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자식의 목숨을 구할 마지막 500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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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주입니다.

-러 파병 소식들은 북한 주민들 “우리는 왜 미국 아닌 우크라이나와 싸우는가?”

-북한 언론들 ‘우크라이나 괴뢰’, ‘젤린스키 괴뢰’로 표현

-유족 가족에 당원증, 평양 거주 특혜 주는 이유?

-러시아 파병과 중국 파견 여성 노동자 귀환의 상관관계

-북 부모들 자식의 목숨을 구하는 마지막 기회로 여기는 ‘개방형 결핵진단서’

생포된 파병 북한 군인의 영상이 우크라이나 당국을 통해 공개됐습니다. 이들의 영상이 큰 화제가 된 가운데 북한 내부에서는 사망한 군인 유가족에 전사증이 전달됐고, 자녀의 입대를 앞 둔 가정에서는 군대를 기피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군인들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 어떤 반향을 가져올까요?

관련 소식 취재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김지은, 안창규 기자 나와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지은, 안창규 기자 : 안녕하세요.

[진행자] 저희가 러시아 파병 사망 군인 가족들에게 전사증이 전달됐다고 처음 보도한 것이 12월 말입니다. 당시 소식통은 12월 중순경, 유가족들을 한 장소에 불러놓고 ‘전사증’을 줬다고 밝혔습니다. 이번에 전해진 소식은 유가족을 평양으로 불렀고 ‘전사증’과 함께 ‘당원증’도 줬다는 내용입니다. 평양에 살게 해준다는 얘기도 들었다고요. 북한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대우입니까?

[안창규 기자] 아주 높은 수준의 특혜입니다.

과거 북한에서 군복무 중 사망한 군인에게 전사증과 함께 당원증을 주는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당원이 아닌 군인이 부주의로 터지는 수류탄을 자기 몸으로 막아 김 부자의 초상화나 유화 작품을 보존했거나, 무기 탄약고, 폭탄 창고의 안전에 기여했거나, 혹은 같이 있던 다른 군인들을 살렸거나 하는 등의 큰 공로를 세운 경우입니다.

더 특수한 경우 영웅칭호를 주거나 고향과 학교에 사망한 군인의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또 어린 자녀가 있다면 일반 학교가 아닌 만경대혁명학원이나 남포혁명학원에서 공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죽더라도 김정은과 체제에 충성하면 이런 혜택을 받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군인이 복무 중 훈련이나 임무 수행 중 사망하는 경우 전사증을 주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북한에서 당원은 김정은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당원이 되었다는 건 부모가 주는 육체적 생명 외에 수령이 주는 영원한 정치적 생명을 받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런 맥락에서 러시아에 파병돼 사망한 군인에게 전사증과 당원증을 같이 주었다는 건, 여기에 더해 향후 평양에서 살게 해준다면 이는 엄청난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참고로 군복무 중 사망한 군인이라 해도 자기 부주의나 원칙과 규정을 지키지 않아 사망한 경우에는 전사가 아닌 일반 사망으로 처리됩니다.

[진행자] 모든 전사자 유족들에게 같은 대우를 할까요? 안 기자, 어떻게 보십니까?

[안창규 기자] 정황에 따라 다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김정은에 대한 충성 정도, 평시 군복무 수행 평가, 파병 현지 전투 과정에서의 용맹성과 수행한 임무의 중요성 정도,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사망 정황이 특별히 고려될 수 있을 겁니다.

북한에서는 사망할 때 어떤 행동을 보였는지에 따라 평가가 하늘땅 차이로 갈립니다. 예를 들어 숨을 거두기 전에 김정은 만세를 부른다거나 김정은에 대한 충성이 담긴 유언을 남겼다든가 하는 것입니다.

북한 마라톤 선수 정성옥의 사례를 보면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1999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세계마라톤대회에 핵심 선수인 김창옥의 페이스메이커로 참석했던 정성옥이 깜짝 1등을 했습니다.

외신기자들이 몰려와 우승 소감을 물었는데 당시 그 장소에 있던 한 한국 기자가 그의 말을 영어로 통역했습니다. 그는 기자들에게 장군님을 그리며 달렸다. 멀리 결승선에서 김정일이 어서 오라고 손 저어 불러주는 모습이 떠올라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외신을 통해 이 발언 내용을 듣고 기분이 좋아진 김정일은 평양 시민을 동원해 순안공항에서 평양시내까지 연도 환영을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일개 체육 선수가 연도 환영을 받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국제체육대회에서 받은 상금을 모두 국가에 바치던 전례를 깨고 정성옥이 받은 대회우승 상금 5만 달러 전액을 정성옥이 가지도록 했으며 노력 영웅도 아닌 공화국 영웅과 인민체육인 칭호를 주었습니다. 또 중앙당 부장급 이상이 타는 최고급 벤츠 승용차와 당시 생존해있는 항일빨치산을 위해 건설한 45평 최고급 아파트를 선물했습니다.

