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명절 때 더 분노하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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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진행자 :북한에서 음력 설을 따뜻하고 풍족하게 보내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새해 시작부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관련 소식 자세히 알아보죠. 손혜민, 문성휘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 문성휘 기자:안녕하세요?

진행자 :활기찬 새해를 기념하는 음력 설이 지난 지 얼마 안 됐습니다만, 북한에서는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만 잇따르고 있는데요. 먼저 음력 설을 앞두고 혜산시에서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고 합니다. 문 기자, 이번에 특히 군인들이 벌인 사건, 사고가 많던데 그 이유가 뭘까요?

설음식 먹으려 강도가 된 군인들

문성휘 기자 :그만큼 군인들의 식생활 형편이 어렵다는 얘기가 되겠죠. 음력 설을 맞으며 북한 당국은 1월 25일부터 31일까지 특별경비 기간을 선포했는데요. 이 기간에 도벌한 통나무를 싣고 도주하다가 자동차가 전복돼 6명의 군인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양강도 보천군 가림리에서 있었다고 합니다. 차에는 지휘관인 소대장 1명도 타고 있었는데, 이들은 혜산시 검산동에 주둔하고 있는 인민군 8총국 군인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오토바이 두 대에 나눠 탄 군인 4명이 지나가는 자동차를 강제로 세운 뒤 자동차의 배터리를 떼어내 달아난 사건이 양강도 혜산시와 갑산군 경계에 있는 안간령 도로에서 발생했다고 하고요. 자동차는 갑산군 창동 임산사업소 자동차였다고 합니다. 당시 차에는 임산사업소 기사장을 비롯해 갑산군 주민 11명이 타고 있었으나 군인들을 제압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겨울철을 맞으며 군인들의 생활 형편이 더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런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는데요. 지난해부터 북한 군인들 속에서 유행하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장군님을 모시고 이밥에 돼지고기 국을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이다, 장군님이 오셔서 이밥에 고깃국을 먹게 되면 나는 세 그릇 곱빼기를 하겠다” 이런 내용인데요. 지난해 김정은이 105 탱크사단을 시찰하면서 병사들에게 이밥에 고기국, 과일을 먹인 것이 이러한 유머를 촉발시켰다고 합니다.

이는 김정은의 군부대 시찰을 강력히 비꼬는 유머인데요. 이런 유머가 유행할 정도로 북한 군인들, 특히 병사들의 식생활 수준은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진행자 :북한 군인들의 식생활이 형편 없다는 건 꽤 오래된 얘기죠. 전혀 개선이 되고 있지 않은 거 같은데, 현재 군인들의 식량 배급 실정은 어떻습니까?

문성휘 기자 :북한의 군인들은 영양실조를 피하기 위해 가족들이 보낸 돈으로 주변 장마당이나 민가에 들러 매일 두부 반 모를 사 먹는 것이 보통입니다. 과거엔 두부를 먹을 때 간장으로 간을 맞추어 먹었는데 요즘 군인들은 두부 반 모에 간을 맞추는 수단으로 김치나 고추장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부대 내에서는 김치나 고추장을 먹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양강도 주둔 10군단의 경우 된장, 간장조차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병사들은 소금물에 시래기가 몇 점 뜬 국을 먹는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반찬은 염장무와 염장 배추가 전부인데 그 마저도 두세 점밖에 차례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음력 설 하루 양강도 주둔 국경경비대의 경우 아침에 떡과 콩나물국, 점심엔 이밥에 두부국, 저녁에 국수를 먹었다고 하는데요. 반면 10군단 병사들은 음력 설에 떡과 이밥, 콩나물 국을 먹은 것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음력 설마저 고기 한점 구경을 못하니까 군인들의 생활 형편은 더 말할 것이 없다는 거죠.

공포스러운 무정부주의자 조직 마흐노 부대

진행자 :군인들이 벌이는 사건, 사고는 아무래도 계속되겠네요. 그런데 이번 안간령 도로 사건은 거의 군인들이 산적에 가까운 행태를 보였습니다. 문 기자 기사를 보면 인근에 있는 마흐노 부대의 군인들이 벌인 사건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부대는 왜 마흐노, 무정부주의자 조직이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겁니까?

문성휘 기자 :양강도 주민들은 '43경보병 여단'을 '마흐노 부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흐노는 과거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이름인데요. 그가 이끄는 부대가 민간인들을 마구 습격하고 무리하게 강도 짓을 했다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설명입니다. '43경보병 여단'에 '마흐노 부대'라는 별칭이 붙은 시기는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되던 1990년대 초였습니다. '43경보병 여단'은 과거 함흥시 주둔 7군단 소속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양강도 주둔 10군단의 통제에서 벗어난 부대였다는 거죠.

지금은 부대가 개편돼 양강도 주둔 10군단 소속이 되었다고 하는데, 부대의 전통적인 악습은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43경보병 여단’의 여단 지휘부는 양강도 운흥군 운흥읍에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부대는 양강도 갑산군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여단 지휘부가 부대에서 70km이상 떨어져 있다 보니 부대를 일일이 통제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지휘관들의 부정부패가 너무 심해 병사들은 강도 짓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얘기인데요.

