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과 공산주의 국가의 배급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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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하지만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이 시간은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대담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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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과 공산주의 국가의 배급제도>
- 공산주의 국가에서 배급제 존재
- 소련에서 배급제는 비정상적인 제도 인식, 불과 15년만 시행
- 위기에만 배급제 시행, 위기 극복 이후에는 배급제 철회
- 북한처럼 배급제로 인민을 통제하는 나라는 없어


공산주의 국가의 대표적인 경제 방식 중 하나가 배급제입니다. 국가가 제공하는 음식과 생활용품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는데요. 북한에서는 배급제가 정상적인 제도였지만, 소련은 배급제를 비정상적인 제도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오늘은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의 배급제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교수님, 미국이나 남한에서 많은 사람은 여전히 소련식 국가사회주의 경제에는 배급제가 있고, 사람들이 식량 가게 앞에서 길게 줄을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인가요?

[란코프 교수] 배급으로만 식량과 소비품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을 받기 위해 오랫동안 줄을 서 있어야 하던 시대가 공산주의 역사에 없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길지도 않았습니다. 공산권에서 배급제와 공급제에 대해 두 가지 접근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중국과 북조선을 비롯한 동양의 공산권 국가 대부분은, 배급제는 당연한 일이었을뿐 아니라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김일성은 가끔 공급제와 배급제를, 돈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일반 상거래보다 훨씬 우월하고 좋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중국의 모택동도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기본 이유는 중국, 북한, 베트남 등 동양 공산권 국가 대부분은 자원이 부족하고,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국가에서 평등주의 정신이 소련이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보다 훨씬 심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배급제와 공급제를 많이 강조했습니다. 반면, 동유럽이나 소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 교수님, 그렇다면 소련에서 배급제나 공급제가 없었나요?

[란코프 교수] 없지 않았지만, 소련 국민이나 정부도 배급제를 비정상인 정책, 다시 말해 전쟁이나 국가 위기에만 하는 정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련 사람에게 배급제가 시작됐다는 것은, 국가에 큰 위기가 닥쳤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말부터 소련의 시골에서 소비품과 일상용품의 상황이 매우 어려워지기 시작했을 때, 지방 도당, 구역당과 같은 지방당 조직은 배급제와 공급제의 시행을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당 중앙과 내각은 이 요청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배급제의 도입이 국가가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 교수님, 하지만 소련에는 배급제가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란코프 교수] 그렇습니다. 배급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소련 역사는 70여 년 입니다. 그 70년 동안 배급제가 시행된 기간은 불과 15년 정도였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나머지 55년 동안은 배급제가 없었습니다.

- 배급제가 시행된 기간이 15년밖에 안 된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배급제, 공급제는 언제 있었나요?

[란코프 교수] 소련에서 최초로 배급제가 도입된 때는 1929년입니다. 당시 공산당은 집단화 정책을 시작했기 때문에 도시에서 식량 상황이 매우 어려워지고, 러시아 사람들의 기본 음식인 빵과 감자를 얻는 것도 어렵게 됐습니다. 이 때문에 배급을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배급제는 6년 동안만 시행됐습니다. 그리고 1935년에 배급제가 폐지됐습니다. 1941년 제2차 대전이 시작되자 소련에서 배급제가 재실시됐습니다. 그러나 승전 2년 후인 1947년에 배급제는 다시 폐지됐습니다. 당시 소련은 이것을 소비생활의 정상화라고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북한이 2005년에 오랜 기간 사실상 마비되었던 배급제를 다시 도입했을 때, 이것이 배급제도의 정상화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소련 사람에게는 배급제 폐지가 정상화이며, 북한에서는 배급제가 정상적인 제도입니다.

- 하지만 1980년대에 세월이 갈수록 소련의 상황이 어려워졌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80년대 말 신문 사진을 보면 빵집 앞에 소련 인민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는데요.

[란코프 교수] 솔직히 말하면 제가 당시 소련에서 대학생과 젊은 교수로 지냈을 때 빵집 앞에서 긴 줄을 서 있었던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물론 당시에 줄 서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것은 빵이 아니라 채소, 설탕, 물고기 등이었습니다. 치약이나 양말도 당시에 갑자기 찾기 어려운 물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1980대 말에 소련이 어렵게 살았어도 30년대 초나 40년대 초와 다르게 빵과 감자는 배급제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에 소련에서 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생긴 공급제의 대상은 고기, 설탕, 통조림, 양말, 담배와 술 등이었습니다.

- 교수님,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요. 배급제가 자발적으로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나요?

[란코프 교수] 가능했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상한 말이 아닙니다. 당 중앙과 내각은 끝까지 배급제와 공급제의 시행을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물건이 많이 모자라 주민들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 당국자들은 모스크바에서 내려온 압박과 교시를 무시하고, 자신의 도시나 지역에서만 실시되는 공급제 도입을 결정했습니다.

- 교수님, 그렇다면 80년대까지 소련에서 돈만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었나요?

[란코프 교수] 그렇지 않습니다.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당연히 상점에서 보기 어려운 물건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 물건들은 시대별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입품 대부분은 자유롭게 팔리지 않았습니다. 70년대에 자연색 텔레비전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수많은 경우 상점 판매원과 직원들은 이렇게 수요가 높은 물건을 몰래 아는 사람들에게만 팔았습니다. 수입 향수가 있다면, 상점 판매원들은 향수를 값싸게 물고기 상점 직원들에게 팔았습니다. 또 나중에 물고기 상점에서 연어와 같은 고급 물고기가 있을 때 일반 주민은 연어가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당연히 직원들은 그 연어를 고급 향수를 파는 상점이나 힘이 많은 간부, 그 가족들에게 값싸게 팔았을 겁니다. 이것은 사회주의 국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모습입니다. 하지만 비싼 소비품은 좀 다릅니다. 냉장고, 승용차와 같은 것은 인맥도 중요하지만, 인맥으로만 팔리지 않았습니다.

- 그렇다면 냉장고, 승용차 등 값비싼 소비품은 어떻게 팔렸나요?

[란코프 교수]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시대별, 지역별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70~80년대에 제가 살았던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냉장고는 아무 때나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수요가 아주 많은 소비품은 사실상 사람들이 다니는 기업소를 통해서 공급했습니다. 실제로 수백 명의 노동자가 다니는 공장은 매년 승용차 2~3대 정도를 살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 허락을 받은 노동자와 간부는 자동차 상점에 가서 돈을 내고 승용차를 구매했습니다.

- 교수님, 그렇다면 김일성 시대의 배급제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보다 예외적으로 힘이 셌다고 할 수 있나요?


[란코프 교수] 그렇습니다. 1970-80년대에 북한만큼 배급제와 공급제로 국민들의 소비 생활을 매우 엄격하게 통제하는 나라는 세계 역사상 없었습니다.

오늘은 소련의 배급제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도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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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