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주입니다.
-설 이후 이어지는 광명성절 당과류 학용품 선물, 주민들은 반갑지 않다?
-선물, 공급보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장마당’
-장마당 통제로 돈벌이 잃은 주민들에게 온실 재배 인기
-당국의 장마당 통제, 주민 생활에 어떤 영향이?
코로나 봉쇄가 유효했던 지난해 설에 비해 올해는 세관도 많이 열렸습니다 . 물가가 내려갈 거라는 기대도 있었을 텐데요. 실제 상황은 어땠습니까?
김지은 기자 : 네, 민속 최대의 명절인 음력 설이라고 하지만 엿새 뒤 있을 광명성절에 가려 음력 설은 더욱 희미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그 속에도 설날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설날에 잘 먹어야 한해가 편하다는 것이 일반 주민들의 인식이기 때문인데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코로나 봉쇄가 완화된 후 맞는 첫 음력 설이라 대부분의 주민이 물가가 내려갈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물가는 기대와는 달리 올랐습니다.
함경북도의 물가를 보면 입쌀 1kg에 6,200~6,300원 (미화 약0.76달러), 강냉이 쌀 1kg에 3,500~4,000원(미화 약0.49달러), 돼지고기 2만 8천(3.45달러)이며 해당 지역의 장마당에서는 소고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1월 초까지 1kg당 8,000원(0.98달러)이던 수입산(중국) 귤도 13,000원~15,000원(약 1.85달러)까지 올랐습니다. 여기에 옷과 신발, 비누 등 생필품 가격도 일제히 올랐다고 소식통은 전해왔습니다.
명절 공급이나 광명성절 공급은 있습니까 ?
김지은 기자 :지난 1월 설날이자 김정은 생일을 겸해 입쌀 3kg을 국정 가격으로 1kg당 5,400원(미화 0.65달러)에 팔아줬습니다. 당시 시중에서 입쌀 1kg이 6천 원(미화 0.74달러) 정도였으니 당국이 시중 가격에 비해 1,800원을 싸게 팔아 준 겁니다. 너무 미미한 공급이죠. 하지만 이번 광명성절에는 그런 혜택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광명성 절을 앞두고 어린이들에게는 당과류 선물 공급이 예정돼 있습니다. 15일 정도 공급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어린이 1명당 공급되는 선물당과류는 예년처럼 사탕과 과자, 강정 등을 포함해 1킬로 단위로 포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통 북한 주민들은 당과류 선물을 받으면 장마당에 판매합니다. 당국에서는 선물 받은 당과류를 판매하면 단속하지만 주민들 입장에서는 앉은 자리에서 먹어 없앨 수 있는 사탕, 과자보다는 쌀을 바꿔서 며칠 먹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겁니다. 지난해의 경우, 어린이 당과류 1kg이 2만 원 정도로 거래됐는데 이 가격이면 쌀 3 킬로 정도를 살 수 있었습니다. ( 관련기사)
이 정도라면 선물 , 공급이라 부르기에 무색한데 이렇게라도 선물을 챙기는 이유는 역시 명분 챙기기일까요?
김지은 기자 : 네, 그게 주된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2월 12일 북한 당국은 유치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학용품을 선물했는데요. 이것 역시 국가 지도자로서 명분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이번에 선물한 학용품에는 선물명세서까지 갖춰져 있는데 연필과 지우개 크레용(크레파스), 수채화구, 중성필(샤프), 원주필(볼펜), 필갑(필통), 각종 자, 학용품곽(포장곽)까지 10가지 입니다. 광명성 절에 맞춘 선물이라는 것을 명시하기 위해 선물명세서에는 연월일까지 밝히고 있습니다. 또 한쪽에는 ‘광명성절을 맞으며’라는 문구와 함께 아래에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은 원수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전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서는 선물의 위상이 지금과는 달랐고 선물을 받을 때도 항상 감사를 표하며 받아서 소중히 먹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세대는 달라졌습니다.
요즘은 가정에서도 자식을 낳지 않아 선물 대상도 별로 많지 않고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보다도 질이 낮은 것이 허다합니다. 당에서 선물이라는 생색을 내기도 무색할 지경이라는 겁니다. 소식통은 선물도, 식량 배급도 다 필요 없으니 차라리 주민 스스로 벌어먹을 수 있게만 해달라는 것이 대다수 주민들의 요구라고 전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 뭐든 자체로 잘 생산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요즘은 개인 온실이 돈벌이로 주목받고 있다고요. 안 기자, 온실은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네요.
안창규 기자 : 개인 온실은 텃밭이 있는 사람이라야 가능한데 북한에서 한 가족이 사용하는 텃밭은 30평까지 허용됩니다. 북한 주민들이 텃밭에 설치하는 온실은 형태가 2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한국의 비닐하우스를 축소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온실은 사람이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 작업을 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다른 하나는 농촌에서 이른 봄 일찍 모를 키우기 위해 땅에 아치를 박고 그 위에 비닐을 씌우는 형태입니다. 이랑 2~3개 정도의 너비에 아치 식으로 비닐을 둥글게 낮게 씌우는 형태지요.
사실 두 번째 경우는 온실이 아니라 냉상 모판이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냉상 모판은 북한식 표현인데 추위와 바람을 막고 태양열을 이용해 온도를 유지하면서 땅에 직접 심는 것보다 일찍 모를 키우는 비닐박막으로 된 시설로 된 보온 묘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로 어떤 작물들을 키우는지도 궁금합니다 .
