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성 생일 태양절 명칭 없애라
- 태양절 행사 처음으로 당일에 안 열려
- 이례적으로 4월 11일 노동당 제1비서 추대 기념일 행사 크게 열려
- 주민들 "자신이 태양이 되기 위한 것"
김일성 주석은 북한에서 가장 건드릴 수 없는 , 절대적인 권위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번 조치, 어떤 면에서는 충격인데요, 관련 소식 전달받으며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김지은 기자 : 믿기지 않았죠. 다른 것도 아니고 북한에서 태양절을 없앨 수 있을까,제가 소식을 듣고 소식통에게 맞는지 되물을 정도였습니다.
안창규 기자 : 저는 오히려 태양절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가 하달되었으니 그야말로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진 셈인데, 관련 지시를 받은 간부들, 그리고 일반 주민들까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습니다.
어떤 내용의 지시가 내려온 겁니까 ?
김지은 기자 : 네, 소식통은 '지금부터 4월 15일을 태양절로 부르지 말라'라는 지시를 4.15 공연 준비하는 과정에서, 4월 10일경 전달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미리 지시된 것이 아니라 태양절을 앞두고 전달된 것입니다. 또 주민 대상의 공식 발표가 아니라 중앙당의 지시를 도당 위원회를 통해 단위별, 조직별로 하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소식통은 “당에서 행사 준비 방향과 행사에서 사용할 문구까지 정해 내려왔는데, 기존의 ‘태양절을 경축하며 준비한 예술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에서 ‘4월 15일을 맞으며 준비한 예술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로 변경하라고 지정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이 같은 경향은 4월 15일 당일, 노동신문 보도에서도 확인됩니다. 2면 기사로 태양절을 다뤘지만 ‘태양절’이라는 명칭은 제목 아래 작은 글씨로 한 번만 등장합니다. 대신 ‘4월 명절’, ‘4월 봄명절’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는데요, 이 표현은 4월 15일 보도 뿐 아니라 지난 2월부터 북한 관영 매체에 등장했습니다.
지난 12월, 김정은 총비서는 남한을 적대적인 다른 국가로 지정하며 소위 '두 국가론'을 선언한 뒤 선대의 흔적을 지우는 경향을 노출해 왔습니다. 특히 올해 김정은 총비서의 생일 행사가 달랐다고요?
김지은 기자 : 그렇습니다. 지난해까지 김정은은 설날을 쇠라면서 전국의 어린이들에게 당과류를 공급했습니다. 설 명절에 당과류를 공급한 것은 이례적이어서 당시, 주민들도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서 당과류 공급은 명절 공급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통치자들이 자기 생일에만 주는 특별한 하사품 같은 의미이거든요. 올해 설에는 당과류 공급을 하면서 1월 8일 즉 김정은 생일을 맞아 주는 것이라고 주민들에게 밝혔다고 합니다.
내용물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낙후한 사탕 500g에 과자 500g이고 지급 대상도 탁아 유치원까지로 제한됐습니다. 지금 북한도 자식을 한 명씩만 낳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소학교 학생을 대상에서 제외하면 실제로 당과류를 지급받은 대상은 극히 적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4월 11일 행사를 크게 기념했다는 점도 이례적입니다. 올해 4월 11일은 김정은 총비서가 노동당 제1비서로 추대된 지 12주년 되는 날입니다. 김 총비서에 대한 충성 맹세를 다지는 경축 행사를 준비하고 화려한 경축 포스터가 거리에 나붙었는데 소식통은 주민들이 태양절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서 12주년 행사만 강조하는 분위기에 의문을 표한다는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실제 올해 태양절 당일 행사도 많이 축소됐죠 ?
김지은 기자 : 네, 그렇습니다. 북한에서 국가적인 정치 행사는 눈보라가 치고 폭우가 쏟아져도 계획대로 진행하곤 했습니다. 우산을 들고 행사에 참여하고 눈이 내리는 속에서 행사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비 예보가 있다면서 4월 14일, 일요일에 축포, 공연 또 군중 무도회를 진행했습니다. 북한이 태양절 행사를 14일에 당겨서 한 사례는 4월 명절(97년 태양절 지정 이전에는 4월 명절로 지칭)을 기념한 이래로 처음입니다.
