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다른 ‘민의의 전당’: 북한과 자유세계] 싸워도 ‘북한 비판’은 챙기는 미 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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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북한 김씨 가문의 독재체제와 미국과 유럽 등 소위 '자유 민주주의 진영' 국가에서 법이 생겨나고 적용되는 원리와 관련 사례를 살펴보는 RFA 주간프로그램 <너무 다른 '민의의 전당': 북한과 자유세계> 시간에 한덕인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미국의 연방의회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1789년 연방헌법의 제정과 함께 첫 회기를 연 미국 연방의회는 올해 초(1월3일) 2년 주기의 118번째 새 회기를 열고 의정활동에 돌입했습니다. 내달 4일은 미 의회가 234주년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미 의회 산하 입법보조기관인 의회조사국(CRS)은 북한을 주제로 갱신해온 공식보고서에서 미 의회가 핵과 무기 개발로 인한 북한 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30년은 넘은 역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의회조사국은 해당 기간 동안 미 의회가 적어도 16번의 새 회기를 맞았고, 행정부는 6명의 대통령이 재임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들 모두가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대응책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의회는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추구하고 인권유린을 비롯한 불안정한 활동을 지속해 온 기록을 근거로 삼아 북한을 미국과 동맹국의 국가 안보와 안정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왔고, 이러한 시각은 지금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의회는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행정부가 북한이 제기하는 위협을 해결하고 역내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추진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관련 정책을 비롯한 예산의 집행을 감독하는 역할을 합니다.

의회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형성하는 데 지속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과거 냉전 시기에는 아시아의 공산주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계획을 명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자금을 제공하는 등의 방식으로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공산주의를 대응했으며, 90년대와 2000년대에 들어서는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북한에 경제적 제재를 가하고 북한을 멈추기 위한 다양한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남한에서 많이 쓰이는 신조어 중 하나로 ‘노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 안 된다는 말인 ‘노’와 국어의 ‘답’을 결합해 어떤 상황에 대한 해결 방법이 없거나 특정 거론대상의 행동이 변변치 않을 때 그냥 ‘답이 없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미국 의회가 최근까지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말하자면, 이 ‘노답’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 듯합니다.

얼마 전(1월23일) 미국 워싱턴 소재의 민간 연구기관인 미국기업연구소(AEI)에서 주최한 토론회에 나온 존 코닌 상원의원은 나날이 커지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미국의 해결책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을 받고 다소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코닌 상원의원: 한반도는 지금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은은 핵을 보유하는 것이 자신과 북한 정권의 생존을 보장하는 수단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매우 어려운데, 답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코닌 상원의원은 연방의회에 처음 발을 들인 지 20년이 넘은 공화당 중진 의원입니다. 수년 전에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최고수위’의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결의안을 대표하여 의회에 상정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에 비해 의회에서 대북제재를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라는 식의 발언을 듣는 것도 사실상 많이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미국 의회가 이미 과거에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북한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북한을 수많은 방면에서 옥죄는 조치를 법적으로 의결해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요약하자면, 미국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북한 문제에 대한 대응을 시도해왔지만, 여전히 ‘노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의회조사국이 앞서 발간한 ‘미국의 대북 외교 현황’ 보고서도 살펴볼 만합니다.

해당 보고서는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일부 조치를 이행하는 대가로 부분적 제재 완화를 제공하는 접근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 바이든 행정부가 계속해서 북한에 ‘조건없는 대화’를 제의하고 있는 가운데 만약 추후에 미국과 북한 사이에 회담이 재개된다면 미국 의원들은 바이든 정부의 접근 방식에 대한 실효성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보고서는 대북제재 완화라는 사안은 북한의 불법적인 무기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인권유린, 자금세탁, 무기거래, 국제테러, 사이버공작을 대상으로 하는 미국 현행법이 요구하는 복잡한 요건들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도 덧붙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행법에 따른 수많은 제한을 감안할 때 북한에 대한 제재완화는 근본적으로 의회의 지원, 즉 앞서부터 의회 내 팽배한 북한에 대한 불신에 어떤 극적인 변화가 없는 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시각입니다.

한편 미국 의회는 민주주의 제도의 특성상 정치적으로 다른 성향의 의원들이 함께 일하게 됩니다. 미국의 양대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이 경제 정책에서부터 사회적화두가 되는 수많은 사안들에 대해 서로 날 선 비판을 퍼부으며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총기관리법을 놓고 일반적으로 민주당은 규제를 지지하고 공화당은 총기 소유를 옹호하는 입장입니다.

