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 김씨 가문의 독재체제와 미국과 유럽 등 소위 '자유 민주주의 진영' 국가에서 법이 생겨나고 적용되는 원리와 생활 속 사례 등을 대조해보고 살펴보는 RFA 주간프로그램 <너무 다른 '민의의 전당': 북한과 자유세계> 시간에 한덕인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북한 당국이 얼마 전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8차 회의에서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채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난 19일자 노동신문에는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이달 17-18일 양일간 열린 이번 회의에선 중앙검찰소 사업 정형 등 당국이 비중을 두고 있는 주요사업을 비롯해 조직 인사 문제, 예산안을 논의하고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채택했다는 내용이 실렸습니다.
이번 최고인민회의는 김정은 총비서가 집권한 이후 17번째로 개최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김 총비서가 최고인민회의 회의에 참석해 시정연설 형식으로 여러 차례 대외 메시지를 내놓은 적도 있었지만 이번 회의에는 불참했다고 합니다. 대신에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개회사를 맡았다고 하는데요.
일각에선 김 총비서의 불참을 두고 경제 부문에서 조목조목 짚을 뚜렷한 사업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최고인민회의는 북한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최고 주권기관이자 당에서 결정된 사항을 법과 제도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합니다. 미국에선 상하 양원제로 구성된 연방의회, 남한의 경우 단원제로 구성된 국회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를 대표하는 입법기관이죠.
무엇보다 북한이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다룬 것으로 전해진 사안들 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평양문화어보호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북한에서 이 방송을 듣고 계신 청취자 여러분도 혹시 최근에 이런 법률이 채택됐다는 소식을 접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을 바라보는 외부에서는 이번에 채택된 "평양문화어보호법"에 대한 여러 말이 오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법이 어떤 당국의 조치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주민분들의 입장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이 법에 대해 어떤 생각이실지 정말 궁금할 따름인데요.
많은 사람들은‘평화문화어보호법’이란 것을 처음 들으면 “이게 뭐하는 법이지?”라는 생각을 안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북한 관영매체는 ‘평양문화어보호법’은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전원 찬성으로 채택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TV (01/19/23)] 최고인민회의는 연구 및 협의회에서 제기된 의견들이 우리의 사상과 제도, 문화를 굳건히 수호하기 위한 강력한 법적 담보를 마련하는 데서 실천적 의의가 있다고 법 초안의 해당 조문에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노동신문의 경우 관련 내용을 보도하며‘동지’나 ‘동무’라는 부름말을 즐겨 써야 한다거나 사투리와 외래어를 “망탕” 쓰지 말 것을 당부하는 내용을 실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북한 민족문화의 고유의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한 수단의 일환으로 해당 법률 제정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특히 지난 2020년에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남한에서 만든 영상물을 유입하거나 배포하면 최고 사형까지 규정한 사실은 잊기 어렵습니다.
특히 최근까지도 북한 내에서는 사람들이 남한식 말투를 사용하는 것을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는 점 등에 미뤄 ‘평양문화어보호법’이란 것이 어떤 순수한 목적만을 가지고 북한 고유의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것보다 북한의 것과 다른 북한 밖의 것들을 ‘배격’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외부의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남한 통일부의 경우 북한이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채택한 의도는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데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요.
연합뉴스 등 남한언론이 보도한 데 따르면 남한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19일 기자들과 회동한 자리에서 "최고인민회의 결과 발표문의 당의 구상과 의도를 철저히 실현한다든지, 사상과 제도, 문화를 수호한다는 등의 표현을 볼 때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은가 추측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 법을 남한에서 사용되는 말투를 비롯한 한류가 북한 내부로 스며드는 현상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는지 묻는 질문에는 법률 내용이 파악되지 않아 평가할 사안이 없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동북아 안보문제 전문가인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임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는 19일 자유아시아방송과 전화통화에서 ‘평양문화어보호법’채택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면서 통치 수단의 선택지가 고갈된 북한이 ‘권력’이라는 마지막 칼을 빼들고 나선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안으로 평가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북한 통치방법은 세가지 밖에 없어요. 하나는 선물, 두번째가 권력, 세번째가 사상이거든요. 옛날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도 공산주의를 추진하면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그런 건 전혀 없어졌거든요. 근데 두번째로 선물도 그런 걸 좀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걸 당국도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런 사상도 못하고, 선물도 못하고, 남아 있는 것이 권력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부분에 대해 사람들이 좀 많은 불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불만을 사상적으로 여러가지 단속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죠.
또 해외에서 북한으로 송출되는 대북 국제방송을 비롯해 외부정보와 문화를 북한 내부에 유입하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 당국은 더욱 긴장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실 북한 뿐만 아니라 다른 해외 국가에서도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보호하려는 시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땅 위에 자리한 캐나다에서는 원주민들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려는 시도들이 있으며, 프랑스에서는 다양한 지역마다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캐나다의 경우 원주민들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이를 위해 캐나다 정부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언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지역마다 고유한 언어와 문화 보존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미국에서도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려는 시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양인들이 과거 북미 대륙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살고 있던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원주민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는 노력과 침략으로 원주민들이 영영 잃어버린 것에 대한 씁쓸한 역사를 정부차원에서 법으로 박아둔 보상제도로 최대한 상쇄하기 위한 노력 등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다양한 민족과 종교, 언어,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보존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는 더욱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밖에도 히브리 언어, 스페인어, 중국어, 타이어 등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도 있고, 그들은 자국의 문화어 언어를 지키기 위해 고유의 정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른 나라에서도 자국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어떤 법을 제정하는 사례는 흔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관련 제도는 전반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자국 고유의 문화를 지켜나가는 가치에 대한 인식 제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평양문화어는 평양지역에서 사용되는 문화어를 말하는 것으로 평양지역의 사회, 문화, 역사 등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이야기할 때 사용되는 언어라고 전해들은 바 있습니다.
물론 북한 정부도 이번 ‘평양문화어보호법’ 제정을 통해 자국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평양문화어보호법’이란 것이 북한에서는 어떤 교육이나 보상제도보다는 처벌과 통제를 상기시키는 이유에 대해서는 북한 당국 스스로가 해명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할 사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북한 정부가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이 ‘평양문화보호법’을 하나의 근간으로 삼아 주민들의 정치적 질서를 국가의 사상과 강압적으로 일치시키려 하는 경우는 분명 인간의 기본권리와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남한에서 주로‘열 받는다’라는 뜻으로 ‘킹 받는다’라는 신조어가 특히 많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쓰인다고 합니다.
북한 사회주의헌법 제1장 제18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법은 근로인민의 의사와 리익의 반영이며 국가관리의 기본무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북한에서 제정된 ‘평양문화어보호법’이란 법률이 북한 주민들의 민의를 얼마나 반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법이 북한 주민 여러분의 일상을 더욱 옥죄는 어떤 ‘킹받는’요소로 자리잡지 않기를 바라며 이번 시간을 마무리하겠습니다.
MC: 네, 최근 북한 당국이 채택한 ‘평앙문화어보호법’을 주제로 이야기를 전해드린 RFA 주간프로그램 <너무 다른 ‘민의의 전당’: 북한과 자유세계> 진행에 한덕인이었습니다.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기자 한덕인,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