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물가 폭등 속 3일치 식량 공급, 북 주민들 반응은?
-풍작이라더니 식량 공급 미미한 이유
-21년 만에 국정가격과 공장 노동자 월급 대폭 인상
지난 연말 물가가 폭등하며 위험 수위에 오르자 북한 당국이 3일치 식량 공급으로 간신히 심리적 안정선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불만은 더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무려 21년 만에 북한 국정가격과 공장 노동자 월급이 대폭 인상됩니다. 그렇지만 북한 주민들이 웃을 수만은 없다고 하는데요. 관련 소식 손혜민, 문성휘 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봅니다.
이예진: 지난 연말, 설 명절을 앞두고 북한 양강도의 식량 가격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이 들렸는데요. 식량 가격이 오르자 다른 생필품 가격까지 덩달아 급등했다고 하죠. 문 기자, 양강도의 연말 연시 물가가 얼마나 올랐던 겁니까?
문성휘:네. 새해를 앞두고 북한의 양강도 혜산시 장마당에서 식량과 생필품 가격이 크게 올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비단 양강도 혜산시 장마당에서만 물가가 오른 게 아니고 북한 전역의 장마당들에서 물가가 크게 상승했다고 합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혜산 장마당의 경우 12월 중순까지 kg당 4천700원이었던 쌀값은 그때로부터 열흘이 지난 12월 28일에는 kg당 500원이나 더 올라 5천3백원, 0.62달러였다고 하는데요. 열흘 사이에 쌀값이 14%나 상승했다는 거죠. 또 12월 중순까지 장마당에서 kg당 북한 돈 2천원, 0.23달러였던 통강냉이 가격도 열흘 뒤인 12월 28일에는 2천 5백원, 0.29달러까지 올랐다고 하고요. 이렇게 되니 메주콩이나 감자 등 북한 주민들이 식량으로 취급하는 곡물류의 가격이 모두 올랐다는 거죠.
이 기간 단순히 쌀값만 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땔감 가격도 크게 올랐다고 하는데요. 북한의 장직경 30cm의 올가미 속에 길이 50cm로 잘게 쪼개서 파는 화목이 있습니다. 난방용이 아니고 겨울철 한끼 밥을 해먹을 용도의 땔감인데요. 12월 중순까지만 해도 이러한 나무 한 단의 가격이 5천원이었는데, 12월 28일에는 5천5백원으로 올랐고요. 식량과 땔감 값이 오르면서 식용유와 돼지고기를 비롯해 먹을거리와 생필품의 가격이 덩달아 올랐다고 합니다. 12월 28일, 혜산장마당에서 돼지고기 1kg은 북한 돈 2만8천원, 3.29달러였고요. 식용유 1kg은 2만6천원, 3.05달러였다고 합니다.
이예진: 북한 당국도 이런 상황을 감지는 했던 것 같습니다. 기사를 보면, 긴급하게 주민들에게 식량을 판매했는데요. 겨우 3일치에 불과했습니다. 과연 이게 식량 가격 안정에, 또 주민들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됐을까요?
문성휘: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장마당에서 식량가격이 급격히 오르고 주민들의 불만이 거세지자 북한 당국은 12월 30일과 31일, 사전 예고도 없이 양곡판매소에서 3일분의 식량을 팔아주었는데요. 3일분이라고 해봐야 17세 이상 성인에 한해 하루 450그램씩 모두 합쳐 1.35kg입니다. 소위 설명절을 즐기라고 '명절미'라는 명목으로 식량을 팔았다는데요.
문제는 양곡판매소에서 팔아 준 쌀이 kg당 5천4백원이었습니다. 당시 혜산 장마당에서 국산 쌀 가격이 kg당 5천7백원이었다고 하는데요. 이는 불과 이틀 전인 28일에 비해 200원이나 더 오른 가격이었습니다. 반면 장마당에서 중국산 쌀이 kg당 5천4백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양곡판매소에서 주민들에게 팔아준 쌀이 국산 햅쌀이었다고 하는데요. 판매 가격이 북한 돈 5천4백원이어서 중국산 쌀과 꼭 같았다는 것입니다. 중국산 쌀과 값이 같았다고 하니까 양곡판매소의 가격과 장마당 가격이 얼마 차이가 없었다고 보면 됩니다. 다만 중국산 쌀과 비교할 때 북한 국내산 쌀은 질이 상당히 좋습니다. 중국에도 좋은 쌀이 많지만 좋은 쌀은 그만큼 비싸니 북한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소식통들은 양곡판매소에서 3일분의 식량을 공급하지 않았다면 새해를 앞두고 식량가격이 6천원, 0.70달러를 넘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는데요. 북한 주민들에게서 식량의 심리적 안정선은 쌀 kg당 5천원 선입니다. 5천원을 넘어가면 상당히 불안해지고, 6천원 이상으로 오르면 식량 위기입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장마당에서 쌀 1kg에 6천원을 넘어가면 주민들 속에서 아사자가 발생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북한 당국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장마당에서 쌀값이 6천원을 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는데요. 그것이 바로 양곡판매소에서 3일간의 식량을 판매해 준 것입니다. 그로 인해 쌀값이 6천원을 넘지 않았으니 새해를 앞둔 주민들에게 조금 위안이 되었다고 할까요?
