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ING: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공산주의 역사이야기'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전수일: 교수님, 지난 시간에는 스딸린이 지노비예프, 카메네프와 손을 잡고 권력을 장악했다고 하셨는데요. 그 이후에 상황은 어땠을까요?
란코프: 당시에 소련에서 힘이 제일 많은 권력기관은 정치국이었습니다. 1925년, 정치국에서 힘이 제일 많은 사람은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그리고 스딸린입니다. 그들은 힘의 크기가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절대권력을 얻기 위해서 스딸린은 당연히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를 제거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전: 스딸린은 권력 야심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란코프: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세계 어디에나 권력을 싫어하는 사람이면 고급간부가 될 수 있을까요? 스딸린이든, 그를 반대하는 지노비예프나 카메네프, 다른 정치국 위원들도 권력에 대한 야심이 미친 듯이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1920년대 소련정치역사를 보면 쉽게 말해 아무 윤리와 도덕이 없는 개싸움의 시대입니다. 오늘날 스딸린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 스딸린이든 그를 반대하는 다른 사람들이든 사실상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딸린이 소련에서 절대권력을 장악한 이유는, 그저 권력에 대한 야심 때문이 아니라 그가 권력을 얻는 능력이 대단했기 때문입니다.
전: 스딸린이 권력을 꿰차는 그 능력은 무엇이었을까요?
란코프: 스딸린이 1920년대 자신보다 힘도 인기도 훨씬 더 많던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가 혁명 이전에 별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정치국 위원 대부분은 혁명 지도자 출신들입니다. 그들은 연설을 잘 할수 있고, 이론적인 논문을 잘 쓸 줄 알았고, 맑스와 엥겔스를 비롯한 공산주의 이론가들의 로작을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스딸린은 사실상 이론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스딸린은 공산당 내에서 암투를 매우 잘 할 줄 알았습니다. 예를 들면 스딸린은 당 중앙에서 그 전에 없었던 조직지도부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조직지도부를 통제했기 때문에, 사실상 국가 어디든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간부들로 임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고위급 간부들은 혁명적인 열정이 많은 연설을 잘 했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소수민족 출신으로 러시아말도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스딸린은 조용히 자신의 권력과 영향력을 강화하려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전: 다른 고위 간부들은 어째서 스딸린처럼 권모술수에 전력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란코프: 그들은 자신들이 절대권력을 잡고 있는 유일한 정치세력인 공산당의 고급간부가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옛날 자신들이 혁명투쟁을 했을 때 배웠던 버릇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쉽게 말해 싸우는 방법을 잘 몰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스딸린은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를 없애버리기 위해서, 그들을 싫어하는 다른 정치위원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당시에 스딸린을 많이 도와준 사람은 부하린입니다. 그 역시 매우 대표적인 이론가였습니다. 옛날 선비들이 논어와 같은 유교경전을 열심히 외웠던 것처럼, 부하린은 공산주의 경전, 즉 맑스와 레닌 노작을 열심히 외웠습니다. 그는 스딸린과 같이 지노비예프, 카메네프와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부하린은 지노비예프이든 카메네프이든 그들의 연설이 공산주의 이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스딸린은 조용하게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를 지지하는 간부들을 제거하려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전: 스딸린의 이런 권력투쟁 암약에 대해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가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란코프: 그 사람들은 트로츠키만큼 자만감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싸웠습니다. 문제는 스딸린이 조직지도부를 절대적으로 통제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권력기반을 완전히 파괴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1920년대 말 들어와 지노비예프이든 카메네프이든 정치국 위원에서 해임되었습니다.
전: 스딸린은 결국 권력투쟁에서 또 한번 이긴 셈이네요. 그렇다면 이제 그는 소련에서 절대권력을 장악한 독재자가 된 것이겠지요?
란코프: 아닙니다. 아직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스딸린만큼 권력과 힘이 많은 간부는 소련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 정치 암투를 잘 할줄 알았던 스딸린은, 레닌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7년만에, 권력 서열 5위에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절대권력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의 옆에는 아직 독립정신이 없지 않은 고급간부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하린이 그렇습니다.
전: 그렇다면 스딸린의 다음 제거 상대는 부하린이었습니까?
란코프: 당연히 그렇습니다. 1920년대 초 레닌시대에 힘이 많던 고급간부들 중에 1920년대 말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스딸린을 제외하면 부하린 뿐입니다. 1920년대 말 당시에 정치국 위원 대부분은 스딸린에 의해서 임명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1920년대 초 중급이나 하급 간부였지만, 조직지도부를 통해서 스딸린 덕분에 많이 승진했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스딸린에 대해서 충성심이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의 권력기반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름도 트로츠키나 부하린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고급간부들은 스딸린에게 도전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고급간부들은 사실상 스딸린의 부하였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부하린을 열심히 공격했고, 부하린도 곧 정치국에서 해임되었습니다. 결국 1930년에 스딸린은 마침내 절대권력을 얻었습니다. 그 때부터 1953년 죽을 때까지 스딸린은 소련에서 절대권력을 가지고 나라를 원하는 데로 통치했습니다. 그에게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은 아예 없었습니다.
전: 핵심 권력층에서 밀려난 카메네프 등은 어떻게 됐습니까? 트로츠키처럼 외국으로 추방됐습니까?
란코프: 아닙니다. 트로츠키가 강제출국을 당했을 때 스딸린은 아직 다른 고급간부들을 죽일 권력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지노비예프와 부하린, 카메네프는 몇 년 동안 중급간부로 지냈습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스딸린에게 큰 소리로 충성맹세를 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비판도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어두운 운명이었습니다.
전: 만약에 지노비예프나 카메네프가 권력투장에서 이겼다면, 스딸린 소련 체제 보다 덜 참혹했을까요?
답: 객관적으로 말해서 그들의 가치관, 성격, 그들이 믿는 사상을 감안하면 그들은 스딸린과 별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승리했다면 그들 대신에 스딸린이 제거되었을 것입니다. 1920년대 소련의 권력투쟁은 좋은 사람이 있을 수도 없는 정말 개싸움이었습니다.
전: 란코프 교수님, 오늘도 말씀 감사합니다.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