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감별하는 사람-큐그레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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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즐거운 나의 일터>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점점 더 세분화되고 다양해지고 있는 남한 사회의 직업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전망 좋은 직업부터 탈북민들이 선호하는 직업 또 막 새롭게 생긴 직업까지 지금부터 여러분을 직업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즐거운 나의 일터>는 남북하나재단 취업지원센터 장인숙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장인숙 선생님 안녕하세요.

장인숙: 네. 안녕하세요.

이승재: 방송하기 전에 저희도 커피 한 잔 했습니다만 한국사람들이 참 커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장인숙: 맞아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중에서 커피를 접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달짝지근하게 가공한 커피가 아니라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 같은 커피는 원두 본연의 맛을 살려서 향은 그윽하지만 쓰거나 새콤한 맛이 나죠. 그래서 탈북민들 중에는 아직도 그 쓴 커피를 왜 마시냐는 분들도 계신데요.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커피 소비량은 엄청납니다. 한국 사람 1명이 1년에 마시는 커피는 평균 353잔으로 세계평균 132잔의 2.7배나 된다고 하죠. 이미 청취자 여러분들은 “한국이 커피공화국이다”라는 표현도 많이 접하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커피와 관련된, ‘큐그레이더’라는 직업을 준비했습니다.

이승재: 저도 커피는 향도 좋지만 각성효과가 있어서 일하다 졸릴 때 한 잔씩 하거든요. 버릇처럼 매일 한두 잔씩은 마셔서 커피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큐그레이더는 저도 처음 듣네요. 커피 하면 떠오르는 직업은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가 전부였거든요.

장인숙: 남한 분들도 대부분 그정도만 알고 계세요. 큐그레이더는 영어로 Quality Grader의 약자입니다. ‘품질 등급을 매기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이승재: 아, 커피의 품질 등급을 결정하는 전문가들이군요.

장인숙: 그렇습니다. 큐그레이더는 커피의 원재료인 생두의 품질과 맛, 특성을 감별해서 좋은 커피콩을 선별하고 또 커피를 평가하는 일을 하는 거죠.

이승재: 저도 커피를 좋아해서 이분들이 어떤 식으로 커피를 평가하는 건지 더 궁금해지네요.

장인숙: 커피 품질 평가 과정을 ‘커핑’이라고 하는데요. 그 과정을 설명드리면요. 먼저 커피나무 열매 즉 ‘생두’를 볶아 원두로 만듭니다. 그렇게 만든 ‘원두’의 향을 맡아보고 원두를 분쇄한 뒤에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를 만들죠. 완성된 커피를 맛보는 과정을 거쳐서 커피의 품질 등급을 결정합니다. 아까 말씀하셨지만 ‘커피 전문가’ 하면 ‘바리스타’를 많이 알고 계실 거예요. 큐그레이더와 바리스타의 차이점을 간단하게 설명드리면요. 일단 커피콩은 원산지 별로 맛과 향이 다 다르죠. 그래서 어떤 커피콩을 들여와서 얼마만큼 볶아야 하는지 결정하고 거기에 따라 달라지는 맛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고 평가하는 사람이 큐그레이더고요. 바리스타는 볶은 커피콩을 분쇄하고 커피 원액을 추출해서 다양한 맛의 커피를 만드는 사람인 거죠.

이승재: 그렇군요. 생각보다 큐그레이더의 일이 진짜 광범위하네요.

장인숙: 그럼요. 큐그레이더는 커피 재배 과정까지 알아야 합니다. 기후 및 재배방식부터 원두가 커피로 추출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지켜보고요. 후각과 미각을 이용한 여러 실험을 통해 커피 등급을 책정하죠. 예를 들어 아프리카 커피 농장에서 생두를 구매할 때 가격을 매기고 수입하는 일도 큐그레이더의 몫이고 또 한국에서 생두업체와 소비업체… 예를 들면 커피가게 같은 곳이요. 그 사이에서 적절한 가격을 매기는 일도 합니다.

이승재: 제가 보기에 이 직업의 가장 중요한 점은 커피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네요. 커피가 여러 종류가 있죠. 개당 0.2달러 정도하는 봉지커피가 있고요. 이건 북한 분들도 장마당에서 많이 접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매장에서 파는 커피는 보통 3~4달러, 비싸면 7~8달러 하는 것도 있어요.