실은 이렇게 긴급하게 판매한 쌀도 김정은의 생일인 1월 8일에 대비해 비축해 두었던 거라는데요. 장마당에서 쌀값이 걷잡을 수 없이 오르니 김정은의 생일을 앞두고 판매해 주려던 쌀을 다급하게 판매했다는 건데요. 그만큼 북한 지도부도 크게 위축되었고, 주민들의 사기도 저하되었다는 겁니다.
이예진: 앞서 문 기자도 말씀하셨지만 북한에선 보통 설을 앞두고 물가가 오르죠. 하지만 올해 유독 주민들의 불안심리가 컸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문성휘:지난해 가을, 북한의 언론들은 농사가 잘 되었다는 선전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북한의 언론들이 현물 분배를 받는 농민들의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도 '고난의 행군' 이후 지난해가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농사가 잘 되었다고 말로만 떠들면서 실제 주민들에게 식량을 공급해 주지 않으니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새해가 가까워 오는데도 식량 공급과 관련한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으니 당연히 주민들은 불안해지기 마련인 거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농사가 잘 되었다고 해도 주민들의 손에 식량을 쥐어 주어야 마음을 놓게 되는 거죠. 지난해 말에 열렸던 노동당 중앙위 8기 9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김정은이 농업과 관련한 자랑을 얼마나 늘어놓았습니까? “알곡 생산을 103% 넘쳐 수행했고, 농촌살림집도 많이 지었다. 서해 간석지 개관도 성과가 있었고, 해주 긴등물길공사도 잘 진행되고 있다”, 주민들은 당장 가마에 들어갈 쌀이 없다고 난리인데 이런 자랑을 아무리 늘어놓아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난해 북한의 농사가 잘 됐든, 안 됐든 이제라도 당장 식량을 풀지 않으면 주민들은 지난해 1월에 겪었던 식량난, 아사 사태를 반드시 되풀이 하게 되어있습니다.
이예진: 다음 소식입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새해 첫 경제 행보로 농기계전시회를 찾았습니다.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한 농업이 올해도 주요 과업이라는 얘기겠죠. 그 일환으로 이번에 북한 당국이 새로 빼 든 칼은 ‘식량배급 국정가격 인상과 공장 노동자 월급 인상’인 것 같습니다. 손혜민 기자, 각각 인상 폭이 얼마나 되는 겁니까?
손혜민:지난해 10월부터 북한당국이 시범적으로 도입했지만요. 공장 노동자 월급을 2,300원(0.27달러)에서 5만원, 최대 10만원으로 인상한 액수를 보면 최대 40배에 달합니다. 공장 노동자의 식량배급 국정가격도 쌀 1킬로 46원(0.005달러)에서 2천원(0.235달러)으로 인상했습니다. 45배 인상한 것이죠. 물론 중요 기업 우선으로 도입하고 있지만 올해 전국 기업으로 확대될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달 중순 북한이 한국의 국회에 해당되는 최고인민회의가 평양에서 개최된다고 발표했는데, 최고인민회의에서 새해 예산 등이 책정되는 것을 감안하면 여기서 어떤 조치가 나올지도 주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지 소식통도 올 3월 이후 공장 노동자 월급 인상과 식량배급 국정가격 인상이 공식적으로 발표될 것으로 추정했는데,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예진: 그동안 워낙 배급 받는 게 적다 보니 북한 주민들도 이젠 국정가격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21년 만에 국정가격과 공장 노동자 월급을 대폭 인상하는 이유는 뭐라고 분석하십니까?
손혜민:여러 가지로 접근할 수 있지만 우선 공장 노동자의 월급과 식량배급 국정가격의 파격적인 인상은 경제관리개선을 준비하고 있는 김정은 정부의 밑그림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습니다.
