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프랑스식 빠다빵’ 포장지 캐릭터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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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프랑스식 빠다빵에 빠다는 없다?

-빵 포장지 캐릭터 또 베꼈나

-김씨 일가, 대대로 기분 따라 간부 처벌

버터 향에 속이 부드러울 것만 같은 ‘프랑스식 빠다빵’, 북한에서 새로 나온 빵인데요. 이름부터 포장지까지 전혀 북한스럽지 않은 이유 짚어봅니다.

최근 양강도 삼지연 시찰에 나섰다가 기분이 나빠 간부들을 처벌했다는 김정은,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자세한 소식 손혜민, 문성휘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이예진: 최근 북한에서 새로 나온 빵 하나가 눈길을 끌고 있는데요. 이름부터 ‘프랑스식 빠다빵’입니다. 이제까지 나왔던 제품명과도 차별이 좀 되는 것 같고요. 뭔가 고급스러움을 표방한 것 같은데, 손혜민 기자, 실제로 기존의 빵과는 어떤 점들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까?

손혜민:네, 지난 6월 송도원종합식료공장에서 생산된 프랑스식 빠다빵을 보면요. 제품명이 특이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빵 생산지가 프랑스 아닙니까. 북한도 개혁 개방된 프랑스의 빵 문화를 도입하는 게 아니냐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엄연하게 이것은 국산화를 강조하는 당 정책 논리와 모순되죠. 북한식으로 말하자면 '평양빵'이라고 해야 되겠죠.

하지만 자본주의 문화가 대중 속 깊이 뿌리 내린 것을 당국도 알고 있는 겁니다. 누가 봐도 프랑스식 빵이라면 국산 빵보다 고급스럽지 않습니까. 그러니 부모들은 자녀들이 야유회를 가게 되면 프랑스식 빵을 사 주게 되는데요. 그러면 당연히 소비가 높아지는데, 이런 점을 감안해 ‘프랑스식 빵’으로 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프랑스식 빵이 기존 국산빵과 다른 점은 ‘빠다’라는 품질을 강조한 것입니다. 빠다 역시 자본주의의 상징입니다. 그럼에도 프랑스식 빠다빵을 특화한 것은 식품공장 간 판매 경쟁을 엿볼 수 있죠. 북한에서 가장 빠르게 진입할 수 있는 식품산업이다 보니 특권층이 저마다 뛰어들었거든요. 하루에도 수십 종류의 빵이 대량 생산되고, 이것을 빠르게 유통해 생산비용을 환수하려면 고객 눈길을 끌어야 하므로 빵 제품명에 프랑스를 도입한 것 같습니다.

문제는 맛입니다. 프랑스식 빠다빵 맛이 일반 효모 빵과 다르지 않은데, 왜 그럼에도 가격을 일반 빵보다 천원 더 비싸게 파는지 모르겠다는 게 현지 주민들의 반응입니다. 자본주의 문화를 뿌리 뽑는다면서 옷차림과 말투까지 통제하는 당국이 돈벌이를 위해 자본주의 나라명을 빵 제품에 붙이면서 품질까지 속이는 이중적 행태에 주민들의 쓴 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이예진: 손 기자가 직접 공수한 프랑스식 빠다빵의 포장지를 보면 양면 상단에 웃고 있는 얼굴에 손도 있는 빵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데요. 저는 어디선가 많이 본 느낌이었습니다. 북한이 창의적으로 만든 것일까요?

손혜민:창의적이기보단 모방에 가깝죠. 우선 프랑스식 빵 포장지를 보면 한국에서 이와 엇비슷한 캐릭터가 빵부터 장난감, 생활용품 등에서 발견되고 있고요. 제가 보기엔 한국에서 귀여운 캐릭터로 사랑받는 펭귄, 즉 펭수와도 비슷하거든요. 똑같진 않지만 둥그런 하얀 얼굴이라든지, 입모양이라든지 노란 테두리로 캐릭터를 살린 것은 펭수와 다소 유사합니다. 평양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소득이 높은 주민들은 가격이 비싸도 한국 식품을 선호하는데, 이러한 심리를 활용하여 한국 디자인을 모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식품을 모방한 북한 식품이 한둘이 아닌데요. 북한의 대표적인 식품산업기지 평양 금컵종합식료공장과 원산 송도원종합식료공장에서 생산한 즉석국수, 즉 라면 포장지를 보면 한국의 신라면 포장지와 바탕 색깔, 그릇에 담긴 라면 사진 등이 너무 유사해 혼돈 될 정도죠. 평양에서 생산된 ‘새우맛 튀기과자’는 한국의 ‘새우깡’ 포장지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모방했습니다.