장인숙: 사실 소비자들은 커피의 품질을 모르고 마실 때도 많습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저도 가끔, 비싼 커피를 마실 땐 진짜 품질이 좋은 게 맞나 가끔은 의심을 하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정확하게 커피 품질을 감별하는 ‘큐그레이더’가 필요한 것이죠.

이승재: 그렇군요. 한국에 큐그레이더로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되죠?

장인숙: 한국에 큐그레이더 자격을 갖춘 분들은 3000여 명이나 된다고 해요. 전 세계에 있는 6000여명의 큐그레이더 중 절반에 해당합니다. 이분들 모두가 큐그레이더 일을 하시는 건 아니고요. 대개 카페를 운영하는 분들이 좀더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해 큐그레이더 자격증을 따신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큐그레이더 자격을 취득하면 커피제품을 만드는 대기업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또 대학이나 대학원, 연구소에서 큐그레이더를 양성하는 교육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이승재: 큐그레이더가 되신 분들은 아마도 ‘커피 도사’가 아닐까 싶은데요. 혹시 원두 냄새만 맡고도 이건 아프리카 제품, 저건 남미 것, 이렇게 맞출 수 있어야 하나요?

장인숙: 정확히 맞습니다. 큐그레이더 자격시험은 실기와 필기로 나눠지는데요. 실기시험엔 22가지가 있습니다. 커피의 3대 맛인 신맛, 짠맛, 단맛의 종류와 강도를 구별해 내고요. 커피 속의 최대 9가지 향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생두와 이물질 등 문제가 있는 결점두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하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맛으로 원산지도 식별해야 합니다. 따라서 후각기능과 미각기능이 좋은 분들이 해야 하겠죠? 차분한 성격과 강한 집중력도 필요하고요. 여기에 커피 원산지나 커피를 둘러싼 문화에 대해 꾸준히 공부한다면 훨씬 도움될 것 같습니다.

이승재: 저도 20년 이상 커피를 마셨지만 이제 겨우 신선한 것과 신선하지 않은 것 정도만 구분합니다. 아무래도 저는 안 될 거 같은데, 커피 좋아하시는 분들은 관심이 많을 것 같아요.

장인숙: 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고들 하죠. 커피맛도 아는 만큼 풍부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저도 배워보고 싶습니다. 큐그레이더가 되기 위해선 교육수준, 나이, 성별 등의 조건이 필요없거든요. 국내에 교육기관이 12개 정도 있는데 누구라도 여기서 교육받고 자격을 취득하면 정식 큐그레이더로 일할 수 있습니다.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에서 발행하는 자격증이지만, 한국에서도 시험을 볼 수 있고 영어를 몰라도 시험보는덴 무리가 없다고 합니다.

이승재: 선생님이 준비하신 자료를 보니까, 이 자격증은 6일간 시험을 보고, 시험 비용만 해도 약1,500달러(170만원) 정도 되네요.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커피시장이 날로 커지는 걸 생각하면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장인숙: 맞아요. 특히 북한도 커피 시장이 열리면 남한 못지 않은, 엄청난 소비가 일어날 겁니다. 개성공업공단에서도 가장 인기 상품이 초코파이와 커피믹스였다는 건 널리 알려졌죠. 남한에서 열리는 탈북민들과 함께하는 행사에서 꼭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커피믹스인데요. 예전엔 남한도 처음 커피믹스에 대한 소비가 엄청나게 증가하다가, 차츰 원두커피 소비로 이어졌잖아요. 커피믹스로 커피의 맛과 향을 알게 되었으니, 점점 더 좋은 원두를 찾게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승재: 그러고 보니 한국에 와서 커피 맛에 반해 바리스타가 된 탈북청년들도 많더라고요.

장인숙: 네. 저도 잘 아는 탈북민 바리스타가 있는데요. 그분이 말씀하시길, 원두에 뜨겁게 물을 붓고 천천히 커핏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마음도 정화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추출한 커피를 좋은 사람들과 나누면 마음이 더욱 평온해진다고요. 커피는 맛과 향만이 아닌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통일 후 북한에서 북한만의 커피 맛과 향,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그 일을 탈북민들이 준비한다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승재: 점점 더 늘고 있는 탈북청년 바리스타 중에서도 큐그레이더가 곧 나오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저는 방송 끝내고 얼른 뜨거운 커피 한 잔 마셔야겠네요. 오늘도 장인숙 선생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장인숙: 네. 감사합니다.

이승재: 지금까지 <여기는 서울> 진행에 이승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