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주입니다.
- 인민군 주적 교육 실시
- '평화통일에 대한 환상 갖지 말라', '동포, 민족 아닌 제1의 주적'
- 50년간 지켜온 김일성의 원칙 버리는 꼴, 북한 주민은 반응?
- 신년 규찰대 단속 , 항의하는 15세 여학생 집단 구타
최근 인민군 내에서는 남한이 동포나 민족이 아닌 ‘제1의 적대국’이자 ‘주적’이라는 교육이 실시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지난 연말 전원회의에서 포문을 연 뒤 남한을 ‘철저한 타국’,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이라며 발언의 수위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새해 들어 부쩍 거세진 김정은 총비서의 말, 주민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관련 소식 김지은, 안창규 기자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지은, 안창규 기자 : 안녕하세요.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 이런 표현이 등장한 게 지난해 말인데요, 군에서의 교육은 벌써 시작됐네요. 하지만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 남한이 북한의 주적이 아니었던 적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내용을 교육합니까?
안창규 기자 : 사실 말씀한 것처럼 북한 군에 있어 한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주적이었습니다. 하루 첫 일과로 매일 오전 2시간 동안 군인들에 대한 사상교육이 진행되는데 그 핵심은 ‘김정은에 충성하라’는 내용과 ‘한국과 미국에 대한 적대감 고취’입니다.
이번 교육에서는 우선 ‘평화통일에 대한 환상을 절대 가지지 말라’고 교육했다고 합니다. 북한은 지금까지 군을 제외한 사회에서 겉치레이지만 평화통일을 강조했습니다. 대신 군인들을 향해서는 당국이 평화통일의 구호를 높이 들면 들수록 군대는 싸움 준비를 다그쳐야 한다고 역설해왔습니다..
하지만 군인들도 당국의 평화통일 선전과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외세를 배격하자’는 주장에 노출되어 있은 만큼 ‘평화통일’이라는 개념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평화통일’과 ‘우리민족끼리’라는 문구 자체를 잊으라는 겁니다.
또 한국이 우리의 절대적인 제1적대국인 만큼 같은 동족이고 동포라는 인식을 완전히 버리라는 교육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한은 한국을 조선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조선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번 교육에서 남조선이 아닌 ‘괴뢰’라고 호칭하며 절대 통일의 길을 같이 갈 수 없다면서 같은 민족, 동포라는 개념은 버리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교육은 작년 12월 말(12.26-30) 개최된 노동당 제8기 9차 전원회의 마지막 날 김정은이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며 한국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 데 따른 후속 조치로 볼 수 있겠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북한이 '민족, 통일' 개념을 내던지고 남한을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는 배경에 대해서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요, 군 내에서는 어떻게 봅니까?
안창규 기자 : 북한 군 소식통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분석한데 따른 결과라고 밝혔습니다. 2020년 여름 김정은의 지시로 노동당 내부에서 우크라이나에 비해 군사력이 강한 러시아군이 고전하고 있는 원인을 조사했는데 러시아가 젊은 세대에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같은 민족이라고 교육했던 게 주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는 겁니다.
관련해서 자료를 찾아봤는데요, 2000년 이전 러시아 각급 학교에서는 우크라이나 등 독립국가협동체 나라들에 대해 서로 다른 민족이었는데 강제로 소비에트 연방에 병합돼 한 나라로 살았다고 교육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 이후에는 같은 민족, 같은 나라로 교육했습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지도부를 나치로 몰아가면서 신음하는 동포를 구원하자고 선전했고 전쟁의 명칭도 ‘특별군사작전’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전쟁이 일어났을 때 북한 군인들도 러시아 군인들처럼 한국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동족이라는 인식 때문에 방아쇠를 당기기 주저하면 큰일이라는 우려를 하게 됐다는 겁니다. 더욱이 최근 북한에서 한국 상품이나 영화, 노래, 춤에 빠지는 등 한국을 동경하는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 아닙니까? 이런 영향은 분명 젊은 군인들 사이에도 팽배하고 북한에서는 한국에 대한 환상과 동경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도 볼 수 있겠습니다.
