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즐거운 나의 일터>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점점 더 세분화되고 다양해지고 있는 남한 사회의 직업을 살펴보고 있는데요. 전망 좋은 직업부터 탈북민들이 선호하는 직업 또 막 새롭게 생긴 직업까지 지금부터 여러분을 직업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즐거운 나의 일터>는 남북하나재단 취업지원센터 장인숙 선생과 함께합니다.
이승재: 장인숙 선생님 안녕하세요.
장인숙: 네. 안녕하세요.
이승재: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보육교사에 대해 알아봅니다. 북한의 보육원과 유사한 직업인데요. 남한에서 ‘어린이집’이라 불리는 탁아기관에서 영유아의 보육을 담당하는 분들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아이들을 돌볼 수 있죠.
장인숙: 네. 먹이고 씻기는 등의 돌보기는 물론이고요. 보육교사는 영유아의 신체적, 사회적, 지적 발달이 균형적으로 이뤄지도록 교육방법을 연구하고 적용하는 일도 합니다.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 예의와 범절을 가르치고, 건강관리도 해주고요. 부모에게는 상시 아이의 발달 상태를 전달하면서 아이들 개개인에 맞는 교육방법을 상담해 주기도 합니다.
이승재: 네. 어린이집과 그 외 탁아기관에서 일하는 보육교사. 많은 탈북민 여성들이 남한에서 보육교사에 도전하시는 만큼, 아마 지금도 ‘보육교사는 어떻게 될 수 있을까’ 궁금하신 청취자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장인숙: 네. 보육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보육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합니다. 4년제나 2년제 대학을 졸업해도 좋고요. 혹 대학에 가지 못하시더라도 남한에는 보육교사 훈련기관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17개 교과목에 대한 이론 수업을 마치고 6주간 어린이집에서 현장실습을 하시면 2급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이승재: 대학이나 보육교사 훈련기관에선 어떤 과목들을 공부하나요?
장인숙: 네. 보육교사론, 언어지도, 아동음악, 아동수학지도, 아동안전관리 등을 배우는데요. 남한 분들의 경우 훈련기관에서 보통 1년 6개월 정도 공부하면 자격증을 딸 수 있다고 하십니다. 탈북민들을 보니까 수업 따라가기 힘들어 하시던 분들도 3년 안에는 따시는 것 같아요.
이승재: 온라인으로도 배울 수 있다고 들었어요.
장인숙: 맞습니다. 제가 볼 때 남한 사회의 다양한 교육, 이렇게 자격증과 관련된 교육은 점차 온라인으로도 전환되는 것 같습니다. 보육교사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준비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아이를 두고 어디 찾아가 배우기는 어려우니까 집에서 인터넷 동영상을 보며 공부할 수 있다면 아주 유용하겠죠.
이승재: 그렇군요.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이렇게 교육을 마치면 2급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보육교사에도 급이 있나요?
장인숙: 네. 1급과 2급 자격증의 차이는 보육현장에서의 경력 유무를 나타냅니다. 2급 자격증 취득 이후에 3년 이상의 보육업무 경력을 가지면 1급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는데요. 1급 자격증을 딴 이후에 또 1년 이상 경력을 쌓으면 20명 이하의 소규모 가정 보육시설을 직접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이승재: 네. 물론 큰 곳도 많지만 남한에는 동네마다 작은 규모의 어린이집이 많습니다. 특정한 건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아파트 1층, 일반 살림집에서 아이를 돌봐주는 소규모 보육시설이죠. 그런데 보육교사가 하는 일이 많은 데 비해서 로임이 적다는 평도 있어요.
