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즐거운 나의 일터>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점점 더 세분화되고 다양해지고 있는 남한 사회의 직업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전망 좋은 직업부터 탈북민들이 선호하는 직업 또 막 새롭게 생긴 직업까지 지금부터 여러분을 직업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즐거운 나의 일터>는 남북하나재단 취업지원센터 장인숙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장인숙 선생님 안녕하세요.
장인숙: 네. 안녕하세요.
이승재: 요즘 '코로나의 역설'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공장들이 코로나 때문에 잠시 멈추고, 자동차들도 밖으로 덜 나오면서 지구 곳곳의 대기질, 수질이 개선됐다는 얘기입니다. 저도 몇 년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맑고 상쾌한 봄을 느끼고 있습니다.
장인숙: 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가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깨닫게 하죠. 저는 요새 그렇게 봄꽃 냄새가 느껴지더라고요. 어릴 적 맡았던 진한 꽃향기, 그 추억이 되살아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던지요. 그래서 오늘은 향기를 만드는 직업, 조향사를 주제로 정해봤습니다. 조향사는 사람이 후각으로 느낄 수 있는 각종 향기, 냄새를 혼합해서 새롭고 독특한 향을 만들어 내는 직업입니다.
이승재: 네. 오늘 조향사군요. 향기가 포함된 제품은 물론 많은 것들이 있겠습니다만 가장 떠오르는 것이 바로 향수죠. 영화를 보면 가끔 이런 장면이 나와요. 남자주인공이 길가다가 순간 어떤 냄새를 느낍니다. '아~ 오래 전에 헤어진 첫사랑의 향기', 막 주변을 해쳐보면 멀리 흐릿하게 그녀가 지나가는, 그런 장면들이 있어요.
장인숙: 맞아요. '사람은 향기로 기억된다', '아름다운 사람은 향기가 있다' 이런 말도 있죠. 그래서 독하지 않고 은은한, 부드러운 향을 만들어 낸다는 건 정말 매력적인 일입니다. 자! 향수가 아니라 다시 향기로 넘어와서요. 조향사가 되려면요. 아주 간단하고 쉽게만 말씀드리면, 냄새만 맡고도 그것이 어떤 향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승재: 세상에는 수만 가지 향이 있을 텐데 속칭 '개코'가 되어야겠군요. 요즘 주변에 비염이나 천식환자들이 많은데 이런 분들은 좀 어려울 것 같고요.
장인숙: 그렇습니다. 조향사는 일의 특성상 화학물질이나 알레르기 유발물질이 포함된 향료도 맡아봐야 하기에, 후각기관이 건강한 분들만이 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이승재: 또 특정 냄새를 구분 못하거나 그래도 안될 것 같네요. 그렇다면 어느 정도 천부적인 능력, 재능도 타고나야 하는 직업이라 하겠습니다. 향을 잘 구분할 줄 안다면 그 다음엔 어떤 작업을 하죠?
장인숙: 이제 향을 만들어 내는 거죠. 먼저, 향이 사용될 제품의 특성을 고려해서 향의 분위기를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사과맛, 딸기맛 식품이라면 그 과일의 향과 비슷하게 달달하거나 새콤한 향이 나야 할 거고요. 화장품이라면 꽃 향기나 요즘은 신선한 숲 냄새도 인기가 있고요. 그런 다음 각각의 향료를 준비해서 계량 용기로 측정한 뒤에 향료를 배합합니다. 알콜을 첨가해서 향을 부드럽게 해주고, 이렇게 배합된 향을 종이에 묻혀서 맡아보면서 추가 향료를 또 조합하는 거죠.
이승재: 향을 조합하는 일이다 보니 특정 향료가 많이 섞였을 때랑 적게 섞였을 때가 느낌이 다를 거잖아요? 예를 들어 장미향을 2% 섞을 때와 5% 섞을 때가 다르듯이요. 좋은 향을 만들기 위해선 계속, 오래 실험하고 연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장인숙: 잘 아시네요. 조향사가 한 가지의 향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30~70가지의 단품 향료를 섞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이 걸리는 조향작업을 해야 하죠. 그래서 업계를 잘 살펴보면, 향을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일이기도 합니다만 알고 보면 지루함에도 불구하고 잘 버티는 분들이, 업계에서 오래 일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승재: 매일매일 향료를 공부하는 꾸준함과 끈기, 좋습니다. 사실 남한에서도 조향사가 아주 대중적인 직업은 아닙니다. 이 일에 큰 관심이 있는 사람, 꼭 이 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만 접근하는 직업인데요. 북한에도 향수는 물론 있겠지만 조향사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제가 만나는 탈북민은 북한에서 향수 써본 적은 없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장인숙: 북한에서는 일부 부유층만 향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 인민들은 아마 향수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으실 것 같습니다. 다만 ‘향수’가 아닌 ‘향기’는 일상생활 어디에나 쓰이고 있죠. 아침에 일어나 머리 감고 세수하고 양치하고 로션 바르고… 이게 다 향기가 포함된 제품이잖아요? 과자나 아이스크림 등 식품에도 향이 첨가되고요. 또 요즘 코로나 때문에 손세정제를 많이 쓰는데 여기도 향기가 들어가죠. 이것이 다 조향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승재: 그렇네요. 생각보다 굉장히 생활 가까이에서 조향사의 손길을 느낄 수 있네요. 조향사 하면 ‘향수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향기 만드는 사람’ 이렇게 표현해야 더 정확하겠습니다. 이렇게 향기가 일상생활에 밀접하게 연결된 만큼 더 안전하게 만들어져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장인숙: 그럼요. 당연합니다.
