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ING: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공산주의 역사이야기'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전수일: 교수님, 우리는 몇 주 동안 공산주의몽골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공산주의 몽골의 역사의 특징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란코프 교수: 몽골인민공화국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제일 잘 알려진 특징은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1920년대초 생긴 세계 두 번째 사회주의국가입니다. 동시에 몽골은 유일하게 기근을 초래한 농업집단화 정책을 대중들이 무장투쟁으로 가로막은 나라입니다. 한편으로 공산주의 몽골은 1911년에 사실상 독립국가가 되었지만, 1945년말까지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후견국 소련에서까지 법률적인 주권국가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몽골은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들 중에 유일하게 1990년대 초 동유럽 국가사회주의 나라처럼 민주주의 혁명을 경험한 나라입니다. 아시아에서 중국이든 윁남이든 라오스이든 사실상 모두 다 자본주의 사회를 열심히 건설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의 간판을 내걸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장마당 성장 등에도 불구하고 자유화가 아예 없습니다. 그러나 몽골은 동구권 뽈스카나 웽그리야처럼 1990년 1월 민주화운동이 발발하고, 결국 민주주의 혁명으로 공산정권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전: 아시아에 있는 몽골이 어째서 동구권 국가들처럼 민주혁명의 길을 걸었는지 궁금합니다?
란코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리보다는 문화와 구체적인 정치 상황입니다. 몽골은 소련과 관계가 제일 가까운 사회주의 국가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몽골인민공화국이 사실상 16번째 소련 가맹공화국이라는 농담까지 했습니다. 1950년대부터 84년까지 30년동안 몽골을 통치한 세덴발 총비서의 부인은 러시아 백인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지식인들은 소련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몽골지식인들은 그때도 지금도 러시아말, 노어를 자기 고향말처럼 잘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를 이어 몽골사람들이 받은 교육은 무조건 러시아를 따라 가야 한다는 교육입니다. 물론 중국에 대한 공포가 많아서 몽골사람들은 이러한 교육이 없었다고 해도 많이 바뀌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1980년대말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 운동, 민주화 운동이 발발하자 몽골사람들 특히 몽골 지식인들은 이 운동을 당연히 모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몽골은 권위주의 독재국가였는데, 소련처럼 어느 정도 개인적으로 정치 이야기가 가능했습니다.
전: 몽골에서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은 지식층이었나요?
란코프: 당연히 지식인들이었습니다. 1990년 몽골의 민주혁명 이야기를 할 때, 같은 무렵에 구소련에서 벌어진 위기와 매우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지식인들은 여러 행사에서 공산당체제를 비판하는 연설을 가끔 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기자들은 몽골의 경제 문제를 비판하고 숙청이 많았던 과거 역사에 대해서도 비판이 많았습니다. 얼마 전에 말씀 드린 것처럼 1920-30년대 몽골에서 숙청과 학살은 예외적으로 컸습니다. 몽골 언론들은 옛날 일에 대해서도 가끔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80년대말 90년대초 동구권이나 여러 소련 가맹 공화국들에서는 민족주의가 높아지고 반소련 감정이 고조되지 않았습니까? 몽골도 그랬습니까?
란코프: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비슷했습니다. 1980년대말부터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는 기타 국가들처럼 반정부 시위가 없지 않았는데, 민족주의 냄새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사회주의 몽골에서 몽골 국가 창시자인 칭기스칸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평가가 있었습니다. 칭기스칸이 격하된 기본 이유는, 칭기스칸과 그 후손들이 고대 러시아 국가를 없애버리고 러시아 지역을 폐허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러시아 학자 대부분은 몽골 국가 창시자를 너무 미워했습니다. 그 때문에 소련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몽골 역사가들도 칭기즈칸을 마구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1989년이나 1990년에 칭기즈칸은 갑자기 복권되고 국가의 아버지로 높이 추대되었습니다. 몽골 글자 문제도 많이 제기되었습니다.
전: 몽골은 러시아어를 비롯한 동구 슬라브권 국가들처럼 키릴 문자를 쓰지 않습니까?
란코프: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원래 다른 글자가 있었고, 민주화 운동가들은 그 옛날 글자를
다시 부활시키고 키릴문자를 폐지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말씀 드린 것처럼 반러시아, 반소 감정은 80년대말 강해졌는데 몇 년 이내에 거의 다 없어졌습니다.
전: 그렇군요. 그럼 몽골 민주 혁명은 어떻게 발발했나요?
란코프: 1989년말 소련 영향을 많이 받은 젊은 지식인들은 몽골민주동맹이라는 정치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몽골인민혁명당', 즉 몽골공산당에 반대하며 민주혁명을 이루기 위한 정당입니다. 사실상 몽골에서 1당제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전: 몽골인민혁명당 정권이 민주화 운동을 방관하지 않았겠지요?
란코프: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1990년 1월부터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반정부 데모가 계속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원래 수백 명 정도였는데 나중에 수천 명 규모까지 커졌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광장을 찾아서 데모 참가자들에게 음식, 좋은 옷 등을 주었고, 자신의 지지를 표시하였습니다. 당시에 날씨가 너무 춥고, 온도는 영하 30도였습니다. 이와 같은 데모의 모습은 1989년 5월-6월의 중국 북경에서 벌어진 천안문 사건과 매우 비슷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몽골인민혁명당 지도부는 3월에 사실상 항복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당시에 무력을 동원해 강제 진압을 주장하는 고급간부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소수였습니다. 1990년 3월, 결국 몽골 인민 혁명당은 같은 해 여름에 자유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것은 소련식 사회주의의 종말이었습니다.
전: 몽골인민혁명당이 자유선거 약속을 지켰습니까? 부정선거를 하지는 않았나요?
란코프: 아닙니다. 그들은 약속을 잘 지켰습니다. 선거는 공정하게 실시되었고 몽골인민혁명당은 다수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전: 그렇다면 민주화를 요구했던 몽골민주연합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란코프: 1990년 이후 몽골헌법과 몽골 국가구조가 다 바뀌었습니다. 몽골인민혁명당은 자신의 이름도 바꾸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정당은 자신의 원래 이름, 즉 몽골인민당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그들은 공산주의 사상을 완전히 포기했고, 자유민주주의를 인정했고, 자신들의 기본 사상이 공산주의라기 보다는 사회민주주의라고 규정했습니다. 그 때문에 1990년부터 96년까지 몽골인민혁명당, 이제 몽골인민당은 정권을 장악했지만 야당세력인 민주연합은 자유롭게 정치활동을 했습니다. 야당은 당연히 몽골인민당 정책을 많이 비난했습니다. 당시에 비난 대상이 많았습니다. 1991년이나 92년 이후 소련이 무너진 다음에, 소련에서 지원이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소련과 관계가 있었던 기업소 대부분은 생산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당연히 몽골 사람들은 갈수록 불만이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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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