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 김씨 가문의 독재체제와 미국과 유럽 등 소위 '자유 민주주의 진영' 국가에서 법이 생겨나고 적용되는 원리와 관련 사례를 살펴보는 RFA 주간프로그램 <너무 다른 '민의의 전당': 북한과 자유세계> 시간에 한덕인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싸움을 할 때 상대방에 먼저 주먹을 날리는 것, 그러니까 먼저 때리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선빵’이라는 남한식 은어가 하나 있습니다. 주로 ‘선빵을 날렸다’, ‘선빵을 갈겼다’라는 식으로 표현되는데요.
역사적으로 ‘선빵을 날리는’ 개념은 군사 전략에서도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여겨져 왔고, 전쟁을 다룬 고대 서적과 같은 데서도 이런 선제타격의 중요성은 빈번하게 언급되는 사안입니다.
이러한 전략적 개념은 현대 군사 전략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세계 안보에 큰 영향을 끼치는 ‘핵무기 선제 사용 금지(No First Use, NFU)’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핵무기는 그 어마어마한 파괴력으로 인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또 이런 핵무기를 사용하면 큰 인명 피해와 환경 파괴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핵무기는 이를 보유하는 나라에게 어떤 과시적인 권력을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핵무기 선제 사용 금지란 어떤 조건에서도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는 국가의 정책을 의미합니다.
지구상에 핵을 보유한 국가들이 버젓이 존재하는 가운데 대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상호보장의 원리를 바탕으로 ‘나는 먼저 때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과 더불어 여기에 핵이라는 극도로 위험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라는 국가적인 선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근데 북한 정권은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기 전력을 어떤 경우에 어떻게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법으로 규정한 ‘핵무력 정책 및 법령’을 채택했습니다.
북한은 핵무기 사용 조건으로 5가지 경우를 법령에 적시했는데, 핵이나 기타 대량살상무기에 의한 대북 공격, 지도부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또는 재래식 공격, 주요 전략 대상에 대한 치명적 군사적 공격 등이 포함된다고 명시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해 4월 조선인민혁명군 창설 90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어 있을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김정은 총비서가 2016년 7차 당대회 때는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것과 상당히 대조돼 북한의 핵무기 사용에 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한 단계 더 증폭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이 김 총비서의 해당 발언 이후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이같은 법령을 채택한 것은 앞서 그의 발언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일각에선 해당 법령에서 말한 외부에서 오는 공격에 대한 대응의 전제로 규정한 부분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라고 명시한 사실을 두고 사실상 김 총비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엔 언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다소 우려 섞인 해석이 제기됩니다.
영국 런던 킹스 컬리지의 살마 샤힌 박사는 지난 8일 비정부 시민단체 ‘아시아태평양 핵비확산군축 리더십 네트워크(APLN)’를 통해 공개한 ‘북한의 핵 사용 강령’(North Korea’s Nuclear Use Doctrine)이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북한이 새로 공개한 핵 사용법은 선제타격부터 보복타격까지 핵을 사용하는 데 있어 유연성을 가질 수 있도록 규정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샤힌 박사는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시사하는 북한의 이같은 법령은 “북한 정권의 관점에선 적국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역내 안보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긴장을 고조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9월 북한이 해당 법률을 채택했다는 사실을 접한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북한의 이러한 행보가 암시하는 위협에 대해 “확장적이고 불안정한 것”이라며 북한이 비핵화 회담을 재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또한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이에 앞서 지난해 8월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핵확산금지조약 회의에서도 “세계가 냉전 시대 이후 볼 수 없었던 위험에 직면해 있다”면서 전 세계의 모든 관련 국가들이 핵 위협을 세상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피력한 바 있습니다.
그는 이날 “전 세계적으로 1만3000개의 핵무기가 무기고에 있으며 허위 안보를 추구하는 국가들이 ‘종말의 무기’에 수천억달러를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들은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고 이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도 북한을 핵을 선제 타격 수단으로 활용하는 가능성을 열어 뒀다는 점을 내비쳤습니다.
지난 1월 북한 관영매체에 따르면 김 총비서는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보고를 통해 "우리 핵무력은 전쟁억제와 평화안정수호를 제1의 임무로 간주하지만, 억제 실패시엔 제2의 사명도 결행하게 될 것"이라며 "제2 사명은 분명 방어가 아닌 다른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과 더불어 미국도 이런 핵선제 사용 금지 정책에 관한 논의에서 제기되는 비판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미국의 현 바이든 행정부도 국가의 핵과 국방 관련 정책에서 여전히 핵선제사용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해 10월 공개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서 현 바이든 정부의 핵무기 전략과 정책을 소개했습니다.
핵태세검토보고서는 “핵무기는 방어적인 목적을 달성하고, 침략을 저지하며,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명시하면서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기본적인 역할”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과 동반국가들에 대한 핵 공격을 저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은 핵확산 관련 의무를 준수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들을 상대로 “핵을 사용하거나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지난해 12월 이 보고서 발간에 따른 미국의 핵 관련 정책을 분석한 보고서(2022 Nuclear Posture Review)에서 현 바이든 정부는 “핵 선제 사용 금지 정책의 선언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로 “다른 경쟁국이 개발 중인 핵과 무관한 군사 역량의 범위”를 고려할 때 그러한 정책이 “수용할 수 없는 수준의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바이든 정부가 이번에 공개한 핵태세검토보고서는 구체적으로 북한의 핵무기 사용과 관련해 “미국이나 동맹국들과 동반국가들을 상대로 사용할 시, 그 정권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는 분명한 경고를 남기고 있습니다.