2002년 7월 김정일 정부도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실시한 바 있거든요. 당시는 더 파격적이었습니다. 공장 노동자의 월급을 65원에서 2,300원으로 인상했고, 식량배급 국정가격도 쌀 1킬로 18전에서 46원으로 인상했습니다. 한마디로 가격을 개혁한 것인데요. 주목해야 할 것은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가 2년 가까이 준비를 거쳐 발표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경제난이 심각했던 1990년대 중반, 북한경제 개혁이 절실했지만 김정일은 ‘나에게 어떤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며 사회주의를 고집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장마당이 형성되며 국영기업 시장화도 확산된 데 이어 대내외 환경까지 급격히 변화하자 김정일은 2000년에 ‘새로운 경제전략을 짜라’고 지시합니다. 이 지시를 집행하기 위해 2000년 10월, 중앙당 경제정책검열부 대외경제정책과장을 조장으로 하는 상무조가 신설되었습니다. 일명 6.3그루빠라고 하죠.
정책 상무조, 즉 6.3그루빠는 1년 가까이 국내 공장과 농장 실태를 조사하는 동시에 중국과 베트남의 개혁정책도 연구하면서 경제관리개선 정책 초안을 만들어냅니다. 가격 현실화를 실시하여 이중가격제를 없애고 포전담당책임제를 실시하는 등 경제개선 내용의 정책적 초안은 2001년 6월 김정일의 비준을 받습니다. 비준된 초안은 다시 내각과 국가계획위원회 중심으로 조직된 ‘실무 상무조’에 넘겨져 실행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2002년 7월 1일 경제관리개선조치로 발표된 것입니다.
이러한 수순을 김정은 정부도 밟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지난해 10월부터 공장노동자 월급을 중요 산업 우선으로 도입하고, 식량배급 국정가격을 인상한 것은 장마당 가격을 현실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그렇다고 시장화가 진전될 혁신적인 변화까지 시도하진 않겠죠. 체제도 유지하고 경제도 살려낼 전략적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김정은 정부의 딜레마로 보입니다.
이예진: 가장 중요한 건 무너진 배급제와 계속되는 물가 폭등 속에 이 같은 정책이 과연 식량 공급을 안정화시킬 수 있느냐겠죠. 손 기자, 이번 조치, 효과는 얼마나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손혜민:정부가 공급능력이 있다면 효과가 없지는 않습니다. 2009년 단행된 화폐개혁을 사례로 본다면, 당시 북한이 국정가격으로 주민들에 공급할 생필품과 식량이 충분했다면 화폐개혁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개인 돈을 10만원 한도로 100:1로 교환해준 것은 국정가격으로 생필품을 구입해 주민들이 살 수 있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발공장과 옷공장 등에 국가가 공급할 원자재가 없으니 공장이 돌지 않아 상점은 비어 있고, 다시 중국시장에서 원자재와 완제품을 수입하다 보니 다시 국제시장 가격에 기반한 물류시장이 조성되어 국정가격은 허울만 남았습니다. 즉 100:1로 교환된 10만원 국돈(북한돈)은 휴지장이 되면서 물가폭등과 민심 폭발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번에도 성패 여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김정은 정부가 21년 만에 식량 국정가격을 인상 조치하는 것은 장마당 가격을 현실화하여 국가유일체계로 식량 유통과 공급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그러자면 우선 국가가 협동농장으로부터 수매받는 현물 알곡 가격을 인상해야 합니다. 물론 식량배급 국정가격이 46원에서 2천원으로 올랐으면 농장에서 생산한 알곡을 국가가 수매하는 가격도 2천원으로 인상된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입니다.
하지만 이 가격은 가격 현실화에 접근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평가입니다. 이 경우는 국가가 협동농장에 영농자재를 공급해주는 조건인 거죠. 즉, 북한의 식량배급제도는 협동농장에서 생산한 알곡을 국가에서 수매받아 주민들에게 공급하는 체계입니다. 그런데 영농자재를 농장 자체로 해결하도록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현실에서는 국가가 협동농장으로부터 수매받는 알곡가격이 시장가격과 같아야 된다는 거죠. 다시 말해 식량배급 국정가격도 쌀 1킬로당 5천원, 수매가격도 5천원이 되어야 협동농장에서 영농자재를 시장에서 구입해 농사를 지어 농업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시에서 살고 있는 공장노동자의 월급도 2,300원에서 5만원이 아니라 100만원 이상으로 인상해야 합니다. 결국 북한의 금융부문을 비롯한 국가경제 구조에서 폭넓은 개혁이 필요하다는 건데요. 하지만 북한은 계획경제를 살려낸다며 자력갱생만 강구하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북한 정부가 공장 운영이든, 농장 운영이든 시장원리에 맡기지 않고 사회주의를 고수하려 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식량문제는 해결될 수 없어 보여 안타깝습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