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가을색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음악 산책> 윤하정입니다.

피부에 와닿는 바람은 많이 차가워졌지만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가을 하늘에서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빛은

자꾸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말부터는 실제로 산을 찾아 나서는 이들이 많을 텐데요.

설악산, 속리산, 내장산, 용문산 등

대한민국 주요 산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포근한 기온에 꽃망울을 터트리는 봄꽃들이 제주도부터 북상한다면

기온 하강으로 초록빛 나뭇잎이 붉고 노랗게 물드는 단풍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남하하는데요.

그래서 서울 도심에서는 아직 울긋불긋 색을 바꾼 나무들이 많지 않지만

이미 첫눈이 내린 설악산 대청봉에는

쌓인 눈과 저지대 단풍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 북한산도 일주일 뒤면 단풍이 절정을 이룰 거라고 하니까요.

10월 말에서 11월 초에는 도심에서도, 또 남부지방에서도

화려한 가을색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지금 북한의 산천은 어떤 빛깔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으로 오늘 <음악 산책> 출발합니다.

BM 1. 이문세 – 가을이 오면

---------------------------------------

진행자 : 가을이다. 울긋불긋 단풍도 들기 시작하고.

박성진 : 그렇다. 예년 같으면 10월에 참 바빴을 텐데(웃음).

진행자 : 10월 들어 계속 날씨가 흐리지 않았나. 일주일 이상 비가 오고.

요즘 날씨도 다시 화창해지고, 나무 색도 달라지고 하니까

그래도 조금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다.

박성진 : 그래서 나도 단풍 구경을 할까 싶어 찾아봤더니 강원도가 유명하더라.

케이블카를 타고 산의 단풍을 보는 상품도 있던데, 이미 예약이 꽉 찼다.

남한에서는 이렇게 10월 되면 단풍놀이가 하나의 문화이지 않나.

나도 한국에서 10년을 살다 보니 그런 문화에 익숙해졌는데

북한에서는 10월에 과연 무엇을 할까 생각하면 좀 씁쓸하다.

진행자 : 탈북 청년과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런 산천이야 북한에서 훨씬 가까이 접할 수 있었는데

그때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고 하더라.

박성진 : 문화 자체가 다르니까.

남한은 먹고 사는 문제가 80년대에 이미 끝났고

90년대부터는 웰빙이라고 해서 좋은 거 먹고 좋은 곳 찾아다니고

이제는 그렇게 못하면 이상하지 않나.

유명한 산들은 등산로도 잘 조성돼 있고.

북한도 과거에는 유명 산의 경우 관광이 쉽도록 등산로 등이 잘 마련돼 있었다.

동네 산도 참 좋았는데,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나무와 풀을 모두 갖다 쓰다 보니 황폐해졌다.

나무라는 게 심고 1년 뒤에 자라는 게 아니지 않나.

어찌 보면 반 세기를 키워서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건데.

북한의 산천은 너무 황폐해져서

지금 북한에 있는 젊은 세대는 내가 북한에서 봤던 산천, 고향의 모습을 언제 볼 수 있을지.

원래 저렇게 황폐한 모습이겠지 생각할 것 같아서… 참 원망스럽다.

진행자 : 우리가 산으로 들로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가지 않아도

집 앞, 길거리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보면서도

자연의 변화, 시간의 변화를 느끼며 ‘예쁘다’ 감상하지 않나.

북한은 환경이 많이 황폐해진 면도 있고,

가까운 곳에서도 그런 마음을 느낄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박성진 : 게다가 함경도는 남쪽보다 추위가 빨리 찾아오니까

10월 말이면 벌써 월동준비를 한다.

한국에 와서 여러 가지가 좋지만, 사시사철 채소와 과일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좋다.

겨울에 딸기 먹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지 않나.

그런데 북한은 제철에 어떤 채소나 과일을 못 먹으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지금 배추나 무 등을 잘 저장해야 겨울 양식으로 살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10월이면 단풍 구경하고 좀 들떠 있지만

북한에서는 앞으로 다가올 추위를 극복할 생각에 걱정이 많을 것이다.