안창규 기자 : 함경북도 주민들이 개인 온실에서 주로 재배하는 작물은 딸기와 토마토라고 합니다. 수박을 키우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기온이 낮은 함경북도에서 딸기와 토마토는 흔한 게 아니며 수박은 더 귀한 작물입니다. 그럼에도 딸기나 토마토, 수박은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 수 없지요.
문제는 온실이나 냉상 모판 내부 온도 보장입니다. 보통 1~2월에 파종하는데 추운 날씨에 작물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온도를 보장하기 위해 온실 안에 난로를 놓거나 밖에서 불을 때 온도를 덥힙니다. 밤에는 바깥 찬 기운이 침습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온실이나 비닐 박막 위에 볏짚이나 모포 같은 것을 씌운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보통 6월에 수확하는 딸기를 한 달이나 혹은 그 이상 먼저 수확할 수 있고 8월에 수확하는 토마토도 7월에 수확해 팔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제철보다 빨리 수확한 딸기나 토마토가 시장에 나오면 잘 팔린다고 합니다. 물론 제철 딸기나 토마토에 비해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돈 없는 대부분 일반 주민의 접근이 어려운 것도 현실입니다.
큰 도시 시장 같은 경우 장마당 통제가 엄격해 , 옷 신발 등 공업품 등을 팔던 사람들이 돈벌이가 끊겨 찾은 것이 이런 온실 재배라고 보도했는데, 실제 장마당 통제 상황은 어떻습니까?
안창규 기자 : RFA 다른 기사에서도 보도됐지만 북한 당국은 작년 여름 경부터 시장에서 식량과 공산품을 팔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식량은 당국이 운영하는 량곡판매소에만 팔게 하는 상황이고 일반 공산품 역시 종합상점, 공업품상점, 수매상점 등을 이용하라는 겁니다.
공산품을 비롯해 일정 품목을 정해 팔지 못하게 하는 단속과 통제는 이전에도 자주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통제는 성격이 달라 보입니다. 작년에 근로자 월급을 10배 정도 인상하면서 시장 무력화 조치에 돌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장을 무력화하고 량곡판매소와 상점 등을 통해 국가가 모든 상품유통을 관할함으로써 개인 수중에 자금이 쌓이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입니다.
시장은 사회주의와 거리가 멉니다. 개인 간 거래가 이뤄지고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책정되는 자본주의 시장원리가 작동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사회주의 북한에 시장이라는 자본주의 요소가 수십 년간 존재해 온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당국은 시종 시장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계속 통제해 왔습니다. 시장을 가리켜 ‘자본주의 온상’, ‘개인주의 서식장’이라고 하는 북한 당국의 시각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경제난 해소와 식량 배급 회복이 요원한 상황에서 시장을 강하게 통제하면 주민 불만이 폭등할 것을 우려해 한시적으로 허용한 것에 불과했던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근로자 월급 인상과 동시에 취해진 시장 통제는 자본주의 요소인 시장을 서서히 없애려는 시도의 첫 단계라 볼 수 있습니다.
장마당이 활성화된 것이 고난의 행군 이후로 볼 수 있으니 벌써 30년 이상 북한 주민들에게는 생활의 중심이 됐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당국이 바라는 대로 주민 생활이 국영상점 위주인 80년대로 회귀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주민 생활에는 어떤 영향을 예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안창규 기자 : 북한 당국의 목표가 시장을 없애는 것이라는 건 명백합니다. 문제는 그게 가능한가하는 건데요, 경제난 이전처럼 비록 부족하지만 주민들이 월급으로 국영 량곡판매소나 종합상점 등을 통해 필요한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구입해 한 달 간 살 수 있다면 시장을 완전히 없애는 게 가능할 겁니다.
그러자면 우선 현재 멈춰있는 모든 공장 기업소가 가동해야 하고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줘야 합니다. 이번에 10배 정도 월급을 올렸으나 그것으로는 아직 한 달 사는데 부족합니다. 또 식량과 각종 생필품 등을 충분히 생산 보급할 수 있어야 하며 국내에서 자체로 생산하는 제품의 질이 주민들의 눈높이를 충족해야 합니다. 이것도 아직 거리가 멉니다.
여기에 더해 현존하는 시장가격과 국정 가격의 차이를 없애야 합니다. 이건 당국이 막무가내로 추진할 순 있으나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국영 봉사망을 이용하라는 당국의 강요와 조치는 여러 부작용을 낳을 겁니다. 시작은 거창했으나, 서서히 없었던 일로 되어버린 2009년 화폐개혁과는 다르겠지만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은 분명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30년 가까이 자본주의 시장에 적응했습니다. 원하는 물건을 골라 살 수 있고 가격도 흥정도 할 수 있으며 돈을 지불하면 집까지 배달해 주는 등의 시장을 주민들이 완전히 잊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섣부른 시장 말살 및 국영 봉사망 회복 시도로 인한 여러 부작용과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이 겪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소식통들이 전하는 주민들의 요구도 장마당에서 마음대로 벌고 먹고 살게 해달라인데요 . 어쩌면 가장 쉬워 보이는 이것이 북한 당국에는 가장 피하고 싶은 길인 듯 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전하겠습니다. 김지은, 안창규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김지은, 안창규 기자 :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다음주 새로운 소식과 함께 찾아오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