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라파 국가의 공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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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이 시간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대담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 1940년대, 소련 군대의 진출로 공산주의 혁명 경험

- 폴란드∙헝가리, 역사적 경험으로 공산주의 크게 반대

- 자본주의에 대한 실망으로 공산주의에 큰 기대 걸기도

- 시간 흐를수록 공산주의에 대한 실망 커져


지난 시간에는 사회주의 진영의 중요한 나라, 소련과 중국 간 분쟁을 살펴봤는데요. 두 나라의 갈등을 통해 국제관계에서 사상보다는 국가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오늘은 동구라파 국가의 공산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교수님, 원래 공산권 국가들이 약 15개 정도 있었는데요. 이들 국가 대부분은 소련 군대의 무력에 의해 공산혁명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나요?

[란코프 교수] 대부분의 경우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들도 있었습니다. 공산권, 즉 사회주의 진영은 사실상 1940년대 말에 탄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40년대 말 이후, 진짜 공산주의 혁명이 발발한 나라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 나라는 쿠바입니다.

그리고 1940년대 말 공산주의 혁명을 경험한 나라 대부분은 소련 군대가 진출한 나라들입니다. 1945년 봄, 소련의 스탈린은 유고 공산당 대표단과 만났을 때, 당시 소련 지도부의 입장을 매우 분명하게 표시했습니다. 당시 스탈린의 주장은, 소련 군대가 진출한 나라는 무조건 공산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1944-45년에 소련 군대가 진출한 나라 가운데, 공산주의 국가가 되지 않은 나라는 하나도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그런데 교수님, 중국처럼 자발적인 공산주의 혁명도 있지 않았습니까?

[란코프 교수] 당연히 있었습니다. 중국 혁명은 규모가 매우 큰 자발적인 공산주의 혁명의 사례입니다. 소련은 처음부터 중국 혁명을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스탈린은 중국의 인구가 너무 많고, 면적도 매우 큰 데다 잠재력도 소련보다 많아서, 중국이 소련의 지도적 역할을 인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탈린은 중국 공산당의 승리를 원치 않았습니다.

- 중국 외에 다른 자발적인 공산주의 혁명의 사례는 없나요?

[란코프 교수] 아시아에서는 베트남 혁명이 처음부터 자발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유럽에서는 유고 혁명과 알바니아 혁명이 비슷합니다.

- 교수님께서 몇 가지 예외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래도 대부분 공산 혁명은 소련에서 만들고, 군대의 힘을 빌어 강제적으로 일으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나요?

[란코프 교수] 네. 그렇게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소련에서 수입됐어도 이들 국가의 사람들이 처음부터 공산주의 체제를 반대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해외에서 온 것이어도 민중들이 환영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공산주의에 대한 지지율이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 교수님, 1940년대 사회주의 진영에서 반사회주의 경향이 제일 컸던 나라는 어디였나요?

[란코프 교수] 쉽게 말하면 역사적 경험 때문에 러시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컸던 나라들은 공산주의 사상을 크게 반대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뽈스카(폴란드)와 웽그리아(헝가리)입니다. 뽈스카는 거의 120년 동안 러시아 제국의 식민지로 지냈습니다. 그래서 뽈스카 사람들은 당연히 러시아에 대해 불신감과 적대감이 컸습니다. 일본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태도를 생각해보면, 청취자 여러분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또 웽그리아는 러시아 식민지로 지낸 적이 없었지만, 러시아의 침략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이들 국가 주민들은 공산주의라는 말을 사상이라기보다 러시아가 자기 나라의 힘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뽈스카에서 몇 년 동안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무장투쟁이 있었습니다. 뽈스카의 반공 민주주의 세력은 몇 년 동안 유격 활동까지 했습니다.

- 교수님, 공산주의를 좋아하는 나라도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들 나라는 어디였나요?

[란코프 교수] 1940년대 말 동구라파에서 소련식 사회주의를 제일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나라들은 불가리아, 루마니아, 그리고 체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공산주의 혁명이 자발적으로 발생한 유고와 알바니아에서도 반공 사상이 없지 않았지만, 그 영향력은 뽈스카나 웽그리아보다 약했습니다. 이들 나라는 러시아에서 제국주의 침략을 받은 경험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역사 때문에 러시아를 보호자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불가리아가 터키 제국의 식민지로서 독립운동을 했을 때, 제일 많이 지원한 나라는 러시아였습니다. 이 때문에 불가리아 사람들은 소련 군대를 환영했고, 소련이 전파하는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희망이 컸습니다.

- 교수님, 뽈스카와 웽그리아는 공산주의를 싫어했고, 불가리아와 유고는 공산주의를 좋아했다고 할 수 있나요?

[란코프 교수] 이것은 매우 단순화된 설명입니다. 뽈스카와 웽그리아에서도 1940년대나 50년대에 공산주의에 희망이 컸던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불가리아나 유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았습니다.

기본 이유는 자본주의에 대한 실망입니다. 공산주의의 약속을 보면 매력적인 면이 참 많습니다. 누구든지 평등하고, 보람있게 잘 사는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약속은 공산주의 사회의 기본이 아닐까요? 물론 나중에 알 수 있었지만, 그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1940년대 말까지 이 매력은 매우 컸습니다. 이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으로 공산주의 사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뽈스카와 같은 나라에서조차 공산주의를 열심히 믿는 젊은이들이 꽤 있었습니다.

- 하지만 이 사람들의 태도가 이후에 어떻게 바뀌었나요?

[란코프 교수] 동구라파 국가들은 시간이 갈수록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실망이 커졌습니다. 반면, 뽈스카나 체코 등 동구라파 나라들은 서방세계와 아주 가까웠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서방 사람, 특히 서방 노동자와 농민의 사는 모습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1950-60년대 그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서방 사람들이 사회주의 진영의 사람들보다 더 잘 산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실망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들 지역에서 공산주의는 자신들의 선택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 강제적으로 부여된 사상과 제도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이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1940년대 말 동구라파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희망이 컸습니다. 그래도 이들 지역 사람들은 나중에 이 사실을 기억조차 하기 싫어했습니다. 외세에 책임을 돌리는 민족주의는 편리한 방법입니다.

- 그렇다면 원래 공산주의를 지지했던 유고나 알바니아는 어땠을까요?

[란코프 교수] 역설적으로 1940년대 공산주의 혁명이 자발적으로 일어났거나 공산주의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1980년대 말의 반공 운동이 폭력적인 혁명으로 달성된 나라까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고입니다. 북한과 매우 비슷했던 루마니아와 알바니아에서도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동구라파 나라 대부분은 반공 사상이 강합니다. 이들 대부분은 1940년대나 50년대 공산주의 매력의 힘을 기억하기조차 싫어합니다.

네. 오늘은 동구라파 국가의 공산화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도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