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진행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기자: 란코프 교수님, 요즘에 북한에서 부정부패와의 투쟁이 많다고 하는데요. 그 때문에 당중앙 고급 간부까지 해임되었다고 합니다. 북한은 정말 비리가 많은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다른 공산 국가들도 북한만큼 비리가 많았을까요?
란코프 교수: 나라별로, 특히 시대별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스탈린 시대 소련이나 모택동 시대의 중국에서도 비리가 없지 않았지만, 그 형식은 우리가 오늘날 익숙한 비리와 많이 다릅니다. 오늘날 비리나 부정부패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간부들이 이런저런 뇌물을 받거나, 다른 사람들의 불법행위를 모른척 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재산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훔치는 행위도 오늘날 대표적인 비리입니다. 하지만 1930-40년대 소련이든, 1960년대 중국이든 이러한 행위가 없지 않았어도 매우 적었습니다.
기자 : 그렇다면 스탈린 시대의 소련이나 모택동 시대의 중국 간부들은 공산주의 사상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비리가 많지 않았다는 건가요?
란코프 교수: 어느정도 그렇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에 간부들은 혁명1세대여서, 그들 가운데 공산주의 사상을 굳게 믿고,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죽을 마음까지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우리가 생각하는 비리가 별로 없었던 기본적인 이유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이나 사상에 대한 믿음보다도, 당연히 현실주의적 이유 때문입니다. 소련식 국가사회주의 체제에서 돈 자체가 별로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자: 김일성 시대의 북한과 비슷한가요?
란코프 교수: 네 그렇습니다. 당시에 간부가 불법행위를 모른 척 하고, 뇌물을 받았다고 합시다. 간부는 이렇게 얻은 돈을 어디에 쓸 수 있을까요? 물론 북한이라면 락원백화점을 찾아서 어떤 비싼 물건을 살 수도 있는데, 소련이나 중국에서는 이러한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돈으로 집을 살 수도 없었고, 자동차를 살 수도 없었습니다. 수많은 경우에도 좋은 자전거를 사는 일조차도 불가능했습니다. 그 때문에 간부는 뇌물을 받는다고 해도, 얻을 게 사실상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스탈린 시대 소련에서 간부에게 돈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특별 공급입니다. 물론 국가는 간부들에게 가치가 있는 물건을 많이 주었는데요. 물론 간부의 지위가 높을수록, 국가에서 공급으로 받는 물건의 양도 질도 좋아졌습니다. 예를 들면 돈으로 승용차를 살 수 없지만, 어느정도 직위 이상의 간부라면 국가에서 자동차를 받았습니다. 집도 비슷합니다.
기자 : 그렇다면 간부들은 돈을 버는 것보다 승진되는 것을 더 원했을 수도 있겠네요?
란코프 교수: 네 그렇습니다. 돈을 받는 것은 승진에 있어서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적발된다면 해임을 당할 수도 있었고, 감옥으로 갈 수도 있었고, 예외적인 경우에는 처형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스탈린 시대 소련 간부이든, 모택동 시대 중국 간부이든 합리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그들은 가치가 별로 없는 돈으로 뇌물을 받는다고 해도, 보다 더 좋은 물질적 생활을 할 희망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뇌물을 받으면 적발될 가능성도 있어서 승진에도 위험이 됩니다. 그래서 돈으로 뇌물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기자: 그렇다면 스탈린 시대나 모택동 시대의 소련이나 중국 간부들은 청렴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까요?
란코프 교수: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한기자님은 모택동의 부인 강청의 호화스런 생활을 아십니까? 1970년대 말 강청은 숙청당했고 공개 재판을 받았는데, 진짜 호화스러운 생활을 한 것이 폭로되었습니다. 강청은 어떻게 호화생활을 했을까요? 뇌물을 받는 것보다 물물교환을 통해서입니다. 당시에 대부분 간부들은 서로 도와주고 승진에 성공했는데요. 예를들면 어떤 도당 지도원은 성적이 좋지 않은 자신의 아들을 좋은 대학교에 입학시킬 희망이 있습니다. 그는 다른 간부를 통해서 그 대학교 총장과 연락하고, 총장은 성적이 좋지 않은 지도원의 아들을 입학시키라고 지시합니다. 당연히 공짜가 아닙니다. 총장의 사위는 외화벌이 회사 직원인데 해외출장으로 가고 싶어합니다. 총장은 간부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결국 총장의 사위는 마카오나 태국으로 무역일꾼으로 갑니다. 물론 이것은 매우 간단한 사례인데, 훨씬 더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국가사회주의에서의 비리입니다.
기자: 그런데 교수님, 말씀하신 훨씬 더 복잡한 사례는 무엇인가요?
란코프 교수: 이와 같은 지원과 특혜를 주고받는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라 열 명이나 스무 명까지 있었습니다. 아주 복잡한 관계입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돈을 주고받는게 없어서, 적발될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기자: 만약에 이러한 국가사회주의식 비리가 노출된다면 해당 간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란코프 교수: 성적이 낮은 아들을 대학에 입학시키거나 해외출장으로 가는 것을 도와준 정도는, 적발될 가능성도 낮고, 적발된다고 해도 경고를 받는 정도입니다. 예외적인 경우에 심한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보통 드문 일입니다.
기자: 그렇다면 소련에서 돈을 중심으로 하는 부정부패가 언제부터 많아졌을까요? 소련 붕괴 이후일까요?
란코프 교수: 소련붕괴 이후 돈의 힘이 훨씬 많아졌고, 부정부패 문제는 구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에 매우 심각해졌습니다. 하지만 소련에서 벌써 60년대부터 뇌물과 같은 것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기본 이유는 역설적으로 생활수준이 스탈린시대보다 많이 좋아졌고,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부터 돈으로 승용차를 살 수도, 냉장고를 살 수도 있었고, 60년대에 들어서는 국가에 돈을 내면 합법적으로 집까지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간부들은 가끔 뇌물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롭게도 60년대나 70년대 소련에서 부정부패는 지역별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기자 : 왜 그럴까요?
란코프 교수 : 알 수 없습니다. 소련은 다민족 국가였습니다. 예를 들면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러시아지역보다 비리가 심했습니다. 물론 당시에 러시아는 독립국가가 아니라 소련 가맹공화국중 하나인데요. 반대로 벨라루스나 발틱3국 지역에서는 러시아보다 비리가 적었습니다. 그래도 갈수록 어느 지역에서든지 비리가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기자 : 교수님, 소련 중앙정부는 비리를 없애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나요?
란코프 교수: 아마 80년대 초까지 비리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80년대초 들어와 부정부패에 대해 고급 간부들 가운데서 걱정이 많아졌습니다. 결국 1982-83년에 당시 소련 총비서가 된 안드로포프는 무역일꾼, 백화점 지배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검사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습니다. 처형된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단속은 장기적으로 아무 결과가 없었습니다. 갈수록 간부들은 승진에 대한 희망이 약해지고, 돈에 대한 꿈이 많아졌습니다.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진 다음에는 돈을 중심으로 하는 부정부패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해졌습니다.
기자: 네,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한국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오늘 순서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