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더 이상 결산분배에 의지하지 않는 북 농민들
-올해 현금분배, 근로자 월급 인상만큼 줄까?
-최고가 찍은 양곡판매소, 북한 주민들 반응
북한 농민들은 올해 풍작임에도 결산분배에 대한 기대치가 현저히 낮다고 합니다. 다만 현금분배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고 하는데요. 이밖에 최고가를 찍은 양곡판매소와 이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 손혜민, 문성휘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기자 :지금 북한에선 가을걷이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농민들이 출근을 꺼리고 있다고 하는데요. 풍작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지난해에도 제대로 결산분배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는 제대로 분배해달라는 나름의 시위인 것 같습니다. 문 기자, 북한 농민들은 당국이 왜 올해 결산분배를 제대로 해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는 걸까요?
문성휘 :네, 올해 북한의 농사는 지난해 못지 않게 잘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을걷이를 담당한 농민들의 사기는 땅바닥이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북한 현지의 소식통들은 "사실 농민들은 국가적인 알곡생산량에 별 관심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농민들이 국가 알곡 생산량에 관심이 없는 건 결산분배 때문입니다. 북한은 노동자, 공무원들에게 생활수단으로 배급과 월급을 주고 있지만, 농민들에겐 월급과 배급이 아닌 결산분배를 주고 있습니다.
월급과 배급은 매달 주지만 결산분배는 1년에 한번, 가을걷이를 끝내고 한해 농사를 총화 짓는 마당에서 이루어집니다. 결산분배는 크게 현물분배와 현금분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걸로 다음해 가을까지 생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문제는 결산분배로 농민들이 다음해 가을까지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북한 당국이 농민들에게 결산분배를 제대로 계산해 주지 않는 표면상의 이유는 국가알곡생산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실례로 북한 당국이 올해 양강도 대홍단군 홍암농장에 국가알곡생산계획으로 감자 1만톤을 생산할 과제를 내어주었다고 합시다. 감자 1만톤을 생산하면 가을철 결산분배로 매 농민들에게 쌀 100kg, 현금 10만원(5.9달러)을 준다, 이렇게 약속했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홍암농장에서 농사를 짓다 보니 가뭄 피해도 입고, 큰물 피해도 입고, 비료도 부족했습니다. 가을걷이를 하고 보니 국가 알곡생산계획은 감자 1만톤인데 7천톤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감자 1만톤 과제를 떠안았는데 7천톤밖에 생산하지 못하면 농민들에게 주겠다던 쌀도 100kg에서 70kg으로 줄어들고, 현금도 10만원(5.9달러)에서 7만원(4.1달러)으로 줄어드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국가알곡생산계획을 미달하면 결산분배가 아예 없습니다. 그래서 농민들이 굶어 죽는 겁니다.
북한의 농민들은 결산분배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농민들은 개인 뙈기 밭 농사에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농민들은 가을철에 농장 일을 하면서 뙈기 밭에 심은 곡식도 거두어들여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농장에 아예 출근을 안 하는 거죠. 농장의 가을걷이보다 개인 뙈기 밭 농사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까짓 결산분배, 받아봐야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
기자 :그렇다면 그동안 북한 당국이 농민들에게 결산분배를 공정하고 정확하게 한 때가 있긴 있었습니까?
문성휘 :과거 1980년대 중반까지는 해마다 결산분배가 대단했습니다. 한해 농사를 총화 짓는 날이 되면 농민들은 하루종일 탈곡장에 나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어요. 그때엔 집집마다 뜨락또르(트랙터), 자동차로 현물분배인 식량을 농민들의 집 앞까지 실어다 주었고요. 현금이 두둑한 돈봉투도 농민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부터 농사가 제대로 안 되면서 결산분배의 양도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는데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결산분배라는 말이 아예 사라졌습니다. 이후 북한 당국은 결산분배를 되살리기 위해 많이 노력을 기울였는데요. 2002년, ‘새경제관리체계’가 시행되었을 때 일부 농장들에 시험적으로 결산분배를 도입했으나 다음해엔 아예 없어졌습니다. 화폐개혁 후인 2010년에도 일부 농장들에 부분적으로 결산분배를 도입했으나 역시 다음해엔 결산분배가 없었고요. 그렇게 결산분배라는 말이 아예 없어졌다가 지난해 가을 북한의 언론들이 결산분배를 요란하게 떠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이 결산분배지,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우선 결산분배는 현물분배와 현금분배인데 북한은 현금분배는 완전히 외면한 채 현물분배, 즉 식량만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식량 현물을 쌓아놓은 사진만 공개했을 뿐 농민들에게 개별적으로 나누어주는 장면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소식통들은 “농민들에겐 식량 현물이 아닌 식량공급표만 주었다”면서 “식량공급표는 빈 종잇장에 불과했고 농민들에게 차례진 실제 식량은 두 달 분이 전부였다”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다만 북한의 농민들은 올해의 경우 현물분배와 현금분배를 모두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주장입니다. 김정은 정권이 아무리 후안무치해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농민들을 상대로 협잡을 일삼지 않을 것이라는 게 농민들의 생각입니다. 올해까지 현물분배와 현금분배를 외면하면 농민들은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이유가 없다는 거죠. 이런 농민들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올해는 현물분배와 현금분배가 꽤나 있을 것이라는 게 소식통들의 전망입니다. 말 그대로 전망이니 앞으로 두고 봐야 하겠죠?