남한에서는 이번 조치가 김정은이 50년간 지킨 김일성의 원칙을 버린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군인이나 주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안창규 기자 : 지금까지 북한 당국은 군을 제외한 사회를 대상으로 미국 등 외세가 우리의 원수라며 외세를 배격하고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을 이루자는 선전을 해왔습니다. 노동당의 통일전선 전략에 따른 건데 어찌 되었든 북한에 남과 북은 땅도 하나, 하늘도 하나, 바다도 하나이고 핏줄도, 언어도, 문화도 하나라며 통일해야 한다는 내용의 노래나 문학작품도 있었습니다.
한국이 적이긴 하나 같은 민족이고 같은 동포이고 동족이라는 인식은 유지했던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평화통일은 생각도 하지 말며, 한국이 우리와 같은 민족, 겨레, 동포라는 인식을 버리라고 강요하니 왜 혼란이 없겠습니까? 벌써 북한 군인은 물론 주민들도 당국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의아해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은 김일성이 만든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도 철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조국통일 3대 헌장은 1974년 남북이 공동으로 합의한 ‘조국통일 3대 원칙’, 그리고 김일성이 작성했다고 하는 19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과 1993년 ‘전민족대단결 10대 강령’ 이 세 가지를 통칭해 부르는 개념으로 통일과 관련한 김일성의 업적으로 선전되었습니다.
그 치적을 기념하기 위해 김일성 사후 2001년에 세워진 것이 바로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입니다. 그런데 이걸 다 부숴야 한다고 하니 주민들의 충격이 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어제 전화가 연결된 한 북한 주민은 태양으로 불리는 김일성의 치적을 다 뒤집고 없애는 처사가 놀랍다며 김정은이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일 처리를 자주 반복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주민들에 대한 통제는 더 강해지는 듯합니다 . 김 기자, 청진 수남구역에서 지나친 규찰대 단속에 주민들이 강하게 항의한 사건이 발생했다고요. 규찰대 단속이야 계속돼 온 것 아닙니까?
김지은 기자 : 네, 새해가 시작하면 연례적으로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 단속을 하는데요. 올해도 청진시 곳곳에는 노동자, 여맹, 대학생 규찰대들이 주민들을 단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일, 청진시 수남구역에서 발생한 사건인데요, 함경북도 주민 소식통은 주민 수십 명이 모여 거칠게 항의했지만 안전부에서 긴급 출동해 집단 소요 사태로는 번지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시발점이 된 사건은 15세 고급중학교 여학생이 대학생 규찰대에 단속된 것입니다. 규찰대는 여학생에게 쫑대바지(스키니 바지)를 입었다며 벌금 5천 원(0.59달러)을 요구했고 학생은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언니는 규찰대에 동생이 입은 것은 쫑대바지가 아니라 스판 재질인 탈리 바지라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계속 항의하자 10여 명의 대학생 규찰대가 여성들을 때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지켜보면 주민들이 규찰대에 거칠게 항의하면서 모여들었고 결국 규찰대가 안전부에 전화로 신고하면서 주민들은 흩어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쫑대 바지 단속은 여전히 하네요 . 이건 한 10년 전에도 했다고 들었는데 비사회주의, 반사회주의 기준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지 않나요.
김지은 기자 : 여전히 갈색머리, 쫑대바지, 김부자초상배지 미착용 단속 대상이고 지름이1센치가 넘는 귀걸이도 단속 대상입니다. 단속 내용은 거의 바뀌지 않고 당국의 지시에 따라 단속의 강도가 변합니다.
지금 같은 겨울에는 대부분의 북한 주민이 두터운 수건을 머리에 쓰고 얼굴을 가리고 두꺼운 솜 동복을 입기 때문에 규찰대가 일부러 세워놓고 검열을 실시하지 않으면 단속에 걸리지 않습니다. 특히 긴 외투를 걸치는 경우 바지가 통바지인지, 쫑대바지인지도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실 단속이라는 건 뭘 입었는가 하는 문제 아니라 당국이 지시하는 대로 따르느냐를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규찰대 역시 단속을 못 하면 규찰대의 본분을 다하지 못 했다고 처벌받습니다.
