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을 싫어한 폴란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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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진행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기자: 얼마 전에 뽈스카, 즉 폴란드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집권 세력이 매우 적은 표 차이로 간신히 승리했다고 합니다. 폴란드는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원래는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었습니까?

란코프 교수: 네 그렇습니다. 당시에 동유럽을 장악하고 사실상 신탁통치를 했던 소련지도부의 입장에서 폴란드만큼 골치 아픈 나라는 한 개도 없었습니다. 폴란드 국민들은 거의 처음부터 공산주의를 싫어했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공산당 독재 정권과 싸움을 벌였습니다. 파업도 많았고, 시위 싸움도 잦았습니다.

기자: 란코프 교수님, 그런데 소련 지도부에게 가장 골치 아픈 나라는 북한이 아니었나요?

란코프 교수: 엄밀하게 말하면 소련에 가장 골치 아픈 나라는 중국이었습니다. 북한도 1950년대 말부터 자주성을 외치고 소련 말을 거의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련에 북한은 멀고 먼 나라일뿐만 아니라 전략적 가치가 그리 높지 않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폴란드는 지금도, 50년 전에도, 250년 전에도 소련과 러시아에 전략적으로 제일 중요한 지역입니다. 외국 세력이 러시아로 쳐들어올 때도, 러시아가 외국을 침공할 때도 폴란드를 지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폴란드를 통제하려 많이 노력했습니다.

기자: 과거 소련과 러시아는 폴란드를 통제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는데, 폴란드는 어떻게 계속 소련에 골치 아픈 나라로 남았을까요?

란코프 교수: 통제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이유는 몇 가지 있었습니다. 폴란드는 인구가 제일 많은 동유럽 나라로, 인구가 거의 오늘날 4000만 명에 달합니다. 체코나 웽그리야(헝가리) 같은 기타 동유럽국가보다 2-3배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족 자부심이 아주 높은 나라입니다. 폴란드 사람들은 러시아 앞에 굴복할 생각이 거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폴란드는 19세기부터 거의 100년 동안 러시아 식민지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폴란드 사람들의 러시아에 대한 생각이 무엇일까요? 조선반도 사람들이 일본을 생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기자: 어쨌건 소련군대는 1944년 폴란드로 들어갔고, 얼마 후 파쇼독일도 무너뜨렸습니다. 소련은 폴란드에서 파쇼독일 군대를 쫓아냈는데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소련에 고마워하는 마음이 있었던 사람들도 있지 않았을까요?

란코프 교수: 어느 정도는 그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시대 폴란드사람들이 소련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약간의 모순이 있었습니다. 한편에선 소련을 제국주의국가로 보고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폴란드 사람들에겐 그들을 멸족시키려고 시도한 파쇼독일이 소련보다 훨씬 더 끔찍한 세력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45년 이후 폴란드는 경제 조건과 지리 조건이 아주 좋은 독일 땅 상당 부분을 새 국토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폴란드에서 소련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가운데도 일부는 소련에 고마움을 느끼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고 않았습니다. 그래도 대체로 말하면 폴란드만큼 반공산주의사상이 강한 동유럽 나라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기자: 하지만 1940년대 말 소련이 위성국가들을 만들던 시기엔 동유럽 어디에나 반공산주의가 팽배하지 않았습니까?

란코프 교수: 아닙니다. 지역별로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공산주의사상을 열심히 지지했던 지역도 없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불가리아가 있습니다. 당시에 체코도 조금 그랬습니다. 하지만 폴란드에서는 처음부터 아주 심한 반공감정이 있습니다. 폴란드 사람들은 소련이든 제정러시아이든, 둘 다 별 차이 없는 제국주의 세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였습니다.

기자: 소련은 위성국가에 공산당과 비슷한 정당도 만들고, 소련군대도 주둔시켰습니다. 소련의 후원을 받았던 폴란드 정권은 왜 반체제 세력을 진압하지 못했을까요?

란코프 교수: 우리는 동유럽에서 흥미로운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반공사상, 반소련 사상이 많은 나라에서 소련의 통제는 비교적 약했습니다. 즉, 소련이나 소련의 위성정권은 주민들의 의지를 노골적으로 진압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폴란드 정권 역시 주민들의 의지를 많이 짓밟거나 할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폴란드 간부들 중에도 폴란드 애국주의와 민족주의가 많았습니다. 이것은 어느정도 북한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차이점은 북한에서 1950-60년대말 김일성과 간부들은 국내에서 소련보다 훨씬 더 심한 감시체제를 구축하고, 강철과 같은 일심단결 국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폴란드의 많은 간부들은 자유주의 경향이 많았고, 애국주의 경향도 많았으며 주민들에 대한 감시와 단속이 심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기자: 하지만 소련은 1956년 웽그리야(헝가리)에서, 1968년 프라하에서 탱크로 반소련 시위를 짓밟아 버렸습니다. 왜 폴란드에서는 같은 일을 하지 않았나요?

란코프 교수: 1956년 웽그리야에서 반공산주의 인민 봉기가 시작되었을 때, 폴란드에서도 반공 민주화 운동이 시작했습니다. 특히 수많은 공장에서 노동자들은 파업 싸움을 벌였습니다. 특히 당시에 폴란드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했고, 국가는 사실상 멈추어 버렸습니다. 폴란드공산당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을 탱크로 진압하는 것을 반대하면서도, 소련과 타협하고 싶어했습니다. 폴란드가 소련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폴란드공산당은 소련지도부와 협상하고 타협했습니다. 폴란드는 소련군대가 주둔하는 국가로 남아 있었습니다. 경제도 주로 사회주의 경제입니다. 그래도 북한 협동농장에 해당하는 집단 농장은 모두 해산되고, 폴란드 농업은 그때부터 개인농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은 여전히 국가소유입니다. 폴란드공산당은 파업으로 나간 노동자들의 요구를 많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얼마 동안 안정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든지 잘 알았던 것은 폴란드공산당이 인민들이 너무 싫어할 결정을 내린다면, 폴란드의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나가고, 대학생들은 모두 다 거리로 나가서 시위투쟁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기자: 1956년 이후에도 이러한 위기가 있었나요?

란코프 교수: 네 그렇습니다. 10-15년마다 위기가 생겼다고 할 수 있는데, 1968년에 위기가 있었고 그 때도 공산당지도부는 노동자운동과 학생운동의 압박에 굴복하고 양보를 많이 했습니다. 1980년도에도 비슷했는데 당시에 몇 년 동안 폴란드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로 지냈습니다. 마지막은 1989년입니다. 당시에 폴란드 지도부는 사실상 항복하고, 정권을 반공산주의 노동운동 세력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기자: 그렇다면 혹시 당시 소련은 폴란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투입하거나 할 계획은 없었을까요?

란코프 교수: 비공개 자료를 보면, 1956년에도, 1981년에도 이러한 생각이 소련공산당 지도부에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련 지도부는 폴란드 국민들의 사상 경향을 잘 알았고, 또 이것이 피가 많이 흐를, 매우 모험주의적인 정책이라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소련공산당은 소련군대 투입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기자: 네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한국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오늘 순서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