기자 :더구나 올해 1월 근로자들의 평균 월급이 20배나 올랐기 때문에 농민들도 몇 십년 간 받은 적 없는 현금분배까지 기대하고 있다는데요. 문 기자, 올해 농민들이 실제로 현금분배를 받을 가능성이 있을지, 있다면 얼마를 예상할 수 있을까요?
문성휘 :올해 북한은 근로자들의 평균 월급을 기존의 2천5백원에서 3만원으로 올려주었습니다. 올해 북한의 농사도 지난해 못지 않게 잘되었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올해는 시범적으로 현물분배와 현금분배가 있을 것이라고 농민들은 기대하고 있다는 건데요.
현물분배와 현금분배가 얼마나 되겠냐는 북한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과 배급량을 보면 추정할 수 있습니다. 농민들의 현물분배와 현금분배의 양은 항상 노동자들의 평균적인 배급과 월급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노동자 평균 월급이 3만원(1.76달러)이니 1년간의 월급을 다 모으면 36만원(21.17달러)인데요. 농민들도 형평성을 맞춰야 하고,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평균적인 현금분배를 대략 36만원 정도로 추산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실제로 농민들에게 결산분배를 얼마나 쳐 줄 지는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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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강도 농민들, 당국에 충분한 결산분배 요구Opens in new window ]
[ 평안도 양곡판매소 ‘햅쌀’ 가격 역대 최고Opens in new window ]
기자 :다음 소식입니다. 북한 평안남도 지방정부 산하 양곡판매소에서 파는 햅쌀 값이 장마당에서 팔던 가격을 웃돌고 있다고 합니다. 양곡판매소를 만들면서 물가 안정을 내세우더니 어쩌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손혜민 :네, 어떻게 보면 이미 예견된 식량 가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경제 정책을 전반적으로 정비하지 않고, 주민 통제에 초점을 맞추어 일부 정책만 개편하다 보니 햅쌀 1kg에 9천원이라는 역대 최고가를 찍은 겁니다. 평안남도뿐만 아니라 함경북도와 양강도에서도 햅쌀 1kg 가격이 9천원을 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식량가격이 상승한 지점이 지방정부 산하 양곡판매소라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2022년부터 전국에 도입된 양곡판매소는 주민 통제권과 곡물 수급, 자금 흐름을 국가가 장악할 목적으로 설치한 곳입니다. 이를테면 양곡판매소에서 시장보다 싼 가격으로 곡물을 판매하면 장마당을 선호하던 주민들이 국가 양곡판매소로 발길을 돌려 국가 통제권에 들어오게 됩니다. 또 곡물 수급망을 지방정부 산하 양곡판매소가 장악하면 장마당 중심으로 유통되던 현금이 중앙은행으로 흡수되면서 자연히 장마당 경제는 약화됩니다.
이러한 조치가 현실화되도록 북한 당국은 경제 정책을 일부 정비합니다. 2023년 10월부터 공장 노동자의 월급을 20배로 부분 인상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올 4월부터는 전국의 공장 노동자의 월급이 인상되었는데요. 공장 노동자들이 월급만으로도 양곡판매소에서 식량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한 조치였죠. 문제는 공장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인상된 월급이 현금이 아니라 돈표였습니다. 인상된 월급으로 돈표가 남발되다 되니 자연히 쌀 가격 상승을 불러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가격이 단번에 오른 건 아닌데요. 지난 5월부터 서서히 오르기 시작해 9월에 들어서 검은 찹쌀 경우에는 1만 3천원(0.7달러)까지 찍은 겁니다. 월급 인상으로 시중에 늘어난 현금량보다 양곡판매소에서 판매해야 할 곡물 현물량이 적은 겁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앞으로 곡물가는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자 :장마당 유통을 통제해 양곡판매소에서만 곡식을 사도록 했으면 국가 보유량이라도 풀어서 수량을 갖춰 놓는 게 기본일 것 같은데, 양곡판매소에서 파는 것도 국가 수매계획 외에 남은 곡물이 전부인 데다 그 양이 적다고 햇곡 가격을 장마당보다 올렸다고 하니 북한 주민들도 기가 막힐 것 같은데요. 북한에선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까?