안간령 일대에서는 과거에도 군인들의 차량털이 범죄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특히 최근엔 군인들과 손을 잡은 민간인들의 범죄도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실제 이번 강도 사건도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얽혀 있는 범죄라는 것이 소식통들의 주장입니다. 군인들이 두대의 오토바이에 나눠 타고 신속히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는데요. ‘43경보병 여단’은 산악스키 부대로 오토바이는 여단 본부만 가지고 있어 병사들이 이용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군인들이 탄 오토바이는 주변 민간인들의 것이거나 아니면 이들이 훔친 오토바이라는 것이 소식통들의 얘기입니다.

안간령 일대에서 강도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이유

진행자 :안간령 일대에서 이렇게 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건 단속이 잘 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까?

문성휘 기자 :북한 사법당국은 범인들을 잡기 위해 주변 민간인들이 보유한 오토바이를 조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토바이는 안전부에 등록돼 있다는 건데요. 설령 사법기관들이 오토바이 도난신고를 받았다고 해도 범인들을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소식통들의 얘기입니다. 군인들이 오토바이 번호를 가리고 강도 행위를 벌인 데다 북한의 오토바이들은 대부분 중국산 부품들로 조립한 것입니다. 이런 오토바이들은 딱히 상표가 드러나지 않는 특징들이 있다고 합니다.

또 자동차에서 배터리를 때어낸 강도 사건은 북한에서 별로 큰 사건이 아니어서 사법기관들이 수사에 적극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이 소식통들의 얘기였습니다. 아마도 범인들이 잡히게 되면 생활제대나 교화형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소식통들은 진단했습니다.

진행자 :문 기자, 이번에 일어난 사건, 사고들이 평소보다 유독 많았다고 하셨는데요. 음력 설이 되면 특별 경비를 선포할 정도로 각종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이유가 뭘까요?

북한 주민들 주요 명절에 분노 높아져

문성휘 기자 :네, 북한엔 4대 명절이 있습니다. 김일성 생일인 4.15일과 김정일 생일인 2.16일, 그리고 건국절인 9월 9일과 노동당 창건일인 10월 10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북한에서 크게 쇠는 명절은 따로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생각하는 4대 명절은 김일성, 김정일 생일과 음력 설, 8.15 광복절인데요. 이러한 명절들은 과거 국가적인 명절공급이 있었던 명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요 명절들은 주민들의 분노가 매우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돈주들을 비롯한 신흥부자들, 권력을 가진 간부들은 명절 준비로 바쁜데 먹을 것도 변변치 못한 서민들은 그런 꼴을 봐야 하니 당연히 화가 치밀기 마련이라는 거죠. 특히 젊은 청년들은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명절 준비를 하느라 바쁘기도 합니다. 밀수나 장사, 강도나 절도를 해서라도 명절날 술과 고기를 마련해 즐겁게 놀아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음력 설 대목에는 자연스럽게 범죄가 급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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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다음 소식입니다. 올해 신정 설이 되면서부터 북한의 여교원들이 식량 살 돈을 구하러 남의 집 물을 길어다 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손 기자, 이들이 하루에 얼마나 많은 물을 길어주고 얼마를 받는 겁니까?

식량 사러 알바 뛰는 북한 여교원들

손혜민 기자 :북한에서 직업적 혁명가로 상징되고 있는 여교원들이 물 긷기 삯일로 받는 금액은 아파트 층수에 따라 차이 납니다. 일단 1-3층까지 아파트 살림집 부엌까지 물을 길어주고 받는 액수는 바께쯔(10리터) 하나 당 북한 돈 300(0.015달러)원입니다. 양손에 바께쯔를 들고 물을 긷는 셈이니 한 번 오르는데 600(0.03달러)원을 받는 셈입니다. 4층부터는 가격이 두 배 올라 물 바께쯔 하나 당 600원입니다. 그러니까 한번에 물 바께쯔는 양손에 들고 4층까지 층계를 올라가면 1,200(0.06달러)원 받는 것입니다.

보통 지방도시에 자리한 구식(60년대 건설) 아파트는 5층, 90년대 이후 건설된 아파트는 7층~12층입니다. 여교원 한 명이 아파트 살림집 주방에 설치된 200리터 물탱크에 물을 길어다 채워주는 시간은 1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요. 물을 다 길어주고 받는 돈은 3층까지는 6천원, 4층부터는 1만 2천원으로 알려졌습니다. 세 집의 물탱크를 채워주면 1만 8천원~3만 6천원으로 장마당에서 쌀 2.5킬로~5킬로 살 수 있는 가격입니다. 가족의 식량을 살 수 있는 비용이지만, 그만큼 자기 살을 깎아 먹는 고된 노동입니다.

