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사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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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진행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시간에 피라미드 사기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1997년 알바니아에서는 피라미드 사기 때문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큰 손해를 봤고, 결국 이 때문에 대규모 폭동과 내전까지 생긴 걸로 알고 있는 데요, 도대체 당시 알바니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란코프교수: 피라미드 사기꾼은 자신에게 돈을 맡기면 매월 5%나 10%씩 이익을 준다고 주장합니다. 사기꾼은 자신이 너무 똑똑하고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놀라운 방법을 알아냈다고 주장하지만 당연히 거짓말입니다. 그는 광고를 많이 하고, 새로운 가입자들이 낸 돈으로 기존 가입자들에게 이익을 지불합니다. 당연히 조만간 피라미드 사기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가입자가 더 이상 없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이 닥치면 사기꾼은 남은 돈을 가지고 도망칩니다. 돈을 투자한 사람들은 돌려받을 희망도 없습니다. 많은 경우 원래 잘 살았던 사람들도 사기를 믿은 탓에 거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공산당 정권이 무너진 구 공산권 어디서든지 발생했는데, 알바니아만큼 대규모 사건은 동유럽 어디서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1997년 기준으로 알바니아에서 17개의 피라미드 사기 회사가 있었습니다.

기자: 왜 알바니아에서만 유독 극심한 피라미드 사기가 생겼나요?

란코프교수: 기본 이유는 호자의 독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0-40년 동안 알바니아는 다른 사회주의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쇄국정책과 고립정책을 했습니다. 아마 1970년대 김일성의 북한보다 고립이 좀 더 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문에 알바니아 주민들은 시장경제가 무엇인지 아예 몰랐고, 그들은 시장경제의 작동방법에 대해서도 완전히 무지했습니다. 알바니아 인민들은 거의 모두, 자신이 1천 달러를 투자한다면 앞으로 매월 60-70달러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 때문에 1994년부터 알바니아에서는 피라미드 사기꾼들이 아주 많이 생겼습니다. 거의 모든 일반인들이 피라미드 사기에 가입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당시 알바니아 정부 경제일꾼들은 피라미드 사기가 경제 성장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자: 왜 그런가요?

란코프교수: 1996년에 미국 정부와 유럽 여러 나라들은 알바니아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간부들에게 조만간 피라미드 사기 때문에 큰 위기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알바니아 정부 관리들은 이러한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은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다음 선거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알바니아 인민들은 매월 돈을 잘 벌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기분이 좋은 인민들은 현임 대통령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아서, 대통령은 가만히 앉아 있기로 결정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대통령조차 피라미드 사기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 위험성을 알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기자: 당시에 알바니아의 정치 상황은 어땠나요?

란코프교수: 알바니아는 당시에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기본 정치세력이 두 개 있었습니다. 하나는 1991년에 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꾼 공산당입니다. 당시에 야당입니다. 즉 당시 대통령에 반대하는 세력입니다. 흥미롭게도 1990년대 초 알바니아 공산당은 옛날 호자의 유산을 다 포기했고, 호자를 독재자로 규정했습니다. 그들의 희망은 국가사회주의보다 사회민주주의입니다. 그를 반대하는 세력은 민주당입니다. 원래 반공산당 의식이 조금 있었던 청년학생들과 대학교수 등 지식인 출신입니다. 당시에 민주당은 정권을 장악한 여당입니다.

기자: 1997년 알바니아에서 피라미드 사기는 어떻게 무너지기 시작했는가요.

란코프교수: 1996년 말까지 피라미드 사기는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기꾼들은 가입자들에게 약속한 대로 매월 이익을 지불했습니다. 원래 6%나 10%를 주었는데, 흥미롭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이익을 약속했습니다. 15%나 30%까지 약속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사기꾼들이 짐을 포장하고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1996년 말 재정상은 마침내 위기를 눈치채고, 방송국으로 가서 피라미드 사기에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결국 1997년 1월 피라미드 사기는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가입자들에게 약속대로 이익을 지불할 수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기자: 인민들은 이 소식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란코프교수: 인민들은 진짜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들은 국가와 정부가 그들을 보호하고, 자신들이 사기당한 돈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게 해 줄 줄 알았습니다. 당연히 이것은 매우 소박한 희망입니다. 사실상 피라미드식 사기가 무너진 후, 사기당한 불쌍한 사람들은 돈을 돌려받거나 보상을 받을 희망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인민들은 이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1997년 1월이나 2월 여러 도시에서 인민들은 경찰과 국가 기관, 군대 기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사회당 즉 옛날 공산당에 대해서 지지율이 높았던 남부 알바니아에서 이러한 사건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남부 알바니아 사람들은 민주당 정권이 그들의 돈을 의식적으로 훔쳐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1997년 1월 말부터 남부 알바니아와 북부 알바니아는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수도에서까지 대규모 폭동이 생겼는데, 화가 난 인민들은 정부 청사들을 거의 모두 파괴해 버렸습니다. 사실상 알바니아 정부는 수도 외에는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기자: 알바니아가 사실상 내전에 돌입한 것 같은데요?

란코프교수: 1997년 여름 상황이 조금 좋아졌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민주당도 사회당도 내전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는 위험한 위기를 극복하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도 이 위기에 많이 개입했습니다. 결국 1997년 여름 민주당 정권은 무너지고, 얼마 동안 임시정부가 있다가 다음 선거때 피라미드 사건에 대해 책임이 없던 옛날 공산당, 즉 사회당 정권이 다시 생겼습니다.

기자: 알바니아 사회당, 즉 얼마 전까지의 공산당은 불과 몇 년만에 다시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들은 옛날식 국가사회주의를 복원시키려 했나요?

란코프교수: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그들은 호자 시대 간부 출신들이지만, 호자시대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정치를 여전히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역설적으로, 민주당보다 더 잘 지켰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1997년 사건은 매우 쓰라린 경험이었습니다. 거의 4천 명이 죽었습니다. 호자 독재 시대에 정치범으로 처형된 사람들의 규모의 3분의 2 정도입니다. 다행히 그 후에 알바니아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알바니아는 얼마 전까지 진짜 고생이 많은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공산주의 시대에도 정말 참혹하고 끔찍한 정권이 있었고, 과도기도 다른 나라들보다 매우 참혹했습니다.

기자: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한국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오늘 순서 여기까지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