손혜민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죠. 어떻게 정부가 식량 가격을 최고 정점을 찍는가 라는 불만인데요. 그럼에도 당국은 속수무책입니다. 어떻게 보면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국이 대책을 세우려면, 양곡판매소에 곡물을 충분히 공급해야 합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이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양곡판매소가 임의로 협동농장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수매가로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어느 농장이나 곡물 보유량이 많지 않습니다. 있다고 해도 국가에서 규정한 수매가인 쌀 1kg 46원에 넘겨주면 농장 간부 입장에서는 난감합니다.
영농자재를 자체로 해결해야 하는 농장에서는 국가 수매가격으로 농작물을 양곡판매소에 넘기면 다음해 농사를 지을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농장간부들은 양곡판매소가 아니라 개인에게 장마당 가격으로 쌀을 넘깁니다. 물론 불법이죠. 그러나 농장간부들도 자력갱생으로 농장 운영 자금을 해결하는 명목이 있으므로 암묵적으로 허용됩니다. 실적을 내야 하는 양곡판매소로서는 할 수 없이 장마당 가격으로 농장에서 농작물을 사옵니다. 왜냐면 국가에서 양곡판매소가 판매해야 할 곡물 공급량은 적은데, 양곡판매소 실적 총화는 다그치고 있으니 방법이 없죠. 결국 양곡판매소가 장마당으로 변질되는 겁니다.
기자 :북한의 각 시, 군마다 자리잡은 양곡판매소, 올해로 3년째 운영되고 있는데요. 지난 3년간 양곡판매소가 북한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손혜민 :북한 사회에 미친 영향은 한마디로 부작용이 크다고 봅니다. 우선 지역마다 운영되는 양곡판매소 숫자가 다른 것도 주목됩니다. 어떤 군에는 하나 둘밖에 없고, 어떤 시에는 양곡판매소가 10 곳 이상 운영되는 곳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평안남도 평성이나 순천이 대표적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양곡판매소가 국가로부터 공급받는 곡물량이 부족하거나 없으니 개인돈주와 연계하여 곡물을 넘겨받아 판매하는 것인데, 도시의 경우 돈주들이 많으므로 양곡판매소가 개인의 곡물을 팔아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현실은 실제 사례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지방정부 산하 양곡판매소 안에 이중가격과 이중공급제가 존재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국가 수매가격으로 들어온 곡물을 판매할 경우에는 장마당 가격보다 20% 정도 싸게 팝니다. 쌀 1킬로 7천원 한다면 양곡판매소는 5천원 정도에 파는 겁니다. 이 경우 누구나 마음대로 살 수 없습니다. 정부가 발급한 식량공급카드에 적시된 양에 한에서 판매합니다. 세대당 구매 한도를 정하는 것이죠. 한편 양곡판매소 한쪽에는 좀 전에 언급했듯이 개인에게 넘겨받은 곡물이 많습니다. 이 곡물만이 개인이 마음대로 구매할 수 있는데, 가격은 장마당 가격입니다.
결국 국가에서 곡물 수급을 장악하여 장마당을 없애고 주민통제를 강화할 목적으로 양곡판매소를 설치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양곡판매소가 정상화되려면 국가가 농장에서 수매 받는 곡물가도 장마당 가격으로 대폭 인상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아집니다. 또 정부가 운영하는 양곡판매소라고 해도 지역별 가격 차별화를 인정해야 합니다. 양곡판매소에 곡물 가격 판매의 일원화를 강구하고 있는데, 어떻게 지역마다 곡물가격을 똑같이 적용할 수 있겠나요. 양강도는 감자가 싸고, 평안도는 쌀이 싸겠죠. 양곡판매소에 자율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정부의 입지는 입지대로 좁아지고, 곡물가는 곡물가대로 올라가 민심만 악화될 것입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