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보다 더 빨리 무너진 동구라파의 사회주의

0:00 / 0:00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이 시간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대담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

<소련보다 더 빨리 무너진 동구라파의 사회주의>

- 동구라파의 공산주의 체제, 소련보다 빠른 1989년에 무너져

- 동구라파 국가들, 소련보다 자유가 더 많아

- 주민에 대한 감시 느슨해, 자본주의 국가와 교류 더 많아

- 사회주의 문제 커질수록 소련에 대한 원망 불만 커져

- 소련 군대의 진압 사라지자 공산주의 정권 대부분 무너져

지금까지 우리는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어떻게 붕괴했고, 그 이유가 갈수록 심각해진 경제 문제였다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또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었던 소련 국민들이 다른 서방국가와 경제적 격차를 비교하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저버린 것도 하나의 배경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이 시간에는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의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 교수님, 안녕하세요. 지난주까지 저희가 구소련의 사회주의 위기와 붕괴의 배경 등을 살펴봤습니다. 그렇다면 동구라파 국가들은 어땠는지 궁금한데요. 1980년대 말 사회주의는 소련뿐만 아니라 동구라파에서도 무너지지 않았을까요?

[란코프 교수] 네. 그렇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1940년대 2차대전 이후 소련군대가 진출한 동구라파 국가들은 모두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소련뿐 아니라 동구라파의 10여개 국가는 사회주의 진영 또는 공산권으로 알려지게 됐습니다. 이 지역에서 공산주의 체제는 소련보다 먼저, 즉 1989년에 무너졌습니다. 사회주의의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소련이든 동구라파 국가든 비슷했습니다. 동구라파에서 위기는 더 빠른 속도로 심화하였고, 사회주의 체제도 더 빨리 붕괴됐습니다.

- 동구라파는 소련보다 더 빨리 공산주의가 무너졌다고 하셨는데요. 왜 그랬나요?

[ 란코프 교수 ]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 예를 들면 동구라파 국가 대부분은 소련보다 주민들에 대한 감시와 단속이 엄격하지 않았습니다 . 다시 말하면 뽈스까 ( 폴란드 ) 웽그리아 (헝가리)는 사회주의 시대에 소련보다 더 자유가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반공산주의 성향이 심한 사람들은 그들이 싫어하는 체제를 더 쉽게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비교적 자유가 많았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민족주의, 둘째는 자본주의 국가와 훨씬 더 가까운 관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 뽈스까(폴란드), 웽그리아(헝가리), 체코 등 동구라파 국가들은 소련보다 독일이나 영국 같은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와 관계가 더 깊었다는 말씀이신가요?

[란코프 교수] 그렇습니다. 이들 국가는 애초에 서방국가와 교류가 많았습니다. 사회주의 시대에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에서 온 방문객들도 많았고, 편지나 소포도 거의 자유롭게 보내거나 받을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국가는 서방세계와 거리가 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서방국가의 방송, 심지어 TV 방송의 시청도 가능했습니다. 그들이 자기 눈으로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1940년대 말 공산주의 체제를 도입하기 이전에 서방국가들은 그들과 대체로 비슷하게 살았는데, 수십 년 후에 동구라파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동구라파 주민들이 이 사실에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당연히 공산주의 체제 때문이라는 겁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외세, 즉 소련에 의해 강제적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시대착오적인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교수님, 이것을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란코프 교수] 그렇습니다. 동구라파에서 민족주의를 많이 촉진한 요소 중의 하나는 바로 소련, 즉 러시아를 대상으로 하는 민족주의였습니다. 소련에서 공산주의에 대해 실망하거나 처음부터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싫어했던 사람들이라 해도, 공산주의가 러시아 국내에서 생긴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구라파는 그렇지 않습니다. 뽈스카나 웽그리아, 체코 등의 동구라파 국가 대부분은 공산주의가 국내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소련군대 때문에 강제적으로 들어온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1960년대부터 동구라파 대부분 나라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인구의 절반 이상이었습니다. 당연히 문제가 생길 때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나쁜 외국, 외세 때문이라는 주장은 듣기 좋은 말이 아닐까요?

- 교수님, 이것은 북한에서도 자주 듣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동구라파 사람들이 당시에 믿던 것은 사실이 아닐까요? 이들 국가에서 사회주의는 소련군대 때문에 생긴 일이지 않습니까.

[란코프 교수] 이것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물론 1945년에 소련군대가 파쇼 독일과 싸웠을 때, 동구라파에 진출하지 않았더라면 이들 국가 대부분에 공산주의 혁명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1940-50년대 공산주의 혁명이 시작되었을 때, 동구라파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태도는 나라에 따라 매우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원래 러시아를 ' 위험한 침략자 ' , ' 무서운 제국주의 ' 국가로 생각했던 웽그리아에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지지가 거의 없었습니다. 뽈스까도 조금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소련군대를 환영했고 , 사회주의에 대해 희망이 컸던 나라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체코나 불가리아에서는 인민 다수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처음부터 사회주의가 소련 제국주의 때문에 생겼다고 믿었던 웽그리아 사람들뿐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을 환영했던 체코 사람들도 공산주의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민족주의가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실망이 커질수록 사회주의가 외세 때문에 , 특히 소련의 강점과 간섭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자신들의 부모님, 그리고 자신들이 처음부터 사회주의를 환영하거나 지지했던 사실을 잊어버리기도 했고 인정하기도 싫어했습니다.

- 그렇다면, 1970-80년대 말까지 동구라파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한 적대감과 실망감이 소련보다 심했다는 말씀인데요. 그렇다면 그들은 왜 사회주의 체제에 맞서서 열심히 싸우지 않았을까요?

[란코프 교수] 싸우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1956년 헝가리, 1968년 체코, 1980년에는 폴란드에서 반체제 운동이 발발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비슷한 사건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반체제 운동은 모두 소련의 탱크에 의해 진압됐습니다. 그래서 동구라파 국민이 당시에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배운 사실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반발은 소련 군대의 무력개입을 즉시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소련에서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이제부터 인민봉기와 인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소련군대를 해외로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즉시 나타났습니다. 소련군대가 지켜주지 않게 되자 공산주의 정권들이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 진압되지 않는 인민들의 저항 운동으로 공산주의 정권이 다 무너져버렸다는 말이군요.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늘날 북한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도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