그러니 북한 식품 포장지가 세련되었다고 평가도 나오고 있지만 이건 어쩌면 한국의 식품 문화를 국가적 차원에서 모방하고 있어 포장 기술이 발전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예진: 그러니까 서양식 고급빵 같은 이름부터 한국적인 빵포장지까지 따라해서라도 세련된 느낌을 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맛은 다른 북한산 빵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요?

손혜민:북한은 체제 안정이 시급하고, 그러자면 우선 경제 회생이 우선입니다. 북한 현실에서 가장 빠르게 정상화할 수 있는 산업이 경공업이고, 경공업 중에서도 식품산업이 비교적 안정적입니다. 한류 확산으로 체제 안전이 위협받는 것은 우려되지만, 소비가 빠른 식품산업을 발전시켜야 내수 자금이 유통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한국의 식품 포장지 도안을 무단으로 모방하는 것인데요. 어떻게 보면 북한 당국의 딜레마가 아닐까 싶습니다. 국산 식품을 꽝꽝 생산해 국영 상점과 시장에 유통할수록 한국문화와 자본주의 문화가 확산되니까요. 북한 당국이 비핵화에 적극 나서 국제 사회의 대북제재를 해소하고, 남북이 협력하는 식품산업으로 발전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예진: 다음 소식입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최근 양강도 삼지연을 시찰하면서 비상식적으로 간부들을 강하게 질책했다고 하는데요. 김정은 지시대로 설계, 건설한 베개봉 호텔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겁니까?

문성휘:북한의 언론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번 김정은의 삼지연 현지지도는 삼지연 시당책임비서와 시 인민위원장, 삼지연시 상업관리소장이 함께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1일 첫날에는 삼지연의 여러 곳을 돌아보면서 김정은의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다음날인 12일, 베개봉 체육촌을 돌아보면서 스키장 정점에 건설된 베개봉 호텔에 들렀을 때 벌어졌다고 합니다.

베개봉 호텔은 내부에 넓은 식당과 청량음료점, 현대적인 회의실까지 갖추고 있어 김정은은 대단히 만족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관광객들이 머물 호텔 방에 들어서는 순간 김정은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베개봉 호텔은 3성급 호텔로 한 개 방에 2명, 최고 4명까지 머물게 설계되었다고 하는데요. 3성급 호텔인 만큼 방도 넓지 않고 실내 가구나 비품도 좋은 재료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비좁은 방을 둘러보며 김정은은 노발대발했다는 겁니다. 방이 너무 좁아 관광객들이 불편할 거라는 게 김정은이 분노한 이유인데요. 김정은은 그 자리에서 당장 설계를 담당한 간부들과 준공검사를 담당한 간부들을 불러오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삼지연시의 건물들은 이미 준공검사까지 마친 상태여서 설계 담당자들과 준공 담당자들이 남아 있을 리 없었는데요.

이예진: 그러니까 호텔 방이 왜 이렇게 좁고 불편하게 설계되었는지, 이게 어떻게 준공검사를 통과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할 간부들이 없었다는 거죠?

문성휘: 그렇죠. 그래서 김정은이 더 크게 화를 냈다는 건데요. 당장 삼지연시 건설지휘부 준공검사위원회 성원들을 사업정지시키고 건설을 책임진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과 준공검사를 담당한 국가건설 감독상, 설계를 담당한 백두산건축연구원 간부들을 엄중히 문책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내부에서는 베개봉 호텔 설계나 준공검사를 담당한 간부들에게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목소리가 매우 높습니다. 애초 베개봉 호텔이 5성급 수준의 고급 호텔이었다면 관광객들이 머물 방도 작지 않았을 거라는 거였는데요. 베개봉 호텔은 외국인 관광객이 아닌 내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지은 3성급 호텔이어서 방이 작을 수밖에 없다는 거였습니다. 값이 저렴한 3성급 호텔을 많이 지어 한 해에 외국인 관광객 100만명을 유치하라는 지시는 2017년 2월에 김정은이 내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베개봉 호텔을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을 상대한 호텔이어서 3성급으로 설계되었고, 호텔의 방들도 3성급의 표준에 맞게 설계되었다는 건데요.

그러니까 김정은이 베개봉 호텔을 돌아보며 그토록 화를 냈던 건 3성급 호텔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북한 간부들과 지식인들의 얘기입니다. 김정은과 동행한 간부들 역시 3성급 호텔을 처음 보다 나니 김정은의 화를 달래지 못했다는 건데요.

