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쪽에 온 지 얼마 안 된 평양 출신의 젊은 여성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안 돼 고향을 떠났다는데, 이 친구의 입에서 나온 얘기들이 저와 같은 곳에서 온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얘기는 평양에서 절반 정도의 대학생이 MP3 재생기를 이용해 음악을 듣는다는 말이었습니다. 남쪽에서는 인민학교 학생도 들고 다니는 흔한 기계지만 컴퓨터로 소리를 압축해 MP3 음악 파일을 만든 다음 재생기에 옮겨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런 기술이 고향에서 이용된다는 것은 놀라운 얘기였습니다.
지구 상에서 가장 통제되고 폐쇄된 곳이라는 내 고향땅도 변하니, 세월이 무섭긴 무섭습니다. 물론, 지금은 평양만의 얘기겠지만, 세월이 지나면 이런 사정도 변할 겁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주로 어떻게 음악을 들으십니까?
남쪽에는 전축 판(축음기 레코드판)을 시작으로, 카세트테이프, CD를 지나 지금은 MP3가 대세인데, 요즘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새것, 최신식보다 옛날 것을 다시 찾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데, 오늘 <음악으로 여는 세상>에서 이런 음악계의 복고 바람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첫 곡입니다. 비틀즈의 '롤 오버 베토벤 (Roll over Beethoven)', '베토벤을 넘어서'를 듣겠습니다.
Beatles - Roll over Beethoven
기억하실는지 모르겠지만, 비틀즈는 이 시간에 한 번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 1960-70년대 전 세계 젊은이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영국 출신의 4인조 밴드입니다. 최근 몇 주, 남쪽뿐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서 때아닌 비틀즈 열풍입니다.
비틀즈가 한창 활동하던 때 발표했던 음반들을 리마스터링을 거쳐 다시 발매했는데, 음반시장이 이 때문에 그야말로 난리입니다. 리마스터링이란 가수의 목소리나 악기의 위치를 재정리하고 소리를 다듬는 과정인데, 초기 비틀즈의 음반은 레코드판 형태로 발매됐기 때문에 이것은 CD 형태로 옮기면서 발생한 음의 차이를 잘 정리한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새로 나온 음반은 음질은 어떻고 간에 겉모양이 사람들을 참 ‘혹’하게 합니다. 겉표지나 속지가 초기 판매됐던 비틀즈의 레코드판을 똑같이 흉내 냈는데, 사람들은 이것에 열광하는 겁니다. 저도 사진으로만 봤는데 정말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눈이 참 이상해서 옛날 고향에서 가끔 봤던 레코드판은 촌스럽기만 했는데, 이것도 세월이 이만큼 흐르고 보니 색다르고 예뻐 보입니다. 비틀즈 노래 한 곡 더 듣겠습니다. ‘페니레인 (Penny Lane)’.
Beatles - Penny Lane
비틀즈의 몇 개 음반을 묶어서 판매한 이번 리마스터링 CD의 가격은 비싼 것은 300달러가 넘습니다. 이걸 누가 사겠나 하겠지만, 이 음반이 발매된 날, 시내에 있는 대형 음반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음반을 사는 사람을 보니 비틀즈 음악을 즐겼을 법한 40-50대 중년들은 거의 없고 20대에서 30대의 청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은 비틀즈의 음악이 세대를 넘어 사랑받을 만큼 좋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조금 다르게 본다면 이제 세계의 경향은 원을 한번 그리고 다시 제자리에 서 있는 모양입니다. 이 비틀즈 열풍만 해도 그렇습니다.
2천 년이 지나 새로운 세기로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것, 최신의 것을 추앙했습니다. 그야말로 21세기에 걸맞은 것들을 찾아 헤맨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21세기도 이제 근 10년이 흐르고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것보다 한 바퀴 돌아온 몇십 년 전의 물건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아직은 사회 전반에 걸쳐 이런 경향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만 분명한 것은 이런 옛것에 대한 추구가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더해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단순하게 보면 답은 ‘배불러서’, ‘여유가 있어서’입니다. 너무나 많은 물건과 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은 여유 있는 경제력을 기반으로 이것을 사고 이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사실 어떤 것도 새롭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앞만 보지 않고 뒤를 돌아보니까 오히려 새로운 것이 보이는 겁니다.
Elton John - Good bye Yellow Brick Road
1973년 발표돼 큰 인기를 얻은 엘튼 존의 ‘굿바이 앨로브릭로드 (Good bye Yellow Brick Road)’라는 곡입니다. 이 노래가 담긴 음반도 비틀즈 음반처럼 다시 음악판 모양으로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하니, 사람들은 또 MP3에 쉽게 담은 수 있는 노래를 버리고 새로운 레코드판을 사려고 달려가겠지요. MP3를 평양 대학생 절반이 듣는 시대. 그러나 고향에서는 이것은 굉장한 특권일 겁니다.
남쪽 사회를 다시 돌아봅니다. 대학생 절반이 아니라 인민학교 학생 절반 이상이 MP3를 가진 시대. 그리고 MP3라는 최신 기계를 뒤로하고 옛날 전축판, 레코드 판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있는 시대. 우리가 같은 시대를 사는 동시대 사람들이 맞습니까? 그래도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으니, 언제가 우리도 몇십 년을 뛰어넘어 이런 세계들과 같은 선으로 만나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겁니다. 아마 그런 날이 오면 우리도 고향의 옛날 노래, 옛날 물건, 옛날 풍경을 그리워하게 될까요?
마지막으로 엘튼 존의 ‘유어 송 (Your Song)’ 들으면서 저는 이만 인사 드리겠습니다.
Elton John- Your song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지금까지 진행에 김철웅, 구성에 이현주, 제작에 서울 지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