이외에도 정성옥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까지 됐는데 이를 두고 북한 주민들은 정성옥이 입을 잘 놀린 덕을 톡톡히 입는다고 부러워했습니다.

이게 바로 북한 현실입니다.

[진행자]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파병 소식을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그런 가운데 주민들이 갖는 궁금증도 많은가 봅니다. 도대체 누구와 싸우느냐 의문을 제기한다는데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알지 못 하는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의문이 아니겠습니까?

[안창규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의아해하는 점은 러시아에 파병된 군인들이 북한에서 철천지 원수라고 간주되는 미국과 싸우러 간 게 아니라 왜 한번도 북한의 적이 된 적 없는 우크라이나와 싸우러 갔냐는 것입니다.

역대 김씨 정권은 체제유지를 위해 미국에 대한 적대감 고취에 몰두해왔습니다. 5~6살 유치원 시기부터 북한 주민은 미국은 우리의 철천지 원수이고, 우리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라는 계급의식 교육을 받습니다.

미국은 100여년 전부터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노려왔다, 이는 1866년 평양 대동강에서 격침된 미국 제네럴 셔먼호 사건을 말하는 겁니다. 또 8.15해방후 나라를 분열(분단)시킨 것도, 6.25전쟁을 일으킨 것도 미국이고 지금까지 북한이 겪은 경제적 위기와 민생 어려움도 다 미국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이런 당국의 선전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적지않은 북한 주민들이 미국에 대해 좋지않은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러시아에 파병된 군인들이 미국과 싸우기 위해 갔다면 이번 파병의 당위성이 성립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일부 주민들이 군대가 러시아에 파견되었으면 우크라이나 전쟁에 나간 게 분명한데 왜 우리의 첫째가는 적이라고 하는 미국이 아니라 애꿎은 우크라이나와 싸우는가 라는 의문을 가는 겁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북한 신문, 방송에서 우크라이나를 ‘괴뢰’라고 칭한다고 합니다.

관영매체들이 갑자기 우크라이나를 ‘괴뢰’라고 하는 건 주민들의 이런 반응을 고려해 당국이 취한 조치가 분명해 보입니다.

이에 대해 일부 북한 주민들이 더 의아해 하는 건 왜 갑자기 우크라이나를 괴뢰라고 부르는가? 언제부터 우크라이나가 우리의 적이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가 북한의 적으로 분류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또 어떤 주민들은 “우리의 적이 달라졌는가?” “우리의 적이 하나 더 늘었는가?” 라며 당국을 조롱하는데 이는 북한이 수십 년간 지속해온 미국 중심의 대적관이 흔들리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진행자] 그럼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괴뢰라는 주장인가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억지로 만들고 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북한 당국은 오열하는 가족들에게 '소리내 울지 말라',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수차 당부한 것으로 보아 이런 특혜의 성격이 사망의 대가이거나 입막음의 대가이거나, 아니면 둘 다 일 수도 있겠습니다. 특혜를 주는 목적은 뭘까요.

[안창규 기자] 러시아에 파병돼 사망한 군인들을 특별히 예우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핵심은 소중한 청년들을 남의 전쟁터에 보내 총알받이로 죽게 한 김정은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조치입니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명분이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의 적인 미국과 싸우러 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파병을 김정은이 실행한 것인데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많은 결정이었다고 봅니다.

파병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도 표면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1990년대 경제난 이후 북한의 인구 감소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대도시에서 각급 학교, 유치원, 탁아소가 사라지거나 통폐합되는 속도가 정말 빠르다고 합니다. 실제로 장기간 지속된 경제난으로 먹고 살기 어려운 대부분 가정들이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만 낳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 만큼 하나밖에 없는 아들, 생떼 같은 아들을 잃은 부모들의 심정이 어떨지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까지 군복무 중 사망한 군인과 차별되는 혜택을 당근으로 제시한 것이지만 아무리 전사증, 당원증을 주었다고 해도, 설사 평양에 살게 해준다고 해도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달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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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파병군 유족에 당원증·평양 거주 약속”Opens in new window ]

북한 군입대 회피용 ‘결핵진단서’ 가격 급등Opens in new window ]

[진행자] 북한에서 군입대를 면제받는 확실한 방법은 ‘결핵’이죠. 요즘 ‘결핵진단서’ 수요가 크게 늘었고 가격도 비싸져 최고 500 달러까지 올랐습니다. 목숨 값이라고 생각하면 비싼 돈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결핵 검사도 1년에 한번에서 3개월에 한번으로 횟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가격이 더 올라가는 거 아닙니까?