진행자 :손 기자 기사를 보면 물 길어다 주는 일은 교원이든 아니든 모두 여성이 맡아서 해왔던 것 같은데요. 무거운 물을 지고 메고 수도 없이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는 일이라 힘들 텐데, 여성들만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손혜민 기자 :여성들이 많이 하지만 여성들만 참여한다고는 볼 수 없고요. 물 종류와 사용 용도에 따라 참여하는 성별이 달라집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를 본다면, 아파트 밑에 있는 펌프 수도에서 살림집 부엌까지 지하수를 운반해주고 돈을 받는 품삯 노동에는 대부분 여성 주부들입니다. 층계를 오르고 내리지만, 물 긷는 거리가 짧고 특별이 준비해야 할 수단이 필요 없습니다. 지하수 용도도 취사와 청소, 세수와 목욕 등에 사용되므로 한번에 많이 사들이지만 이틀이면 소비하는 특징을 보이죠.

반면 남성들은 산속에서 나오는 샘물을 물통에 담아 자전거나 손수레로 장거리 운반해 주민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판매하는 건데요. 보통 50리 정도 이동해 샘물을 운반해야 하므로 운반 수단과 동시에 육체적 힘도 필요합니다. 남성들의 장사로 부각된 이유입니다. 하지만 주목되는 것은 여성들이 아파트 살림집에 물을 길어주고 받는 비용은 층수가 높을수록 액수도 올라지지만, 남성들이 판매하는 샘물 가격은 1층이든 10층이든 똑같습니다. 여성들의 경우 노동력이 상품이므로 층수에 따라 노동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지만, 남성들의 경우는 샘물 자체가 상품이므로 고층 아파트 살림집 부엌까지 운반해 줘도 상품가격만 받는 것입니다. 샘물 용도는 지하수와 달리 식수로만 사용하는 차이점도 있죠.

지하수 , 식수 길어다 주는 알바가 꼭 필요한 이유

진행자 :손 기자 말씀을 들어보면 집안에 수도 설비가 없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요. 물 사정이 얼마나 안 좋은 겁니까?

손혜민 기자 :북한의 상수도는 아파트이든 단층이든 대부분 설비 노후화로 마비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90년대 초부터 지방도시 아파트마다 공용 펌프 수도를 설치하는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며 장마당에서 현금을 저축한 여성주부들이 나타나자 물을 길어주는 인력 수요가 부각되었죠. 장사를 할 줄 몰라 살기 어려운 여성들이 물을 길어주고 돈벌이에 나섰습니다.

당시만 해도 물을 길어주는 인력을 사는 행위도, 물을 길어주며 쌀 벌이 하는 행위에 대한 사람들의 눈길이 곱지 않았거든요. 당국이 수십 년 교육한 착취계급 구조로 본 거죠. 하지만 2010년대부터 달라졌습니다. 대가를 지불하고 노동력을 사는 것도, 노동력을 상품으로 돈을 버는 것도 수요와 공급에 의한 시장경제 원리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득이 높은 지방도시 아파트에는 장사하다 망하느니 무일푼으로 물을 길어주거나 샘물 장사로 돈벌이하는 게 현명하다는 인식이어서 여교원도 나서는 것입니다.

아파트 고층에 사는 설움

진행자 :여교원까지 물 긷는 일을 하게 된 속사정이 있군요. 그런데 바깥 세상에서 보기엔 대체 왜 아파트에서 돈을 주고 물을 길어오게 하는 일이 성행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당국이 북한에 고층 아파트가 지어졌다고 세상 밖에 선전은 많이 했지만, 전기도, 물도 안 들어오는 현실은 잘 모르기 때문인데요. 고층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아파트 매물을 알아보다 놀란 적이 있습니다. 25층 아파트였는데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비싸더라고요. 이해되지 않아 왜 고층일수록 비싸냐고 물었거든요. 조망권 때문에 비싸다고 해서 더 놀랐습니다. 한국 아파트에는 24시간 따뜻한 물이 나오고 승강기가 가동하니 물동량을 인력으로 올려가야 한다는 개념조차 없는 겁니다. 높은 곳에서 경치를 볼 수 있는 조망권을 우선으로 살림집 아파트 가격이 매겨지는 현실에 선진국 사람들의 인식을 알게 됐는데요.

반면 북한에서는 3~5층이 가장 비쌉니다. 1~2층은 베란다로 도둑이 들기 쉽지만 3~5층은 도둑도 막을 수 있는 데다 등짐으로 물동량을 올리는 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가격이 싸지는데, 승강기가 있어도 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니 물동량과 식수 등을 등짐으로 날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력을 쓴다 해도 고층일수록 인건비가 배로 오르지 않나요. 따라서 북한에는 간부와 돈주들은 중간층에서, 돈이 없는 사람들은 고층에서 사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고층에서는 물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데요. 누구나 평등하게 잘사는 나라가 사회주의 제도라고 선전만 하지 말고 민생 해결에 김정은 정부가 나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진행자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