인민을 생각하는 것처럼 비가 오기 때문에 행사를 앞당긴다, 이렇게 지시가 내려졌지만 주민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대학생 청년예술공연과 대학생 무도회만 진행한 행사 자체가 반토막이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안창규 기자 : 보통 태양절에는 10일경부터 각종 행사들이 진행되는데 기념보고대회, 사적관 참관, 집중 강습, 영화문헌학습부터 당일날 동상 참배, 예술 공연 등이 열립니다.
특히 지방 같은 경우 극장, 영화관, 놀이시설 같은 것이 적어, 놀거리가 없다 보니 태양절날 거리에서 진행되는 군 기동예술선전대 공연을 보는 게 하나의 재미인데 올해는 이마저도 진행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2.16부터 소학교(초등) 학생들을 당과류 선물 공급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이전보다 명절 분위기를 떨구는 작용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4.15 명절에 주민들에게 공급된 명절 물자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만 이 부분은 고난의 행군 이후부터 평양을 제외한 지방은 명절 공급이 말뿐이지 너무 허술했습니다. 심지어 명절 공급 품목 수를 채우기 위해 주민들이 쓰지 않는 성냥을 준 적도 있으니까요.
특히 태양절을 맞아 진행되는 행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사는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라 할 수 있는데 김정은은 최근 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 정치에 대체로 무관심하지만 내부적으로는 큰 사변인데요?
김지은 기자 : 일단 소식통은 "김정은 자신이 태양이 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통일도 없애고 태양절도 없애고 다 없앤다"면서 "먹고 살기에 바쁜데 태양이면 어떻고 광명이면 어떤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이것이 주민들의 솔직한 속내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민들은 태양절을 없애는 것에 자체에 대한 비판은 나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속내는 김일성이 좋아서라기보다 김정은에 대한 불만이 크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본인이 직접 주민들에게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 이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굶어 죽는 사람들이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또 살기 위해 저지르는 생존형 범죄가 늘어나자 강하게 처벌하고 다시 공개 총살이 등장한 현실에서 통일을 없애고 태양절을 없애는 것이 주민들에게 쓸데없는 짓으로 느껴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남한 내에서도 북한의 이런 움직임과 관련된 분석이 다각도로 나오고 있습니다 . 대체로 김정은이 어려운 북한 경제의 사정 속에서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 한다는 분석인데 안 기자, 어떻게 분석됩니까?
안창규 기자 : 김정은의 나이가 이제 겨우 40살인데요, 할아버지, 아버지에 버금가는 권위와 위신을 가지는데 급급할 나이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개인 우상화를 서두르는 현 상황을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건강 이상과 연결하고 있습니다.
태양절 관련 소식은 탈북민 사회에서도 큰 화제인데요, 탈북민들은 특히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입니다. 정상적 상황에서 아버지, 할아버지를 깎아내리고 자기를 그 위에 올려 세우는 일을, 세습으로 권력을 차지하는 북한에서 거리낌 없이 자행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나온 결론입니다.
김정은이 민족을 부정하고 통일을 부정한 이유가 최근 몇 년간 국내외 상황을 고려할 때 자칫 김씨 일가의 권력 유지가 어렵다는 판단하에 3대째 이어져 온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데 초점이 맞혀져 있다는 건 명백합니다.
일부 탈북민들은 최근 김정은의 모습을 보면 이전과 같은 자신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하는데요, 어린 딸을 ‘향도’라고 표현하고 이후 수정한 것, 통일을 거부한 입장을 주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언급 못 하는 등의 상황에서 그런 모습이 보인다는 지적입니다.
또 전문가들의 분석을 보면 대체로 김정은을 어버이로 승격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졌다는 분석합니다. 즉 집권 12년이 된 김 총비서가 할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우상화 수위를 낮춰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 자신의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는 겁니다. 또 이른바 정상 국가를 표방하며 봉건 왕조를 연상시키는 부분을 축소한다는 분석, ‘두 국가론’을 위해 선대 유훈, 업적과 거리는 두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김정은이 3대 세습의 당사자라는 겁니다. 지금 김 총비서가 그 자리에 있는 이유는 김일성의 손자,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점 때문이며 이들의 그림자를 지울수록 본인의 존재 이유 역시 약화되는 모순을 피할 수 없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태양절 명칭 변경 , 축소에 대한 두 기자의 견해도 궁금합니다.