장인숙: 로임의 많고 적음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야 할지 그건 참 어려운 일인데요. 일단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땐 남한 기준으로 월 1,500달러 정도를 받습니다. 경력에 따라 조금씩 올라가죠. 어린이집이 민간기관인지 국가기관인지에 따라 다르고, 보육교사가 담임을 맡았는지 아니면 어떤 업무를 맡았는지에 따라 로임계산이 또 다릅니다. 나중에 어린이집을 차려 원장이 되고 경영상의 문제가 없다면 월 4,000달러 이상의 로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승재: 네. 어떤 일이든 자신이 맡은 일을 잘 해내고 경력을 열심히 쌓으면 인정도 받고 로임도 늘어나기 마련이니까요. 생각해 보니 남한에 3만 3천명 이상의 탈북민이 살고 있잖아요. 이분들이 정부에서 제공한 아파트에 살다 보니 어떤 지역은 많은 탈북민들이 모여 살기도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이런 지역에 탈북민 보육교사가 있다면 탈북민 부모들도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장인숙: 그렇죠. 실제 남한에 온 탈북민 여성들은 학교도 다니고 직장도 다니고… 또 여기저기 적응하느라 많이 바쁘거든요. 처음이라 모든 것이 예민한 상황에서 내 아이가 혹 차별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부모들도 많습니다. 이럴 때, 말씀하신 것처럼 탈북민 보육교사는 존재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수 있죠.
이승재: 그렇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탈북민 보육교사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죠. 경상북도에 사시는 김옥실 씨입니다. 2004년에 남한에 왔고요. 지금은 보육교사로 어린이집에 근무한지 8년 정도 되셨는데요. 함께 만나보시죠.
김옥실 : 저는 경상북도에 정착해서 여기 선린대학교 보육교사교육원을 졸업했어요.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고 예뻐해서입니다. 학교(보육교사교육원)를 다닐 때는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빨리 자격증을 따서 취업도 하고 나중에 북한 가서도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열심히 공부했어요. 저는 아이들이 아침에 와서 집에 갈 때까지 오로지 안 다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교육방식이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아이들이 좋다는 것은 다방면으로 무조건 다 해주는 방향으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들이 다 좋아하세요. 작년엔 3세 아이들 7명을 돌봤는데, 그 아이 어머니들이 올해 또 그대로 담임을 맡냐고 제게 물어보시기에, 올해는 다른 연령대 아이들을 맡을 것 같다고 했더니 어머니들이 우시더라고요. 우리 애를 왜 버리고 가냐고… 버리는 것 아닌데… 그런 것이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이승재: 네. 좋은 선생님 만나기는 하늘에 별따기죠. 1년이란 세월이 바쁘게 사는 부모들에게는 아마도 짧게 느껴졌을 텐데, 어렵게 만난 좋은 선생님과 이별하게 되어 어머니들이 많이 섭섭하셨을 거예요. 또 김옥실 씨가 여기서 탈북민 아이들이 아니라 남한 아이들만 돌보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렇게 어머니들에게 인정받기까지 정말 열심히 하셨을 것 같고요.
장인숙: 그렇습니다. 보통은 탈북해서 여기 온 분들이 직장에 취업하면 가끔씩은 차별을 느낀다고 해요. 말투도 다르고 아무래도 적응하는 것도 남한 분들보다 좀 더딜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김옥실 씨는 이 일을 하면서 단 한번도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기억이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아이들을 철저하게 내 자식처럼 돌보고 양육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본인도 이 일을 하면서, 태어나 가장 많은 존경을 받아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승재: 그렇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 그리고 그 일을 해낸다는 것 자체가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갖죠. 김옥실 씨는 그런 일을 하면서 주변의 존경까지 받으니 행복하실 수 밖에 없겠어요. 김옥실 씨처럼 행복한 보육교사를 준비하는 탈북민들이 꽤 있다면서요?
장인숙: 그렇습니다. 현재 저희 재단을 통해서 보육교사가 되시는 분들도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요. 전체적으로 볼 때도, 정부의 일자리 전망에 따르면 향후 보육교사의 고용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보육교사는 2015년엔 28만 2천여 명이었는데요. 5년 뒤 2025년에는 약 35만여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남한사회의 핵가족화와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 추세는 앞으로 더 확대될 거고요. 정부는 아이들의 무상보육, 양육수단 지원등으로 민간지원을 늘리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보육교사의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승재: 네. 영유아 때의 경험과 학습이 그 사람의 인생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고 합니다. 직업으로서만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이의 인생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교육에 임하는 진정한 선생님. 이런 선생님을 만난 아이의 인생은 더욱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장인숙 선생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장인숙: 네. 감사합니다.
이승재: 2주간에 걸쳐 보육교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여기는 서울> 진행에 이승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