이승재: 향 산업은 선진국형 산업이라고 합니다.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좋은 향을 찾고, 좋은 향을 활용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부터도 화장품, 방향제, 탈취제 살 때 제일 먼저 냄새부터 맡거든요
장인숙: 남한의 향기산업시장 규모는 최근 몇년간 연평균 10%씩 상승했습니다. 2016년에 2조 5천억원을 돌파했어요. 미화로는 2억달러가 넘는 규모죠. 산업통상지원부는 현재 향기산업규모를 약 3조원 즉 2억 5천만 달러로 추정합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이 3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향기, 향수를 즐기는 문화가 더 발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승재: 향수나 화장품을 사용하는 대상층도 성인에서 중고등학생으로 확대된 것만 봐도 알 수 있겠네요. 요즘 또 인기인 것이 향이 가미된 천연 비누나 향초 등을 집에서 만들어 쓰는 것입니다. 사설기관에서도 많이 가르치더라고요. 이런 기관에서도 조향사들이 강사로 활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연구하는 직종이 적성에 안 맞는다면 가르치는 일을 할 수도 있겠군요.
장인숙: 네. 맞습니다. 조향사가 되는 것에 학력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조향사 자격증을 따면 되는데요. 자격증을 주는 기관은 ‘대한향장문화예술진흥협회’가 국내에서 가장 신뢰도 높은 기관입니다. 여기서 교육받고 자격증을 따는 데는 평균 1~2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요. 다만, 기업에 취직할 때는 조향사 자격증 뿐 아니라 4년제 대학 졸업 기준을 요건으로 삼는 곳이 많습니다. 대학에서 화학과나 화학공학과를 졸업하면 취업에 유리합니다.
이승재: 제가 생각해봐도 조향사 자격증을 딴다고 해서 바로 전문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닐 것 같아요.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만 이 일은 더욱 오랜 경력과 경험이 중요해 보이거든요. 탈북민들에게 잘 맞을까 싶네요.
장인숙: 업계에 계신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온전한 기술과 지식을 체득해서 다른 사람 도움없이 향을 개발할 정도의 실력이 되기까지는 평균 5년 이상 걸린다고 합니다.
이승재: 그렇군요. 그런데 남한에선 조향사 하면 향수부터 떠올리는 게 사실인데요. 남한에선 한 때 ‘나만의 향수 만들기’가 인기였습니다. 그동안 향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큰 기업에서만 만드는 걸로 생각해 왔는데 최근 서울의 강남이나 북촌, 홍대 등지에선 수백 가지의 향을 즉석에서 섞어서 딱 한 가지의 향을 만들어 주는 향수 가게들이 생겼어요. 남녀가 연애할 때 가기도 하는데 이런 것도 색다르고 좋더라고요.
장인숙: 나만의 향수는 여전히 인기죠. 제가 이 직업을 소개하는 이유는요.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지만, 개인적으로 돈 만큼이나 나 자신의 행복과 만족감이 직업 선택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행복하게 오래 일할 수 있는 거죠. 아까 대기업에 조향사로 취업하려면 대학도 나와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나만의 향수 가게’처럼 학력의 부담감 없이 자신만의 가게를 꿈꿔보는 것도 좋습니다. 2016년부터는 일반인들도 업체 등록을 하면 화장품이나 향수를 판매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조향사들이 이런 화장품, 향수 공방을 운영하는 경우가 꽤 됩니다.
이승재: 그렇습니다. 탈북민들 중에 집에서 비누나 향초 이런 것들을 만들어서 팔거나 선물하시는 분들은 많이 봤는데요. 이런 분들에게 조향기술도 배워보시라고 가끔 추천해드렸어요.
장인숙: 너무 좋죠. 그런 맥락에서 저도 오늘 이 직업을 소개해 드리는 건데요. 자신이 뭘 하고 싶은 지만 안다면 탈북민들이 남한에서 할 수 있는 직업은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특히 조향사라는 직업은 향에 대해 본능적으로 타고난 부분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탈북민들 중에도 관심만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테라피를 할 수도 있어요. 테라피라는 것은 치료, 치유한다는 뜻인데요. 좋은 향기가 나는 제품을 만들어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지친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거죠. 이런 길로 시도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로 뻗어갈 수 있는 일이 바로 조향사입니다.
이승재: 그렇습니다. 향기는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기분을 편하게 하기도 하고 활력을 주기도, 때로는 몸이 약한 사람에게 힘을 주기도 한다네요. 물론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이 쉽진 않겠지만, 내가 만들어낸 향이 어디선가 흩날린다는 건 정말 뿌듯한 일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여기는 서울> 진행에 이승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