낙태권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임신 중절 권리를 지지하고 공화당은 금지 논의를 지지하는 입장이며, 나아가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국가적 대처를 요구하는 가운데 공화당은 기업의 자율적 대처를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이외에도 건강보험, 세금, 이민, 국가기반시설, 국방, 외교 정책 등 정치적 대립의 근간으로 될 수 있는 분야가 많이 존재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북한 정권의 핵 개발 문제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북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당 소속과는 상관 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왔습니다.

얼마 전 118대 연방의회에서 상·하 양원의 결의로 채택하는 동일결의안 형식으로 상정된 ‘사회주의 규탄 결의안’은 “사회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1억명 이상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반복되는 기근과 대량 살상을 초래했다”고 규탄하였습니다.

이어 "(러시아)블라디미르 레닌, 이오시프 스탈린, (중국)마오쩌둥, (쿠바)피델 카스트로, (캄보디아)폴 포트, (북한)김정일, 김정은, (니카라과)다니엘 오르테가, (베네수엘라)휴고 차베즈, 니콜라스 마두로 등을 포함해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역사상 큰 범죄를 저질렀다"고 명시했습니다.

또한 사회주의 체제로 인해 “북한에서 최대 350만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며, 이러한 체제는 한반도에 ‘빈곤의 땅’과 ‘자유의 땅’을 가르는 경계선을 명확히 그어놓았다고 결의안은 꼬집고 있습니다.

결의안은 이달 2일 하원 본회의에서 328명이 찬성하고 86명이 반대한 채 채택됐습니다. 이 결의안은 공화당 의원 108명이 서명하여 발의에 동참한 반면 민주당 의원은 한 명도 지지 서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본회의 표결에서는 109명의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찬성하였지만, 이날 나온 모든 반대표는 민주당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한편 연방하원 산하 톰랜토스인권위원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짐 맥거번 하원의원은 결의안을 결에 부치는 본회의에 앞서 결의안을 “지금까지 본 가장 멍청한 결의안”이라며 비판했습니다.

맥거번 의원은 공화당이 이번 결의안을 주도한 것과 대조적으로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 총비서와 ‘좋은 관계’를 주장하던 당시 이를 규탄하지 않았던 것을 지적했습니다.

맥거번 하원의원: 결의안은 (캄보디아 독재자)폴 포트를 규탄하고 있습니다. 그를 규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그에 대해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거든요. (소련의)스탈린도 규탄하고 있는데요. 결의안은 '사회주의 규탄'을 명분으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규탄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북한의)김정은도 규탄하고 있는데요. 글쎄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 기억으론 공화당을 이끌던 전임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라거나 그에 대한 칭찬을 멈추지 않았었는데요. 공화당은 이번 결의안을 주도한 것과 대조적으로 앞서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에 대해 좋은 말을 하고 다닐 당시에는 왜 아무 규탄도 하지 않았나요?

이것 역시 양당 간의 정치적 대립의 하나일 텐데요. 공화당 주도로 상정된 이 결의안을 사실상 비꼬는 것이죠.

또 역설적으로 공화당을 깎아내리는 동시에 의회에서 북한은 민주·공화 어디서든 소위 ‘불량국가’라는 지적 역시 빼먹지 않고 챙기는 모습이 꽤 인상적입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자신을 향한 민주주의 국가들과 그들의 입법기관의 비판을 체제와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민주주의 체제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지난 1월 11일자 노동신문에 ‘자본주의법의 반인민적성격은 가리울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에서도 이러한 점은 여실히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해당 글에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가권력은 생산수단을 틀어쥐고있는 특권층의 손에 쥐여져있다”라거나, “광범한 근로인민대중에게 불행과 고통만을 들씌우는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인민들의 혐오감은 더욱 커지고있다”는 등의 주장이 실렸습니다.

근데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의 입법체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북한이 "자본주의나라"와 같은 주어를 놓고 쓴 문장에 "북한"이란 단어를 대입해도 전체적인 내용이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서도 입법기관 내에서 일반적인 관점에서 어긋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통 자유 진영 국가의 정치인들은 그들의 정치적 생명이 언론과 시민들의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대중의 선호를 끌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며,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결국 선택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북한 정치인들의 존망은 결국 권력의 핵심에 대한 지배력을 가진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런 존망을 좌우하는 키는 누가 쥐고 있는 것일까요?

한편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미국 등 민주 사회의 제도와 입법체계를 비난하는 것은 단순한 이념적인 입장이 아니라 권력 유지와 대외적 위상 유지를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됩니다.

MC: RFA 주간프로그램 <너무 다른 ‘민의의 전당’: 북한과 자유세계>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진행에 저는 한덕인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한덕인,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