태어나서부터 요란한 궁전에서만 생활했던 김정은에게 3성급 호텔의 방이 얼마나 초라하게 보였을 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고 남을 것 같습니다. 김정은은 그 자리에서 베개봉 호텔의 방들을 넓히는 개건 확장 공사를 지시했다는 건데요. 걸핏하면 화를 내는 김정은의 비이성적인 성격, 그로 인해 처벌을 받게 될 북한 간부들의 운명을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예진: 건설을 담당한 간부들에겐 실제 잘못이 없는데 결국은 김정은 총비서의 기분이 별로여서 그들을 처벌하게 되었다는 얘기인데, 그동안 김정은 총비서가 기분에 따라 간부들을 처벌한 일들이 종종 있었습니까?

문성휘: 네, 김정은만이 아니고 과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도 자기 기분에 따라 간부들을 마구 처벌하는 만행을 이루 셀 수도 없이 벌여왔습니다. 그 중에는 삼지연에서 벌린 만행들 몇 가지도 있는데요. 삼지연에서 있었던 대표적인 사례로 과거 1988년, 김일성이 노력영웅이었던 삼지연 포태종합농장의 관리위원장과 그의 가족들을 통째로 정치범수용소에 보낸 사건이 있는데요.

1988년 7월, 양강도 삼지연군 포태종합농장을 찾은 김일성은 그곳 관리위원장에게 “이곳에 보라콩을 심어보라”고 말했습니다. 보라콩, 혹은 호콩이라고도 불리는 이 콩은 러시아나 호주, 캐나다와 같은 나라에서 말 사료로 심던 콩이었습니다. 가공기술이 부족했던 당시의 북한에서 보라콩은 식용으로 이용할 방법이 없었는데요. 그런 점 때문에 관리위원장은 “지금 당장 보라콩 농사를 짓는 건 곤란하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김일성이 크게 화를 냈습니다. 자신의 말이 곧 법이고 지상 최대의 명령인데 일개 관리위원장이 자신의 말을 거역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관리위원장은 즉각 김일성과 분리돼 구속되었고, 가족들과 함께 현대판 종파라는 누명을 쓰고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김정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99년 8월, 김정일은 양강도 삼지연군 무봉노동자구에 위치한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비’를 돌아보았습니다. 당시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 앞에는 삼지연 군당 책임비서와 삼지연 박물관 해설강사가 대기하고 있었는데요. 김정일은 달려와 인사를 하는 삼지연군 책임비서를 향해 온갖 욕설을 다 쏟아냈습니다. 파마로 곱슬머리를 만든 것이 온갖 욕설을 들은 이유인데요. 삼지연군 책임비서는 즉각 해임 철직되었고, 나중엔 그 행방조차 묘연하게 사라졌습니다.

김정은이 삼지연에서 자기 기분이 좋지 않다고 화를 낸 건 2014년 11월, 집권 이후 첫 백두산 등정에 나섰을 때였습니다. 당시 백두산에 오른 김정은은 모닥불 주변에 모여 손을 녹이는 간부들을 향해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합니다. “이런 엄동설한에 빨치산 대원들은 백두산에서 싸웠는데 그만한 추위도 못 참느냐?”며 화를 냈다는 건데요. 그러면서 “앞으로 당 간부들이 우선적으로 겨울철 백두산을 답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수많은 동상 사고로 얼룩진 북한의 겨울철 백두산 답사행군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예진: 특히 이번 김정은의 삼지연 현지 시찰은 은밀하게 조직되었다는 소식통의 전언이 있었는데요. 이번 시찰이 다른 때와 달리 더 조심스러웠던 이유가 있을까요?

문성휘: 김정은의 현지 시찰은 워낙 비밀입니다. 그런데 이번 삼지연 현지지도의 경우 일정이 1박2일로 매우 빠듯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던 것 같은데요. 11일 아침에 비행기로 삼지연에 도착해 12일 오후 역시 비행기로 삼지연을 출발했다고 하니깐요. 집권 초기 김정은은 자신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곳곳에 전용비행장을 건설하고 비행기를 자주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2015년 이후부터 국내는 물론 해외를 다녀올 경우에도 절대로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는데요. 과거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도 비행기 사고가 두려워 항상 열차나 승용차를 이용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김정은 역시 고소공포증, 항공기 사고에 대한 공포증이 있다는 얘기들이 많은데요. 그러던 김정은이 이번 삼지연 방문에 비행기를 이용한 건 그만큼 주민들의 눈에 띄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민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삼지연으로 향하는 철도에 전용 열차를 투입하고, 도로에는 행사를 가장한 승용차까지 들이밀었습니다. 그러면서 비행기를 이용해 삼지연을 찾았다는 건데요. 요즘처럼 내외 정세가 온화한 때에도 인민이 두려워 현지지도마저 은밀히 진행할 처지라면 앞으로 예상치 못할 어려움에 처할 경우 김정은이 어떻게 국가와 인민을 이끌겠다는 것인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