[김지은 기자]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집단생활을 하는 조건에서 감염의 우려가 있는 개방성 결핵, 한국에서는 슈퍼결핵이라고 하는데요. 이 개방성 결핵은 전염성이 빠르고 치료가 잘 되지 않아 생명에 위험이 되는 질병의 하나입니다. 북한에서 개방성 결핵균은 도자기를 통과할 정도로 강력한 병균이라고 알려졌습니다. 때문에 이 결핵균 보균자와의 거리는 최소 3미터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니 군대와 같이 병영에서 집단적으로 생활하는 곳에서는 절대로 허용이 안 되는데요, 군 면제는 일반 결핵 진단서는 소용 없고 단체생활을 할 수 없는 이런 '개방성 결핵' 진단서에 한해서입니다.

진단서를 만드는 비용은 최대 500달러 정도인데 이 금액은 당국이 무조건 입대를 강조하고 주민들은 거부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설정된 것이라고 소식통들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내부에 우크라이나 전장에 파견된 북한 군인들이 무리로 죽어나간다는 말이 퍼지고 있는 상황이니 부모들은 자식의 입대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습니다.

돈이 많은 집들만 이런 노력을 하는 건 아닙니다. 돈이 없어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해도 하나 뿐인 자식을 살려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으로 주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밀매하거나 가산을 모두 팔아서도 자녀의 군 입대를 막고자 하는 겁니다.

지방에서는 100달러가 있으면 1년을 산다는 얘기가 있으니 500달러가 북한에서 얼마나 큰 돈입니까? 마련하도 어려울 겁니다.

게다가 당에서 불법 진단서 발급에 대해 해당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고 교화형까지의 법적 처벌을 경고한 조건에서 결핵 진단서 발급이 쉽지 않은데요. 많은 주민들이 치솟는 결핵진단서 가격에 허탈감에 빠져 있고 절망하다 못해 체념하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돈만 있다면 주민들에게는 자식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진행자] 결핵 진단서 가격은 지난해 7월에 특별한 질병 없는 사회 입대자들을 모두 25살까지 입대시키라는 지시 이후 계속 오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군 입대자를 늘리기 위한 조치로 보입니다. 러시아 파병 이후 북한 군 당국에서 취한 조치 중 김 기자가 주목해 보고 있는 건 뭡니까?

[김지은 기자]네, 저는 북한이 중국의 여성 노동자들을 계속 철수시키는 상황에 주목합니다. 군수공장을 비롯해 젊은 청년들이 일하는 공장, 기업소, 농장의 남성 근로자들을 입대 시키고 그 자리를 중국에서 철수한 여성 노동자들로 메우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입대한 남성들은 국가의 건설 사업에 동원하거나 러시아로 파병으로 보내는 겁니다.

이런 상황은 또 여성들에게도 영향을 주는데요, 북한 사회에 남성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지면서 이제는 여성들이 결혼 적령기가 돼도 대부분 결혼을 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결국 혼인율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크게 우려하는 출산율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진행자] 정보 당국의 발표를 종합하면 정확한 수치는 나오지 않지만 파병 북한 군인 중 1~3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북한군이 현재와 같은 비율로 전투에 투입된다면 4월 중순까지 북한군 병력 전체가 사망하거나 다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러시아 파병 소식도 결국 주민들 속에 전해졌는데요.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다는 소식도 시간이 문제이지 곧 알려질 겁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 주민들, 북한 사회에는 어떤 반향을 가져올까요?

[김지은 기자]주민들에게 이 소식이 퍼지는 것은 결국 시간 문제라고 봅니다. 죽음에 이르러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머나먼 타국의 언 땅에서 사라진다면 부모들의 증오심은 어디로 향하게 되겠습니까.

[안창규 기자] 북한은 주민이 당국을 비판하거나 마음대로 불만을 터놓을 수 없는 독재 체제입니다. 지금까지 북한에서 숱한 군인이 복무 중 사망했어도 그 부모와 친척들이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면서도 노골적으로 김정은과 당국을 단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난 이후 북한 주민들의 의식이 서서히 변하고 있고 특히 이번 파병이 명분이 없다는 점을 주민들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그 어떤 집단행동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김정은과 독재 체제를 증오하는 주민이 증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남한에는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어떤 정치적인 선택이 기대했던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러시아 파병 역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아무쪼록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인 젊은 청년들의 많은 희생이 없이 마무리됐으면 합니다. <지금 북한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김지은, 안창규 기자 감사합니다.

김지은, 안창규 기자 (인사)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함께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