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사망 이후 시행된 정치개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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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이 시간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대담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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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사망 이후 시행된 정치개혁(2)>

- 미국 비롯한 서방 국가의 영화 접하고, 풍족한 생활 간접 체험

- 노동자로 해외에 나갈 기회 많고, 개인 여행도 가능

- 외국 방송 청취 가능, 해외 생활 알아

- 미국 일본처럼 소비품 많고 , 개인 자유 많은 사회주의 원해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 정치개혁을 시행한 소련 공산당은 국민의 높은 지지를 얻게 됩니다.

당시 새로운 지도부가 인민 생활의 수준을 높이는 데 주력하면서 살림살이도 나아졌고요, 농민에 대한 착취와 압박을 완화했을 뿐 아니라 여행의 자유도 보장했습니다. 또 문학, 영화, 음악 등에 대한 검열과 통제도 느슨해지면서 많은 사람이 공산당 지도부에 대해 자부심도 갖게 됐는데요.

하지만 1960년대 초, 공산당 정권에 대한 지지는 줄어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방 국가와 생활 수준 격차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데요. 소련 국민은 이 같은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계속해서 란코프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 교수님, 소련 국민은 자본주의 나라와 비교해 어렵게 산다는 것을 알았는데요. 그 때문에 체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기 시작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해외 생활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 란코프 교수 ] 구소련은 북한과 비슷한 점도 많았지만 , 사뭇 다른 점도 아주 많았습니다 . 구소련도 쇄국정책 , 자기 고립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 하지만 북한과 비교하면 비교할 없을 정도로 너무 약했습니다 . 소련 영화관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나라들의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소련 선전 일꾼들이 허락한 미국이나 도이칠란트(독일) 나라 영화들은 자기 나라의 자본주의와 정치를 큰 소리로 비난하는 영화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련 인민들이 미국영화를 볼 때면 평범한 미국 사람들이 타는 자동차와 집, 생활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련사람들은 해외로 갈 기회가 많았습니다. 노동자로 가는 것보다는 주로 기술자로 갔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개인 여행도 가능했습니다.

또 외국 방송도 아주 중요했는데요 . 북한에서 외국 방송을 듣는 것은 큰 비법 행위인데, 60~70년대 소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돈만 있으면 가게에서 좋은 수신기를 구매해 외국방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1980년에 저는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어머니는 선물로 고급 수신기를 주셨습니다. 외국방송을 많이 듣고, 외국어 공부를 위한 선물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소련사람들은 당시에 해외 생활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1970년대 들어와 소련 국민은 자본주의 나라의 생활을 실제보다 과장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적에 대한 환상에 빠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 란코프 교수 ] 그렇습니다 . 그들은 구라파 ( 유럽 ) 사람들이 사는 것을 알았을 아니라 그들의 생활 수준을 사실보다 과장하는 경향이 심했습니다 .

- 교수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공산주의 국가에서 외국 방송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체제에 대한 불만이 커졌는데, 소련 국민의 희망은 무엇이었나요?

[ 란코프 교수 ] 이것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 쉽게 설명하자면 소련 국민 누구나 변화를 기대했다고 있습니다 . 그러나 바람직한 변화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습니다 . 일반 노동자이던, 당 중앙 지도원이던 거의 모두 조만간 많은 변화를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에 관해서는 서로 생각이 엇갈렸습니다. 흥미롭게도 1980년대 말까지 대부분 소련 국민은 사회주의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나 시장경제로 바꾸자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는 매우 위험한 발언이었습니다 .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말을 안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 소련 사람의 희망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였는데요, 하지만 그들이 희망한 사회주의는 유럽의 자본주의 국가, 미국이나 일본처럼 소비품이 많고, 개인의 자유도 많은 것이었습니다.

- 한편, 1980년대에는 중국에서도 개혁개방이 이뤄지는 시기였습니다. 소련 국민은 중국의 경험을 모방할 생각이 있었을까요?

[ 란코프 교수 ] 전혀 없 었습니다 .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요 . 첫째 ,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해서 몰랐습니다 . 둘째 , 솔직히 말해서 중국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 너무 못사는 야만족의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 중국을 모방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이유는 세 번째입니다. 중국은 당시나 지금이나 권위주의가 강한 나라, 쉽게 말하면 독재국가입니다. 변화를 기대했던 소련 국민은 독재를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민주화를 통해서만 나라를 변화시키고 구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1985년 4월, 미하일 고르바초프라는 사람이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되었습니다.

- 그렇군요. 지난 2주 동안 교수님과 함께 1950~60년, 70년대까지 소련 공산주의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다음 시간에는 1980년대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취임 이후를 살펴보겠습니다.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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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