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빠르게 진화하는 정보사회 속 컴퓨터·인터넷 관련 사이버공간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의 주간 프로그램 '가상의 시대', 진행에 한덕인입니다.
오늘은 인터넷 검열과 더불어 인터넷 우회 접속 경로로 알려진 가상사설망에 대한 얘기를 좀 드려 보려고 합니다.
인터넷 검열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기본권이나 공공의 안전을 위협할 만할 정보를 접하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해 시행됩니다.
하지만 일부 독재 국가에선 체제 유지에 불리한 정보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요.
지난 12일에 영국의 한 보안업체가 발표한 전세계 인터넷 검열지수 보고서에서는 북한과 중국이 인터넷 검열 수준이 가장 심각한 나라로 꼽혔습니다.
지금 중동 국가 이란에선 무려 한달이 넘도록 광범위한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위가 길어지면서 이건 일반적인 시위가 아니라 하나의 혁명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혹시 여러분도 이 소식을 접하실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북한 매체를 살펴보니 이란 내에서 계속 확산하는 반정부 시위를 따로 언급하는 내용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는데요.
이란에서는 지난달 13일 마흐사 아미니라는 이름의 한 22세 이란 여성이 이슬람 율법대로 이슬람식 의복인 ‘히잡’을 공공장소에서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다 돌연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인 시위가 촉발했고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여성, 생명, 자유”와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란 구호를 연일 외치고 있습니다.
세계 인권단체들은 지금까지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뒤 당국의 강경진압으로 최소 200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체포됐다고 집계했지만 이란 정부는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인터넷상에서는 이란 시민들이 시위를 하는 도중 히잡을 벗어 던지거나 이란 최고지도자의 사진을 불태우는 등 당국에 저항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과 사진이 퍼지고 있습니다.
이란 정부는 이에 대응해 주요 온라인사회관계망 서비스를 모두 차단하는 등 인터넷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특히 특정 시간 이후로는 인터넷 접속을 전면 차단하는 강경조치에 더해 인터넷 우회 접속 수단인 VPN, 즉 가상사설망 사용 단속에도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가상사설망은 사설망이 아니면서 사설망과 같은 역할을 하는 가상 통신망의 유형으로, 전용회선을 이용해 비싸지만 안전한 사설망의 보안성과 인터넷과 같은 공중망의 비용 면에서 장점을 모두 얻기 위해 고안된 방법인데요.
기본적으로 인터넷 사용자의 위치 등 개인정보를 암호화해 정부나 인터넷 제공 업체가 볼 수 없도록 하고 차단된 사이트에 대한 접속을 제공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인터넷 검열이 심한 국가의 시민들에게는 차단된 외부 사회와 소통을 가능케 해주는 하나의 ‘창’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반대로 이란 정부의 입장에서는 가상사설망과 같은 이런 인터넷 보안 기술이 반정부 시위의 전말을 은폐하려는 노력을 무마하는 시민들의 무기로 든 ‘창’과 같은 것으로 여겨질 것으로 짐작되기도 합니다.
영국의 VPN 분석업체 ‘TOP10VPN’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특정 국가의 인터넷 접속 차단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가상사설망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업체의 시몬 미글리아노 연구 책임자는 17일 이와 관련 “전 세계의 권위주의 정권이 인터넷 접근을 방해하여 대중을 통제하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은 제한을 피하기 위해 가상사설망에 눈을 돌린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검열 방지 도구는 종종 사회관계망 차단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격변의 시기에 서로 의사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업체는 나아가 특히 이란에서는 당국이 인터넷 사진 공유 서비스 인스타그램과 대화 메신저 서비스 왓츠앱을 본격 차단한 지난달 21일을 기점으로 다음날 22일부터 이달 14일까지 가상사설망에 대한 이란 시민의 수요가 전달 평균에 비해 최대 3,082%까지 폭증했다고 전했습니다.