또 미국은 여기서 핵확산금지조약 회원국들을 언급하며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북한은 지난 2003년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면서도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한 비회원국가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미국과 북한 간 이어지는 대치 상황을 고려한 시점에서는 이는 마치 미북 간 양측이 상대방에게 핵무기로 '선빵'이 가능하다고 예고한 셈이기에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불안과 우려는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북한 지도자와 미국의 대통령이 같은 결의 정책을 택했지만 다른 한가지는 바이든 정부의 경우 이같은 핵태세검토보고서가 공개되면서 이에 대한 자국 내 비판도 수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경우 수십년전 상원의원을 지내던 당시부터,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 시절을 시내던 당시, 나아가 대선 유세를 나서던 때에도 미국의 핵 선제 사용 금지 정책을 지지한다고 수차례 공개적으로 밝혀왔기 때문에 해당 정책의 변화를 기대한 사람들의 실망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미국 군축협회의 대릴 킴벨 상임이사는 지난해 12월 군축협회 홈페이지에 게재한 ‘바이든의 실망스러운 핵 태세 검토’란 제목의 글에서 미국의 2022년 핵정책검토보고서가 말하고 있는 “광범위하고 모호한 핵 정책 선언은 미국 핵무기의 역할을 줄이겠다는 바이든의 약속을 후퇴시킨다”고 지적했습니다.
킴벨 상임이사는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20년에도 “미국 핵무기의 유일한 목적은 핵 공격을 억제하고 필요한 경우 보호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대통령으로서 미군을 비롯한 미국의 동맹국들과 협의하여 그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또 지난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상원의원을 지내던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핵무기 선제 사용에 대한 군사적 근거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지난 회기에 이어 올해 시작한 118대 미국 연방의회에서도 미국 대통령의 핵무기 사용 권한을 제한하려는 일부 의원들의 노력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월 말 하원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의 주도로 ‘2023 핵무기 선제 사용 제한 법안(H.R.669 - Restricting First Use of Nuclear Weapons Act of 2023)’이 발의됐습니다.
지난 117대 회기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법안이 상하원에서 각각 발의된 바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법안 내용을 살펴보면 “핵무기는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전 세계의 장기적인 안보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세계 평화를 직접적으로 훼손하고 보복적인 핵 공격으로 미국을 실존적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독특하고 강력한 무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현행법상 미국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을 승인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핵무기를 사용한 미국의 선제공격은 상대방에 전쟁을 선포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라고 설명헀습니다.
따라서 미국 헌법은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을 의회에 부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고 대통령이 의회의 선전포고 없이 핵무기로 다른 나라에 선제공격을 결정하는 것은 헌법을 위반하는 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정책은 의회의 동의, 즉 선전포고 없이는 선제 핵 공격을 실시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 대통령 혼자만의 결정으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며, 그 대신 군사적 자위의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한편 지난해 12월 미국의 핵무기 운영 방식을 기술한 미국 의회조사국의 또 다른 보고서(Defense Primer: Command and Control of Nuclear Forces)에 의하면 지금의 체계는 만약 대통령이 특정 국가에 핵 공격을 하기로 선택했다면, 그 명령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국방 지휘통제 전문가 브루스 블레어의 설명을 인용해 “일단 전쟁실에 대통령의 명령이 전달되면, 그들은 1분 내에 그것을 실행할 것”이고 “즉각적인 대응이 선택되면 육상기반의 미사일은 2분 후에 발사될 것이고, 잠수함은 15 분후에 발사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습니다.
미국과 러시아는 핵무기 선제 사용 금지(NFU) 정책을 채택하지 않은 국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가들입니다.
앞서 중국과 인도의 경우 핵 선제 사용 금지 원칙을 대외적으로 천명한 바 있는데요.
미국과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 전략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며 핵무기 사용 전략 개정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복잡한 국제 정세로 양국 간의 의견일치가 쉽지만은 않은 실정입니다.
역설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탄두를 보유한 국가들이 핵무기 선제 사용 가능성을 열어 뒀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는 북한 문제만을 넘어선 것임과 동시에 자국의 안보와 군사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판단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와 같은 전략적 판단은 국제사회에서 다양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러시아는 핵무기 선제 사용 금지 정책을 공식 채택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국가들이 해당 정책을 채택한다면, 이는 국제사회에서 핵무기 사용을 규제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 등의 핵 선제 사용 금지 정책이 국제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홍보되고, 이에 대한 국제적인 인식과 이해도가 높아진다면, 북한도 이러한 규제를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는 건데요.
다만 북한이 다른 나라들의 관련 정책 채택에 대해 이를 적극적으로 따라갈 가능성은 알 수 없을 뿐더러, 미국의 입장에선 자칫 이런 정책을 공식 채택할 시 북한의 핵 위협을 더욱 부각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에 반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국내의 인권침해와 불안정한 정치 상황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와 국내의 경제 불황으로 인해 국민들의 경제적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 선제 사용 금지 정책을 채택한다면 북한과 국제사회 간의 긴장을 해소하고 국내의 안정과 국민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도발이 억제되면 북한 정부가 국내 발전과 국민 생활 개선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배경에서입니다.
다만 최근까지도 북한의 미사일 시험과 군사적 도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북한이 실제 이런 핵무기 사용 금지 정책을 채택할 가능성은 미지수라는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습니다.
북한이 핵무기 관련 체계를 통한 무력 시위를 이어간다면 북한을 둘러싼 안보문제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앞서부터 추진돼온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역시 멈춰야할 근거를 찾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는 결과적으로 북한 주민들에게도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며, 국내 경제 발전과 국민 생활 개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MC: RFA 주간프로그램 <너무 다른 '민의의 전당': 북한과 자유세계>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진행에 저는 한덕인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기자 한덕인,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