진행자 : 북한에서도 노래를 들으며 마음의 위로를 얻는 건 같지 않을까.

박성진 : 그렇다.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바로 떠오른다.

북한에도 길거리에 코스모스가 피어 있을 텐데

노래 들으면서 그런 여유를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에 나훈아의 ‘고향역’ 준비했다.

진행자 : 푸근한 나훈아의 ‘고향역’ 함께 들어보자.

------------------------------------------

BM 2. 나훈아 – 고향역

파란 하늘, 노랗고 빨갛게 물든 단풍, 연분홍에서 짙은 붉은 색을 띠는 코스모스만

가을을 대표하는 건 아니죠.

가을이면 산등성이나 습지를 하얗게, 또는 옅은 갈색으로 물들이는,

그래서 멀리서 보면 은빛 물결을 연출하는 식물도 있습니다.

바로 억새와 갈대인데요.

억새와 갈대는 모두 볏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입니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꽃이 피는 시기도 비슷해서 얼핏 봐서는 구분하기 어려운데요.

두 식물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서식지라고 하죠.

갈대가 강가나 습지처럼 물이 있는 곳에서 자란다면

산이나 들판에서 자라는 비슷한 식물은 억새입니다.

갈대의 꽃은 옅은 갈색이고, 키는 2~3미터로 사람보다 큰 편인데요.

억새의 꽃은 흰색이고, 키는 1~2미터로 사람보다 작은 편이고요.

가을이면 이 갈대와 억새가 은빛으로 물든 모습도 참 멋지죠.

그래서 절정의 단풍을 찾아 유명 산에 가는 것처럼

은빛 갈대와 억새 물결을 보기 위해 강가나 습지, 들판을 찾는 나들이객도 많습니다.

갈대와 억새 얘기를 하다 보니 이 노래가 생각나네요.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르는 ‘여자의 마음’입니다.

BM 3. 루치아노 파바로티 – 베르디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

청취자 여러분에게도 익숙한 음악인가요?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 나오는 ‘여자의 마음’,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최고의 테너로 손꼽히는 파바로티의 목소리로 들어봤는데요.

오페라는 남한에서도 아주 대중적인 분야는 아니지만

이 노래는 다들 익숙할 겁니다.

학교 음악시간에도 배우고, 텔레비전 등 광고 음악으로도 많이 쓰였거든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곡의 첫 마디가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이’입니다.

북한에도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는 표현이 있나요?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이야기>를 보면

당나귀 귀를 가진 미다스왕의 비밀을 안 이발사가

구덩이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내뱉은 뒤 흙을 덮고 후련해 합니다.

그런데 구덩이 위의 갈대가 바람에 나부끼면서 이 비밀이 누설돼 버리죠.

이 이야기 때문인지 갈대는 밀고나 변심 등에 비유되기도 하는데요.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는 한 발 더 나아가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노래했네요.

글쎄요, 여자나 남자나 마음이 흔들리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요?

갈대나 억새나 바람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요.

사람의 마음이 흔들릴 때는 좀 불안한데

갈대나 억새의 은빛 출렁임은 눈이 부시게 근사합니다.

수확의 계절이라 마음이 풍성해지는 가을,

그러고 보면 가을을 채우는 색도 참 다채롭죠.

10월 들어 기온이 크게 떨어졌던 산간지역에는 눈도 내리고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상고대, 그러니까 나무나 풀에 하얗게 맺힌 서리가

또 한 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자연이 만든 수많은 색은

누군가 보고 느낄 때 더 큰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게 아닐까 합니다.

가을이 좀 더 속도를 내고 있을 북한은 더 다채로운 색이 가득할 것 같은데요.

눈과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여유,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잔나비의 ‘가을밤에 든 생각’ 전해드리면서

오늘 <음악 산책> 마무리 할게요.

지금까지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

기자: 윤하정, 에디터: 오중석,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