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후 동창회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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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탈북 가정 중에는 남한과 북한, 중국 등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사는 경우도 있지만, 한 가족이 한꺼번에 탈북해 명절 때가 되면 손자, 손녀까지 늘어 대가족이 모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아예 탈북 후 한 고향 친구들이 만나 동창회를 열기도 한다는데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탈북 후 만나는 지인들, 탈북자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이예진: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 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이예진: 혼자 탈북했더라도 남한에 살면서 우연히 만나는 지인들이 꽤 많더라고요. 선생님도 탈북해서 만난 지인들이 많이 있으신가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저는 사실 국립의료원 상담실에서 3년 넘게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업무는 전화로 상담하는 것이지만 국립의료원 상담실에서 근무할 때에는 의료원에 찾아오는 분들을 만나는 것이라 더 많이 만났던 것 같습니다. 한 학교를 졸업한 3년 후배인 지인을 만난 적도 있고요. 또 저의 이모사촌언니의 딸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 5촌 조카의 경우에는 몇 번을 상담하면서도 어렸을 때에 보았던 기억밖엔 없어서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조카가 자주 의료원에 오다보니 자연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는데요.

우리 사촌 언니가 북한에 있을 때 암으로 고생했었는데 민간요법으로 약초를 캐서 본인이 직접 달여서 치료했던 이야기를 했더니 혹시 고향이 어디인지 물어보더라고요. 우리 엄마도 암을 본인이 약초를 캐서 치료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알고 보았더니 그 사촌 언니의 막내딸이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뭉클합니다.

이예진: 탈북한 줄 서로 몰랐다가 우연히 만난 거군요.

마순희: 그렇죠. 그 외에도 워낙 우리 고향에서 오신 분들이 많다보니 만나는 사례들도 많습니다. 저희 딸 같은 경우에는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 중국에서 조카가 국제전화를 걸어 자신도 오겠다고 하기도 하고 함께 일하던 친구들이 찾아오기도 한답니다. 얼마 전 우리 맏딸 동창생들이 부부동반으로 동창모임을 할 정도로 고향친구들이 많이 왔더라고요. 저도 하나센터에 강의를 나가다보면 한 고향에서 오신 분들도 많이 만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저희 조카랑 함께 철도에서 일했다는 여성분도 만나서 한참 회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예진: 정말 반가우시겠어요. 또 탈북자들끼리 서로서로 입소문으로 수소문해서 만나는 경우도 있겠네요.

마순희: 그럼요. 서로 서로 소식을 알게 되면 이사람, 저사람 연결되기도 합니다. 한 번은 저의 딸이 하나원에 공연을 간 적이 있었는데 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내가 지금 누구를 만났는지 알아 맞춰보라면서 전화를 바꾸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전화기에서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인즉 저의 집에서 몇 년을 함께 살던 가족이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애들은 개명도 안하고 얼굴이 달라진 것도 아니니까 금방 알아보았다더라고요. 그 분들이 하나원을 수료하고 나오던 날 다행히 강서구라 멀지도 않았기에 우리 가족이 함께 찾아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을 통하여 그동안 고향소식도 들었고 또 한 인민반에서 살던 사람들도 누구누구 네가 한국에 나왔다는 소식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온 가족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던 사연도 있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한 인민반에서 살던 가족이 한국에 왔었습니다. 가끔씩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면서 지내는 사이었는데 그 가족이 외국에 나간 줄 몰랐거든요. 그런데 손전화로 문자가 왔는데 한국에 있을 때 어머니에게 사죄를 드려야할 일이 있었는데 못하고 와서 미안하다고 하더래요.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더니 고난의 행군으로 한참 어려울 때 우리 집에서 키우던 돼지를 청년들 몇 명이서 장난삼아 도적질해서 잡았다는 것입니다.

북한에 있을 때에도 서로 가깝게 지내는 사이었기에 차마 혼자서 다 먹기가 그래서 며칠 지난 후에 4-5키로 정도 우리 집에 가져 왔답니다. 돼지를 잃어버리고 너무 속상해하셔서 고기를 사왔다고 했다나요. 그런데 내가 너무 고마워하면서 그 고기를 받아서 그게 더 미안했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와서도 우리 식구들을 볼 때마다 그 때 생각이 나서 솔직히 얘기하려고 했는데 기회가 안 되어서 말을 못했다고 하는데요. 외국에 가 있으니까 이렇게라도 사죄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에서 지워버렸으니까 다시는 생각 말고 잘 지내라고 했습니다.

이예진: 탈북해서 한 고향 사람들을 찾고 싶어 하거나 또 반대로 만나지 않겠다는 심리는 어떻게 보는 게 좋을까요?

마순희: 바로 며칠 전에 제가 전화를 받았는데요. 경상북도에 있는 한 사찰의 주지스님의 전화였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4-6개월 전에 하나원을 나온 40대 중반의 이름을 대면서 그런 여성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7세 아들을 데리고 나왔기에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요. 그분의 말씀이 그 여성이 중국에 있을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박00라는 사람이 지금 한국에 나와 있는데 그 여성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경남이나 부산지역으로 거주지를 받고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중국의 손전화 번호도 그리고 한국의 손전화 번호도 그 여성이 다 알고 있는데 전화가 없어서 연락한다고 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을 도와주는 기관이고 그들을 다 맡아서 관리한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그들의 연락처가 다 있을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명해드렸습니다. 재단이 통일부산하의 공공기관이고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기관인 것은 맞지만 그분들의 관리를 맡았다는 말은 맞는 말이 아니다, 거주지에 가면 하나센터에서 지역적응 교육을 받고 그 지역에서 정착하는 것이고 재단에는 문의사항이 있거나 필요에 의해서 연락하기는 하지만 그분들의 개인 인적사항까지는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설사 알고 있더라도 본인이 연락처를 알고 있으면서 연락하지 않는 것은 본인의 의사에 의한 거라 뭐라고 할 수 없는 사항이라고 설명해드렸습니다.

사람마다, 또 상황마다 서로 다른 점은 있겠지만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분들의 말이 맞고 중국에서 가깝게 지내던 사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에 와서 옛날에 알던 사람들과 계속 인연을 이어갈 마음이 없으면 당연히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겠지요. 그리고 서로 소식들을 알게 되면 북한에도 소식이 갈 수 있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식구들이 다 오고 북한에 남아있거나 본인들 때문에 영향을 받을 사람들이 없다고 하면 대부분 고향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반가워하고 그리워하죠.

각자의 환경에 따라서 만나는 것을 반길 수도 있고 꺼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새터민들의 쉼터’나 단체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꼭 ‘사람 찾기’ 란을 확인하군 합니다. 혹시 한 고향사람들의 소식이라도 들을까 해서 무산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꼭 확인해 봅니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보낸 지인들을 만나 서로 회포도 나누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땅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탈북자들에게는 더 없는 위안이 되고 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예진: 탈북자들 중에는 한 고향 사람들이 북한에 두고 온 가족 대신 친밀한 사이가 되기도 하던데요. 아주 어렸을 때 혹은 힘들었던 한 때를 함께 했던 사람과는 가끔 만나도 편안하고 허물없는 사이가 된다고들 하죠. 탈북자들에게 고향친구는 그런 존재 아닐까요?

찾아가는 종합상담소. 북한출신 전문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이예진: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