이 같은 단속에 있어 예년과의 차이점은 규찰대 단속이 강화돼 벌금은 물론 경우에 따라 노동단련대, 집단비판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사건의 다양한 요소가 요즘의 북한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 일단 여학생도 전화로 언니에게 규찰대에 단속했다 도움을 요청하고 규찰대도 전화로 안전부에 신고했다는 점도 주목됩니다. 김 기자, 이번 사건 어떻게 보셨나?
김지은 기자 : 네, 규찰대가 완장을 찼으니 무조건 복종하라는 식으로 여학생을 희롱하다 집단 소요 사건으로 번질 뻔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최근 이와 비슷한 집단 항의 사건을 3-4건 정도 내부 소식통이 전해왔는데요,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많이 쌓인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최근 노동당 전원회의의 사상과 정신으로 무장하자며 주민들에게 보급한 학습제강을 보면, 7페이지 하단에 다음과 같이 명시했습니다.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행위들과의 법적 투쟁에 예봉을 돌리고 총력을 집중하여 특히 집단적으로 소요를 일으키거나 난동을 부리는 현상에 대해서는 정치적 성격으로 번져지기 전에 즉시에 철저히 진압하여야 한다’.
집단 소요나 난동에 대해 북한 당국도 긴장하고 있는 상황임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안 기자도 혹시 북한에서 주민들이 단속에 항의하는 모습 , 목격한 적이 있으신가요?
안창규 기자 : 네, 경제난 이전에는 거의 볼 수 없었으나 2000년 이후에는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2014년경 제가 직접 목격한 것인데요, 시장 밖에서 음식 장사를 하는 한 여성이 단속하는 안전원을 향해 ‘당신은 나라에서 주는 배급을 받아 살지만 나는 전혀 배급을 받지 못한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왜 통제하는가’하고 항의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물건을 압수하겠다 느니 안된다 느니 하는 과정에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였는데 주민들 모두 그 여성을 놔두라고 손가락질하며 안전원을 욕했습니다. 안전원을 막아서는 주민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비난이 쏟아지자 당황했는지 안전원이 꽁무니를 뺐습니다. 이 광경을 보면서 민생은 안중에 없는 당국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보통 아니구나, 사회가 달라졌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새해 들어 보이는 북한의 모습은 외부로는 전쟁을 위협하고 내부는 장마당 통제 등 단속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소 실태 전수 조사가 있었는데요, 2006년 대포동 2호 발사 직후 준전시 상태를 선포한 이후 18년 만이죠. 당시 주민 생활을 떠올려보면 올해도 예상 가능할 것 같은데요, 두 기자는 북한 당국의 움직임, 올해 주민 생활에는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김지은 기자 : 북한 당국이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며 주민 결집을 꾀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소 전수 조사 역시 조사를 한다고 전국의 소 숫자를 당국이 모두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형식적이라는 얘깁니다.
당국이 소를 개인이 기를 수 있게 허용하면 많은 사람들이 소를 길러 농사를 짓는데도 이용하고 식용으로도 가능해 주민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인데 정책의 방향은 없고 단속할 방법만 찾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이런 식이면 올해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더 열악해 질뿐 나아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어 보입니다.
새해 2024년에도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당 제8기 9차 전원회의 사상을 주입하며 ‘대적대외사업부문에서 조선반도에서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남반부의 전 령토를 평정하려는 우리(북한) 군대의 강력한 군사행동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기 위한 준비를 예견성있게 강구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올해는 군사력을 더욱 증강하겠다는 것인데 현재로서 인민 생활이 나아질 최소한의 조건마저 찾기 어려워 보입니다.
안창규 기자 : 김 기자의 의견과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며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고 있는데 북한 내부적으로 전쟁에 대비한 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었을 건 뻔합니다. 현재 준전시 상태가 선포된 것은 아니지만 요즘 김정은의 행보를 보면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분명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김정은이 주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노라고 장담했지만 평양시 건설을 제외하면 이렇다 하게 주민들이 체감할 경제 성과가 없습니다. 살기 어려워지니 김정은과 당국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와 충성도가 나날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결국 전쟁 분위기로 긴장을 고조해 주민들의 불만을 억누르려는 의도인 셈인데 군사적 긴장 타령에 녹아나는 건 힘없는 일반 주민들입니다. 정말 북한 주민들의 끝이 안 보이는 고난이 안타깝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 북한은> 진행에 이현주,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