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이 시간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대담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 공산당과 사회주의 경제에 반대한 폴란드 노동자
- 소련에 대한 증오심과 민족주의가 공산당 반대로 이어져
- 지식인과 학생 중심으로 체제 반대하는 파업∙노동 운동 발발
- 노동운동으로 공산당 간부 교체, 협동농장 폐지 등 성과
일반적으로 공산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계층은 노동자들입니다. 하지만 공산당과 사회주의 경제를 반대하고 자유화와 민주주의 사상을 크게 지지한 노동자 계층도 적지 않았는데요. 특히 뽈스카, 즉 폴란드 노동자들이 가장 대표적이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노동운동∙파업운동 등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는데요. 오늘은 공산주의를 반대한 폴란드 노동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교수님, 공산주의 운동이 시작했을 때 공산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의 역할을 많이 강조했는데요. 공산주의 이론 창시자인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은 공산주의 사상이 바로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사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산주의 역사를 보면, 오히려 노동자들은 공산당을 크게 반대한 사례가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제일 대표적인 국가가 폴란드(뽈스카)인데요. 왜 그랬나요?
[란코프 교수] 폴란드에서는 1980년 여름에 대규모 파업이 발발했습니다. 당시 폴란드 노동자들은 공산당에 도전했고, 사회주의 경제를 반대했습니다. 물론 당시 폴란드에서 유일한 정당의 이름은 공산당이 아닌 통일 노동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간판뿐이었습니다. 통일 노동당은 당연히 공산당입니다. 폴란드는 처음부터 사회주의 진영에서 제일 약한 지점이었습니다. 애초부터 반공 사상이 제일 심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폴란드에서 반공사상을 가장 잘 대표하는 사회계층이 바로 대기업 노동자들, 즉 노동계급입니다.
- 폴란드 노동계급은 왜 이처럼 공산당을 싫어했나요?
[란코프 교수] 민족주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폴란드는 대부분 동유럽 국가보다 민족주의 경향이 매우 심했습니다. 그러나 민족주의 사상은 증오해야 하는 대상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조선에서 원수 같은 대상은 당연히 일본입니다. 폴란드 인민들은 수백 년 전부터 러시아를 자신들의 원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사를 보면 폴란드는 오랫동안 제정러시아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그 태도를 이해하기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이 일본을 생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폴란드 국민은 소련이라는 국가에 대해 사상적인 새로운 옷을 입은 러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싫어하는 옷입니다. 공산주의도 국제사상보다는 러시아 제국주의의 새로운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 소련은 새로운 제정러시아 차르와 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동시에 폴란드는 공업 수준이 대부분 동구라파보다 높아서 노동자들이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민족주의를 열심히 믿었고 반공사상이 많았습니다.
- 교수님. 그렇다면 반공사상은 반러시아 민족주의 때문에 생긴 것인가요?
[란코프 교수] 물론 아닙니다.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1940년대 말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폴란드는 잘 사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의 서독이나 오스트리아와의 생활 수준 격차가 커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폴란드에서도 성장이 있었지만, 자본주의 나라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외에 사는 폴란드 출신들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폴란드 사람들은 주변 나라의 상황을 매우 잘 알았습니다. 따라서 민족주의뿐만 아니라, 사회주의가 초래한 경제 문제도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 폴란드 노동자들이 처음부터 공산주의를 싫어했다면, 그들이 바람직하게 생각한 사회는 무엇인가요?
[란코프 교수] 처음부터 폴란드 노동자들이 공산주의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1950년대 말까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폴란드 사람들이 희망하는 사회주의는 스탈린 시대에 있었던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사회주의였습니다. 당연히 1960년대 들어와 폴란드 사회 대부분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 매우 큰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폴란드의 역사를 보면, 이 나라에서 10~15년마다 체제를 많이 반대하는 노동운동과 파업운동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가장 먼저 1956년에 총파업이 발생했는데 당시 폴란드에 소련군대가 주둔했지만, 소련 정부는 힘으로 파업 운동을 진압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소련군이 개입할 경우 폴란드 군대까지 반소투쟁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소련 정부는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1956년 총파업 이후 소련과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었던 고급 간부들은 다 강제퇴직 당했고, 언론에 대한 검열이 많이 완화됐으며 종교활동의 자유도 크게 보장됐습니다. 흥미롭게도 당시 파업운동의 압박으로 1956년 폴란드 공산당의 최고책임자까지 퇴직했습니다. 또 자유화와 민주사상을 많이 지지한 사람이 폴란드 공산당, 즉 통일 노동당의 제1비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후 폴란드 정치역사의 특징이 됐습니다.
대규모 노동운동이 발발했을 때마다 공산당의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고급간부들이 많이 교체됐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폴란드에 농업 집단화가 취소됐다는 점입니다. 폴란드는 1950년대 말부터 농민들이 개인 농사를 짓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 교수님, 1956년에 발발한 총파업은 첫 번째 파업이라고 하셨는데요. 이후 얼마나 자주 파업이 일어났나요?
[란코프 교수] 거의 10년~15년마다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68년과 1970년에도 대규모 반공 민주화 시위, 반체제 시위, 파업 등이 있었습니다. 폴란드에서 공산주의를 가장 크게 반대한 세력은 여전히 노동계급이었습니다. 하지만 1968년부터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청년 학생들까지 반체제 운동에 많이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들어와 폴란드에서 노동자 대부분은 공산당, 즉 폴란드 통일 노동당을 매우 싫어했을 뿐 아니라 반공산주의, 민주화 운동의 핵심간부들은 압도적으로 젊은 지식인들이나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 교수님, 노동자나 지식인 모두 다 체제를 반대했다고 하셨는데요. 이렇게 인기가 없는 체제가 왜 무너지지 않았을까요?
[란코프 교수]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폴란드에 주둔한 소련군대입니다. 소련은 전략적인 이유로 무조건 폴란드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소련의 입장에서 보면 폴란드는 매우 중요한 완충지대입니다. 소련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그래서 소련은 폴란드에서 발생한 반공 운동이 통일 노동당 정권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면,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무력으로 진압할 것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반체제 운동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 한계라고 하셨는데요. 반체제 운동은 어떤 한계가 있었나요?
[란코프 교수] 오늘 말씀드리고 싶지만, 시간 관계상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다음 시간에도 공산주의에 반대한 폴란드의 노동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란코프 교수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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