김지은 기자 : 김정은 총비서, 자신의 존재감이 김일성에 의해 묻힌다고 생각해 내놓은 조치로 봅니다. 김일성, 김정일을 우상화하는 한 자신의 우상화는 바랄 수 없을뿐더러 김일성과 김정일의 세습 후계자로서 그들과 같이 해야 된다는 압박감도 존재한다고 봅니다.
그러자면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비슷한 비중으로 실려야 하는데 김일성, 김정일은 모두 주민에게 공개했지만 김정은은 아직 가계에 대한 부분이 없습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다카다 히메로 살다가 귀국한 재일 동포 출신의 어머니 고용희를 교과서에 밝힐 수는 없는 것이죠. 그러나 앞으로 김정은이 북한을 통치하는 한 주민들은 김정은의 가계에 대한 의혹을 지울 수 없을 것입니다.
안창규 기자 : 태양절 표현 사용금지, 태양절 행사 축소와 같은 조치를 취하는 건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아닌 선전선동부의 주관입니다. 지금 선전선동부에 누가 있나요? 선전선동부 실권자인 부부장이 바로 김여정입니다. 김여정이 김정은의 허락을 받아 모든 걸 주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세계는 물론 국내 여론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몸값 높이기에만 몰두하는 김정은 남매의 행태가 이들이 성장과정과 연관있다고 봅니다. 김정일은 일반 주민과 똑같지 않았지만 주민들이 다니는 소학교, 중학교, 대학을 북한에서 다녔습니다. 북한에서 제일 중요한 조직생활, 집단생활을 겪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김정은과 김여정은 소학교도, 중학교도, 대학도 전혀 북한에서 다니지 않아 일반주민들과의 접촉과 교류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왕궁 안에서 누구도 통제하지 않고 고립무원하게 성장한 겁니다.
북한은 2020년 초 세계적인 코로나 대유행 사태가 발생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국경을 강력히 봉쇄하며 외부와의 연계를 차단한 가운데 내부 통제 강화에 주력해 왔습니다. 코로나를 구실로 국경을 모두 차단하고 살벌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주민들을 통제한 결과가 김정은 우상화라는 결말은 좀 씁쓸합니다.
두 국가론 , 태양절 축소 그다음은 어떤 결정이 나올까 예상이 분분합니다. 어떤 시나리오 예상할 수 있을까요?
김지은 기자 : 김정은을 태양의 자리에 올려놓는 후속 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김정은을 "주체 조선의 태양"이라고 지칭하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노동신문은 태양절 이틀 후인 4월 17일, 교육비 원조와 장학금 지원에 대한 조총련의 인사를 전하며 "주체 조선의 태양이시며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 삼가 드립니다"라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이 기사는 노동신문의 5면에 실렸습니다.
노동신문에 실린 축전은 각 나라에 파견된 대표부들이 받아 본국으로 보내는 것인데요, 해외 파견 북한 회사들의 문건을 보면 축전을 보내는 대상이 문구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파견 대표들이 축전 문구를 만들어 수표만 받는 형식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즉 이 조총련의 축전 문구 역시 북한 당국이 만들어낸, 당국의 의도가 100%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안창규 기자 :김정은을 태양이라고 칭한 것만큼 김정은 총비서의 생일이 국가적인 명절로 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간부들, 군부대를 시작으로 김정은 초상화가 등장할 것이고 김정은이 할아버지, 아버지를 능가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 하는 만큼 앞에서 언급한 조치가 취해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김정일보다는 김일성을 지우는 데 주안점을 두고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이미 그렇게 진행된 사례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례가 있지만 2013년 이후 일부 교육기관의 명칭에서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 부인 김정숙, 동생 김철주, 삼촌 김형권의 이름도 삭제했고 특히 김정은이 강조하고 있는 평양종합병원의 위치는 당 창건 기념탑 앞쪽으로 위치를 잡았습니다. 기존에는 만수대에서 강 건너 당 창건 기념탑이 바로 보였지만 이제는 그 앞을 평양 종합병원이 막고 있습니다. 이런 의도가 여러 차례 노출돼 왔습니다.
태양이 누가 된다고 해도 주민들의 생활이 바뀔 것이 없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 <지금 북한은> 김지은, 안창규 기자 함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지은, 안창규 기자 :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함께 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