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ING: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공산주의 역사이야기'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전수일: 교수님, 지난번에 유럽 좌파 지식인들은 1930년대 소련에 대해 환상이 너무 많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소련에서 기근이 생긴 이야기도, 대숙청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대부분은 무시했습니다. 1950년대 들어와 그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셨는데요. 왜 그렇습니까?
란코프 교수: 지난번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유럽 국가 지식인과 교수 대부분은 소련에 대한 나쁜 이야기는 모두 다 반동적인 우파의 중상모략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1945년 이후 유럽에서는 소련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많이 살게 되었고, 그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본 소년 내의 대기근과 대숙청의 만행을 전했지만, 그래도 지식인들은 이것들은 모두 다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은 1953년 이후 소련에서 시작된 스딸린 격하운동 때부터 바뀌기 시작합니다.
전: 스딸린 격하운동은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입니까?
란코프: 1953년 3월, 스딸린은 죽었습니다. 그를 대체한 최고위급 간부들은 처음부터 스딸린 식 노선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경제정책을 시작하고, 주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서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스딸린 시대에 비하면 내부 통제가 많이 완화되었습니다. 언론검열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옛날보다 많이 약해졌습니다. 100만명 이상의 정치범은 거의 모두 몇 년 이내에 석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럽 지식인의 입장에서 제일 중요한 변화는 스딸린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었습니다.
전: 스딸린에 대한 비판은 주로 어떤 내용이었나요?
란코프: 1953년 여름부터 소련 언론에서 그 전에 너무 많았던 스딸린 극찬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흐루쇼프 서기장은 스딸린을 마구 비판하는 비밀연설을 하였습니다. 말로는 비밀연설이었지만, 그 기본내용이 얼마 후 전 세계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기본 내용은 스딸린이 암살, 테러, 숙청을 저지르고, 수많은 무죄한 사람들을 죽여버리고, 너무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같은 해에, 흐루쇼프 연설의 영향을 받아서 동구라파에서는 민주화 운동이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은 1956년 헝가리 민주화 운동입니다. 소련 정부는 그 운동을 땅크로 진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1956년 헝가리 민주화 운동 진압도 서방 지식인에게 타격을 주었습니다. 기본 이유는, 당시에 헝가리에서 반체제운동을 한 사람들은, 봉건시대 자본가나 지주들이 아니라, 농민, 노동자, 지식인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1956년이나 57년쯤에는, 10년-20년 동안 공산당에 입당해서 많이 협력해 왔던 지식인들이 공산당에서 스스로 탈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그렇다면 그 당시 좌파 지식인들의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듭니다.
란코프: 이것은 대답하기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들은 공산주의에 대해서 적지 않은 실망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결과, 1950년대 말 이후 유럽 지식인들 가운데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은 1920-30년대만큼 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자본주의 모습도 많이 바꾸었고, 사회주의 성격이 많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면 영국은 1945년이후 무상치료제를 시행합니다. 유럽 거의 어디에나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 제도입니다. 대학교의 경우에도 무상교육을 하는 자본주의 국가들이 50년대 말부터 대폭 많아졌습니다. 그래도 수많은 지식인들은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해서 반감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다른 미래들을 열심히 꿈꾸었습니다. 문제는, 1950년대 말부터 그들에게 구소련은 이러한 미래를 구현하는 나라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러시아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 입장에서 유럽 좌파 지식인들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사뭇 이상합니다.
전: 어째서 인가요?
란코프: 주민들 입장에서 스딸린 시대는 살기가 참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나라의 공업화를 위해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들어와 소련주민들의 생활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당국자들에 대한 공포가 많이 약해지고, 생활수준도 빨리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생활이 많이 좋아지기 시작할 즈음, 백성을 사랑한다고 날마다 주장하는 프랑스나 영국의 좌파지식인들은 오히려 소련에 대한 지지와 동조감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전: 그렇다면 유럽 좌파 지식인들은 그들이 꿈꾼다는 새로운 나라를 찾아냈나요?
란코프: 흥미롭게도 1960년대 초, 그들 가운데 모택동 시대의 중국에 대한 관심이 날마다 커졌습니다. 그들은 중국에서 참된 사회주의가 있을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들은 결과적으로 수천만명의 농민들이 굶어 죽은 대약진 운동을 많이 지지했고, 문화대혁명과 같은 만행도 열심히 옹호하고 지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식민지 지역에서 발생한 독립운동에 대해서 희망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아프리카 식민지 어딘가에서 참된 사회주의가 가능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와 이렇게 믿던 사람들은 다시 한번 심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70년대 말 중국당국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만행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무렵에 유럽에서 옛날식 공산주의 운동은 사실상 무너져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코민테른에 의해서 창립된 공산당 대부분은 1990년대 들어와 공식적으로 해산되거나, 몇 개의 서로 대립하는 정치세력으로 분열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벌써 그들에 대한 지지율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전: 그렇다면 지금 유럽에서 공산주의 운동은 남아 있는지, 그러니까 맑스 이론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이 아직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란코프: 맑스 이론은 옛날만큼은 힘이 많지 않아도,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맑스이론을 믿는 사람들은 노동자와 인민들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소수 지식인들 뿐입니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여전히 열심히 비판하고 있지만, 자본주의를 대체할 다른 미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아무 제안을 못 합니다. 공산당은 여전히 많은 나라에 남아 있지만, 내부 분열이 아주 심하고, 사실상 아무 힘이 없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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