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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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이 시간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대담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 1985년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등장, 소련 국민 크게 환영

- 옛 체제에 대한 실망 고조, 변화 기대하던 시기

- 체제에 대한 실망의 이유는 경제 문제, 미국∙영국처럼 잘 살고파

- 고르바초프 서기장도 사회주의 경제 포기 안 해, 수정된 계획경제 시행

- 국민들 국가사회주의 원칙 믿어, 하지만 경제는 갈수록 열악


소련 공산당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정치개혁을 시행하면서 국민의 높은 지지를 얻게 됐지만, 국민이 소련과 서방 선진국 간 생활 격차가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공산당에 대한 지지는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소련 국민은 미국, 독일 등의 영화를 통해 선진국의 생활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고, 기술자로서 해외 경험과 외국 방송의 청취 등이 가능해지면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불만이 커졌는데요. 오늘 이 시간에는 1980년대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취임 이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지난번에 교수님은 1960-70년대 소련의 분위기를 설명하셨습니다. 당시에 60년대 초 공산당체제에 대한 지지가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갈수록 낮아지기 시작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1985년, 즉 소련의 붕괴를 초래한 고르바초브 서기장이 취임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어땠나요? 소련사람들은 공산당 체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란코프 교수]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역사가 시작될 때, 저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제가 다니던 학교는 소련 최고의 학교 중 하나입니다. 북한식으로 말하면 김일성대학과 같은 수준입니다. 당시의 분위기를 개인적인 경험으로 말씀드리겠는데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소련은 다민족 국가였습니다. 100여 개 소수 민족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들어와 러시아가 아닌 다른 공화국의 분위기는 러시아와 비슷할 수도 있지만, 사뭇 다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해 지역은 벌써 대부분 사람이 소련을 공산당 독재 국가보다 자신들의 땅을 약탈한 제국주의 국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꿈은 독립이었습니다. 반면, 중앙아시아의 가맹 공화국 대부분은 반러시아 감정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저는 주로 러시아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 네. 그렇다면 당시 러시아 가맹 공화국 사람들은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란코프 교수]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의 등장을 매우 반가워했고,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당시 고르바초프의 나이는 50대 초반이었는데요. 이전 소련의 최고 지도자들은 대부분 70대였습니다. 브레즈네프, 안드레포프, 체르넨코 등은 잘 걷지도 못하고, 말도 잘 못 하고, 연설할 때조차 움직이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도 기계음과 같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는 말은 수십 년 동안 계속 들어오던 것입니다. 당시 젊은 사람들은 실망이 매우 컸습니다. 젊은 사람들뿐 아니라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사실상 매우 비슷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80대 초반이었던 제 할머니는 고르바초프에 대해 희망이 정말 컸습니다. 또 제가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1980년대 들어와 소련 사람들은 모두 옛날 체제에 대한 실망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변화를 기대했습니다.

- 그렇다면 교수님, 80년대 당시에 소련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기대했던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란코프 교수] 어려운 질문인데요. 당시 대부분 소련 사람은 지금처럼 계속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옛날체제는 미래가 없으며, 꼭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 체제에 대해서 실망한 기본적인 이유는 경제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은 영국이나 미국, 독일, 프랑스와 같은 자본주의 나라들이 소련보다 매우 잘 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련은 갈수록 자본주의 나라들에 비교해 더 심하게 뒤처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미국이나 영국처럼 잘 살고 싶다는 것이 대부분 사람의 기대였습니다.

- 교수님, 그런데 1980년대의 소련은 세계 기준에 비추어볼 때 못사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시행한 유럽(구라파)국가에 비교하면 어렵게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중국이나 북한, 그리고 아프리카 나라들보다 잘 살지 않았나요?

[란코프 교수] 그렇습니다. 당시 북한사람들이 볼 때 1980년대의 소련은 천국과 같은 나라였습니다. 정말 잘 살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소련 사람은 자신의 생활을 북한 또는 중국의 생활과 비교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조건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나라를 비교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 교수님, 소련 사람이 미국이나 영국처럼 살고 싶다면 그들도 사회주의 경제를 포기하고 자본주의 경제, 시장경제로 바꾸면 되지 않았을까요? 그런 생각은 없었나요?

[란코프 교수] 정확하게 말하면 자본주의 경제나 시장경제로 바꿔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주로 누구였을까요? 주로 소련식 국가사회주의의 문제점과 그 내막을 잘 아는 간부집 아들, 딸입니다. 아니면 세계 경제의 흐름을 잘 알고 있는 일부 지식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극소수였습니다.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에만 아주 조금 있었고, 다른 지역에는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 당시 변화를 기대했던 대다수 소련사람의 희망은 개량된 사회주의였는데요.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살고는 싶지만, 경제관리 체제는 미국식보다는 웽그리아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소규모 장사를 허용한다 해도 대기업은 여전히 국가 소유입니다. 계획경제도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대부분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고, 이론도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조금 깊이 생각하는 사람도 시장 경제보다는 독립채산제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를 선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정책을 보면 처음에 사회주의를 포기할 생각조차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도 역시 개량된 사회주의를 희망했습니다.

- 그럼 당시 소련 국민은 왜 사회주의에 대해 실망했을까요? 언제부터 대부분 인민 사이에서 자본주의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을까요?

[란코프 교수] 1980년대에 들어와 소련 국민은 소련식 사회주의에 대한 실망이 컸지만, 여전히 국가사회주의 기본 원칙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1988년이나 89년, 즉 3-4년 동안 사회주의 원칙에 대해서도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 이유는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시도했던 독립채산제 등이 경제 상황의 개선을 불러오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 조금씩 어려워지던 소련 인민의 경제 상황은 1986-87년부터 갑자기 빠른 속도로 열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 그렇군요. 1980년대에도 소련 국민이 경제 상황에 큰 불만을 느끼게 됐고, 젊은 지도자인 고르바초프에게 적지 않은 기대를 하게 됐는데, 여전히 시장경제보다는 계획경제를 계속 유지하려 했군요. 그럴수록 더 경제 상황은 나빠지게 되고요. 그렇다면 소련 국민이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다음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