지난 4월에 공개한 올해 보고서에서 전 세계 인공지능 시장 규모는 향후 8년 간 연평균성장률 20.1%로 2022년 3874억5천만 달러에서 2029년에는 1조 3,943억 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은 코로나 대유행 이전에 비해 모든 지역에서 높은 수요를 경험하고 있다면서, 특히 코로나가 창궐한 2020년에 집계된 전 세계 인공지능 시장의 규모는 전년도 대비 150%나 성장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인공지능은 인간의 생각과는 다른 창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공지능을 사용할 때는 인공지능의 결과가 인간의 의도와 일치하는지, 그리고 인공지능이 생성한 결과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에 미국이 공개한 인공지능 권리장전 청사진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위협하는 경우를 대비한 법적 제도를 마련해 나가는 데 있어 하나의 나침반이 될 전망입니다.

한편 최근 미국 워싱턴DC 조지워싱턴대학의 ‘디지털무역ㆍ데이터거버넌스 연구소’(Digital Trade and Data Governance Hub)는 이번에 공개된 인공지능 권리장전 청사진과 관련, 인공지능은 이제 기본적인 인터넷 검색에서부터 언어번역, 스마트시계 등 많은 미국인들이 누리는 일상의 여러 각도에서 지속적으로 동반하는 요소가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대학 연구소 측은 더불어 인공지능은 기후변화와 같이 국경과 세대를 초월하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미심장한 도움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나아가 이제 인공지능은 개인의 삶의 범위를 넘어 미국이란 국가의 경제와 안보에도 필수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인공지능의 해로운 영향을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연구소는 이번 청사진이 인공지능이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거나 잠재적으로 초래할 여지가 있는 광범위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설계하고 배포하는 과정 등 실제적인 부분에서 정책입안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보편적인 인권 존중을 보장할 계획이란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며, 이번 청사진을 두고 “큰 진전이자 큰 실망”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연구소는 나아가 향후 어느 시점에서는 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유형, 또는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기업에 대한 규제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다만 이번 청사진 발표를 기점으로 향후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를 쌓기 위한 일련의 과정 속에 무엇보다 대중들은 인공지능에 대한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한 실정이라며, 해당 사안을 주제로 활발히 진행되는 범사회적인 소통과 교육의 중요성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올해 인공지능 지수를 발표한 토터스인텔리전스의 이사로 재직 중인 덴마크 출신의 경제학자 알렉산드라 모우사비자데는 지난 5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디지털 혁신에 관한 한 연례 학회(DND Conference) 연설에서 올해 ‘글로벌 인공지능 지수’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긍정적인 예’로 “싱가포르와 이스라엘, 핀란드, 한국과 같이 글로벌 인공지능 지수 순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국가를 들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들 국가는 앞으로 인공지능기술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뒤쳐진 다른 국가들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모우사비자데 이사는 이날 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낳은 결과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에서 세르비아, 터키 아르메니아와 같은 국가로 인재가 이동하는 현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 일으킨 파장으로 인해 “이러한 인력자원(talent pool) 분포가 계속 변화하고 있다”면서 “향후 이들 국가에서도 이에 따른 연쇄 효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현재 유럽연합은 소위 인공지능 법으로 불리는 새 법안을 도입하려 논의하고 있는데요.

이 법이 제정되면 전 세계 인공지능 규제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기준이 마련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인공지능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역시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점점 더 널리 사용됨에 따라, 인공지능과 관련된 인간의 권리 문제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같은 추세에 따라 미국이 헌법을 제정한 이후 권리장전을 통해 새롭게 형성된 정부의 권력에 시민이 맞서는 장치를 고안한 것과 마찬가지로 유사시 상황에 대비한 인공지능이라는 강력한 기술에 맞서는 권리장전을 세계 각국에서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MC: 네, '인공지능 권리장전'을 주제로 전해드린 RFA 자유아시아방송의주간 프로그램 '가상의시대',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 입니다. 진행에 한덕인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한덕인,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