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가장 참혹하게 통제한 공산주의 국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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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이 시간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대담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 3년 동안 인구의 ¼를 학살한 캄보디아 공산당

- 절대권력자 폴 포트, 마음대로 권력 휘둘러

- 반동의 상징인 도시 없애고, 시골로 강제 추방

- 공무원∙경찰∙소수민족 무차별 학살


공산주의 역사에서 국민에 대한 단속과 통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공산당의 잔혹함이 드러나고,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 정도인데요. 지금도 북한에서는 체제의 안정을 목적으로 주민을 강력히 단속하고 통제하고 있죠. 공산주의 역사에서 가장 국민을 참혹하게 단속한 국가는 어디였을까요?

- 교수님, 공산주의의 역사를 보면 나라별, 시대별로 주민들에 대한 단속과 진압의 정도가 많이 달랐습니다. 교수님이 보실 때 가장 엄격하고 참혹하게 주민을 통제하고 단속한 공산주의 정권은 어디인가요?

[란코프 교수] 대부분 사람은 1930년대 구소련의 스탈린 독재 정권이나 1960년대의 대약진과 문화대혁명 시대의 모택동 정권을 가장 악독하고 비인도적인 공산정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소련과 중국은 인구가 참 많은 나라입니다. 중국에서 발생한 대약진과 문화혁명 당시 처형됐거나 굶어 죽은 사람은 2천~3천만 명으로 추산되는데요. 이는 총인구 대비 4~5% 정도입니다.
하지만 불과 3년 동안 자신의 나라에서 인구의 4분의 1 정도를 죽여버린 공산당 정권이 있었습니다. 바로 1975년부터 79년까지 동남아시아의 캄보디아(캄푸치아)를 통치한 캄푸치아 공산당입니다. 이 공산당의 만행을 가로막은 세력은 이웃 나라 공산당입니다.

- 1975년에 캄보디아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는데요. 당시 캄보디아는 어떤 상황이었나요?

[란코프 교수] 캄보디아는 윁남(베트남)과 태국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입니다. 인구가 별로 많지 않은데, 당시에는 800만 명 정도였습니다. 베트남과 가까운 역사이기는 하지만 동아시아 문화권은 아닙니다. 원래 기본 종교는 불교입니다. 대부분 동남아시아 국가처럼 19세기에 프랑스 제국주의의 침략을 당했고, 1940년대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습니다. 이후에 독립선언을 했습니다. 아마 청취자 여러분도 당시 캄보디아 왕의 이름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의 이름은 노로돔 시아누크입니다. 시아누크는 모순이 많고 매우 흥미로운 사람이지만, 오늘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닙니다.
1960년대부터 캄보디아에서 공산당은 시아누크 국왕에 반대하는 유격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시아누크 정권은 군부의 쿠데타로 무너졌습니다. 캄보디아 공산당은 여전히 유격 활동을 했는데, 당시 베트남, 특히 중국에서 지원을 많이 받고 결국 1975년 4월, 바로 베트남 무력통일과 같은 시기에 캄보디아에서도 공산당이 승리했습니다.

- 교수님. 그들은 정권을 잡은 다음에 다른 나라처럼 공산주의 정책을 시작했나요?

[란코프 교수] 아닙니다. 당시 캄보디아 공산당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뿐만 아니라 모택동의 중국 기준으로도 매우 극한 정치사상을 가졌는데요. 그들의 사상은 1960년대 문화혁명 시대의 홍위병 사상보다 더 끔찍합니다. 중국에서 홍위병들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는데, 1975년 캄보디아 공산당과 지도자인 폴 포트라는 사람은 절대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 홍위병보다 더 끔찍하다고 하셨는데요. 그들은 어떤 일을 했나요?

[란코프 교수] 제일 먼저 그들은 도시를 없애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캄보디아 공산당이 바람직하게 생각했던 나라는 농민들이 평등하게 살면서 농사를 짓는 나라였습니다. 그들에게 도시는 반동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도시에 살았던 사람들은 강제소개를 당했습니다. 캄보디아의 수도는 프놈펜이라는 곳인데, 1~2달 만에 프놈펜 주민의 4분의 3이 시골로 강제소개 당했습니다.

- 교수님, 그런데 도시가 없는 나라에서 경제는 어떻게 돌아가나요?

[란코프 교수] 흥미롭게도 그들은 화폐가 없는 경제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캄보디아는 갑자기 돈이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배급제와 공급제가 절대화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국가에서 배급을 공짜로 받고, 당연히 장마당과 같은 것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 교수님, 캄보디아 공산당의 만행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하셨는데요. 그들은 누구인가요? 공산당이 주장하는 반동분자들인가요?

[란코프 교수] 캄보디아 공산당은 공산주의 역사에서도 전례가 거의 없는 극한 테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는 첫 단계에서 지식인들의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지식인들은 지주나 자본가 출신이라고 해도, 대부분 공산혁명 이후에도 의사나 기술자로 별문제 없이 지냅니다.
하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폴 포트 정권은 모든 지식인이 반동적 체제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고칠 수 없는 반동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들을 재교육시키기 위해서, 즉 혁명화를 위해서 시골로 보낸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혁명 이전에 교육을 받은 사람은 거의 모두 제거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기관 직원, 경찰이나 공무원은 무조건 학살됐습니다. 공산당은 그들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인간 오작품이라 주장했습니다.
또 하나의 학살대상은 소수민족이었습니다. 캄푸치아에는 크메르족이라는 다수 민족뿐만 아니라 20여 개 소수 민족이 살았는데, 소수 민족이 자신의 옛날 말이나 옷, 문화를 포기하지 않으면 바로 처형되었습니다.

- 교수님, 대부분 공산주의 국가는 소수민족을 우대한 것으로 아는데요. 폴 포트 정권은 왜 이런 만행을 저질렀나요?

[란코프 교수] 공산주의 이론을 보면 국제주의를 많이 강조하기 때문에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캄보디아가 공산국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다른 공산 국가들은 캄보디아 공산정권을 공산주의 정권으로 인정하고, 수교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중국은 당시에 폴 포트 정권을 높이 평가했고 지원까지 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북한도 폴 포트 정권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맺었습니다. 북한 군인들까지 캄보디아 군대를 훈련시켰습니다. 하지만 캄보디아는 원래 이웃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과 관계가 좋았는데, 빠른 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관계는 왜 나빠지기 시작했나요?

[란코프 교수] 폴 포트 정권은 베트남에 대해서 많은 도발을 감행했고, 남베트남에 대해 영유권까지 주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처형을 피해서 많은 소수민족이 베트남으로 도망갔습니다. 1978년 말 들어와 캄보디아와 베트남은 사실상 전쟁 상태에 돌입했습니다. 이것은 폴 포트 정권이 큰 실수였습니다. 79년 초 베트남 군대는 캄보디아를 공격했고, 보름 만에 모든 지역을 점령했으며 친 베트남 위성 정권을 수립했습니다. 애초 베트남을 매우 싫어했던 캄보디아 사람들이지만, 이때 베트남 군대를 해방군으로서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인구에서 25% 정도가 이미 테러와 기근, 처형 때문에 죽어 버린 뒤였습니다. 이것은 공산주의 역사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례 없는 매우 참혹한 정권이었습니다.

네, 오늘은 교수님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공산주의 정권이었던 캄푸치아 공산당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란코프 교수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