아울러 인터넷상에서는 이란의 현재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외부의 많은 사람들이 이란 시민들이 정부 검열을 우회해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도록 도울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이란 정부의 무차별적인 탄압 기조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한편 지난 14일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한 미국 백악관 고위관리는 이 매체에 미국 정부는 최근 이란 시위 속에 당국의 부당한 검열이 계속되는 데 따라 미국 기술 회사에 이란 정부와 관련이 없는 일반 이란 시민들에게 검열을 우회할 수 있는 개인 통신 도구를 제공할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고위관리는 미국 정부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최근 이란 시위대의 소통에 걸림돌이 될 만한 통신 제재를 완화한 사실을 전하면서, 미국 정부는 자국 기술 기업들이 이란 시민들을 적극 돕기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자국 시민에 대한 정부 주도의 인터넷 검열 소식은 이란에서만 들려오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대표적인 ‘불량국가 4인방’으로 거론되는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에서 검열 강화 기조는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사안인데요.
올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경우 전쟁을 비판하는 독립 언론사를 겨냥한 탄압과 검열을 강화했습니다.
러시아는 특히 강화된 ‘언론 통제법’을 이용해 반전 목소리를 내는 기자들을 체포해 처벌하는 사례가 계속 두드러지고 있는데, 심지어 대학신문의 학생 기자들의 언론 활동까지도 검열하고 있다고 전해졌습니다.
아울러 이번 달에는 러시아 정부가 미국의 사회관계망 서비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모기업인 메타를 테러 조직과 같은 대열에 포함시켰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러시아 정부는 지난 3월부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두고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에 대한 혐오 내용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등 극단주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는 주장을 앞세워 사용을 금지했는데, 이제는 한 발 더 나아가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는 행위 자체를 테러활동으로 간주하겠다는 겁니다.
한편 미국은 지난 7월 러시아 국민이 자국 정보 검열을 뚫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태를 스스로 파악할 수 있도록 검열 회피용 소프트웨어를 배포하는 기업에 자금을 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 정부는 당시 정보 자유와 인권 증진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비영리단체 오픈기술펀드를 통해 러시아 서비스에 나서는 가상사설망 기업을 매년 400만 달러 후원하겠다고 발표했는데요.
앞서 이란에 대한 얘기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검열 정책에 미국이 정부 차원에서 직접 개입하는 것은 주권침해 논란이 야기될 가능성 등 여러 가지로 심사숙고할 부분이 적지 않지만, 이처럼 민간을 통한 우회적인 방식으로 시민들을 지원하며 대항할 용의는 있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편 중국 공산당도 이달 제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인터넷 검열을 강화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결정하는 당대회에 앞서 온라인상에서 시진핑 주석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의견이 제기되는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건데요.
지난 13일 베이징에서는 시 주석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큰 현수막이 걸렸고, 이 현수막을 담은 사진이 사회관계망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희 방송도 이를 보도했었는데요.
이 현수막에는 ‘봉쇄 말고 자유가 필요하다. 영수 말고 선거권을 요구한다’, ‘독재자와 나라의 도적인 시진핑을 파면하자’라는 등 중국의 코로나 정책과 시 주석을 비판하는 글귀가 담겨 있었는데, 이 현수막 사진을 온라인상에 게시하거나 언급한 사용자의 계정은 중국 당국의 단속에 의해 차단됐거나 영구 폐쇄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미국 일간 월스트릿저널은 지난 13일 최근 개막한 공산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중국 내에서검열이 심해지면서 온라인상에서 시진핑 주석에 대한 중국인들의 생각이 어떤 지를 파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검열 감시단체 ‘만리 방화벽 리포트’는 최근 중국에서 사용 중이던 가상사설망이 차단됐다고 신고한 사람들의 건수가 부쩍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말씀드린 이란, 러시아, 중국의 최근 인터넷 검열 사례와 북한의 상황을 비교하면 한 가지 차이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자의 경우 원래 줬던 것을 갑자기 다시 뺏아간 것이라고 한다면, 후자인 북한은 원래 주민들에게 아무것도 준 바가 없다라는 건데요.
검열을 당하는 시민의 관점에선 둘 다 분노할 사안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편협한 목적의 국가 주도 검열이 늘어날수록 첨단 기술을 통해 이를 우회하려는 민간의 노력 또한 계속 심화할 전망입니다.
MC: 네, 인터넷 검열을 주제로 전해드린 RFA 자유아시아방송의 주간 프로그램 '가상의 시대',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진행에 한덕인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한덕인,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