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체제하의 해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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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공산주의 역사이야기'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전수일: 지난 시간에는 소련과 동구권 기술자와 전문가들의 해외 파견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소련 일반사람들의 해외 여행은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이들도 자유롭게 관광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까?

란코프 교수: 대체로 말하면, 1920년대 해외여행, 친족방문, 개인관광 등이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1930년대 들어와 스탈린 정권이 엄격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개인여행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 중반 스탈린 사망 이후 소련에서 많이 바뀌었습니다. 물론 북조선은 이 변화를 수정주의라고 아주 열심히 비난했습니다. 소련에서 당시에 생긴 변화 가운데, 외부생활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대폭 많아졌습니다. 예를 들면 소련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자본주의 나라들의 인기영화를 많이 수입하고 상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미국 영화와 같은 자본주의 문화를 공산주의 종주국가인 소련 정부가 허용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소련 인민들에게 소비주의를 부추기고 사상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해 금지시켰어야 할 것 같은데요, 왜 소련 당국자들은 미국 영화 수입을 허락했을까요?

란코프: 소련당국자들은 이러한 걱정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소련이 수입한 영화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나쁜 점과 문제점을 비판하는 영화들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수입은 그저 선전 목적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소련은 북한보다 자유도 아주 많고 잘 살았던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북한만큼 인민들을 마구 통제, 감시하는 나라는 옛날에도 지금도 거의 없습니다. 당국자들은 인민들이 외국문화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1950년대 말부터 소련에서는 해외여행이 가능해졌습니다. 물론 갈 수 있는 나라는 자본주의나라보다는 압도적으로 사회주의 나라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친족방문과 개인여행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80%정도의 소련사람들은 단체여행으로 갔습니다.

전: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해외 여행을 한 사람들 보다는 그룹으로 여행 해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말씀 같은데요, 그렇다면 실제 인구 중에 여행을 갔다 온 사람은 얼마 정도였을까요?

란코프: 생각보다 많이 갔습니다. 1950년대말부터 80년대말까지, 즉 30년 간 개인이유 때문에 해외로 갔다 온 사람은 3000만명입니다. 그러나 이 통계는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첫째로 이 통계는 해외여행을 갔던 숫자보다는 소련인민 전체가 3000만 번의 여행을 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자주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한 번도 못 간 사람도 많습니다. 대체로 전체 인구의 5-10% 정도가 해외여행을 갔다 온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도 갈수록 해외로 가는 소련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1985년, 즉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소련 사회주의를 끝낼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시작하기 직전에 소련사람들이 해외로 갔다 온 숫자는 210만 건이었습니다.

전: 여행 대상국은 압도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이었다고 아까 말씀하셨는데요, 주로 어떤 나라였나요?

란코프: 통계를 보면, 여행목적지는 80% 이상이 사회주의 진영 나라들입니다. 특히 불가리아, 뽈스카, 동도이췰란드가 인기가 많았습니다. 자본주의 나라로 관광이나 여행을 가기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나라에서 친족이나 가족이 있다면 그들에게서 공식적인 초대장을 받고, 당국자들에게 출국허락을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출국허락은 나올 수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보통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당시의 규정은 소련인민은 개인여행으로 3년에 1번씩 자본주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당연히 출장으로 간다면 이러한 한도가 없었습니다.

전: 그렇다면 사회주의 국가에 여행할 때에도 그 같은 여행 제한 규정이 있었나요?

란코프: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다니는 기업소, 학교 등에서 단체여행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전: 단체여행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직되고 이뤄졌는지 궁금합니다.

란코프: 예를 들면 노동자가 1500명 다니는 기업소가 있습니다. 이 기업소는 군수공업이 아니어서 국가비밀이 거의 없고, 노동자 거의 모두 여행을 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장 자체는 중공업 공장이어서 지배인은 정치적 힘이 많습니다. 물론 이것은 1970년대 소련 이야기입니다. 이 공장은 예를 들면 내년에 뽈스카로 30명, 불가리아로 40명, 멕시코로 5명을 해외여행 보낼 수 있는 할당을 받았습니다. 직업동맹은 이것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알려줍니다. 물론 인기 있는 여행지라면 인맥이 있는 사람들이 가기 쉽지만, 일반 노동자들이 가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직업동맹을 통해서 외국여행을 신청하면, 몇 개월에서 1년까지 걸리는 출국절차를 밟아야 했습니다.

전: 그렇군요. 그러면 해외여행이 규제된 사람들도 있었습니까?

란코프: 대부분의 소련공민들은 해외로 갈 수가 있었습니다. 국가기밀을 알거나 취급하는 사람들은 해외로 출국하는 권리에 규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소련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같은 국가기밀 취급자에 대해서는 비슷한 제한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조심을 제대로 하지 않고, 공산주의 체제를 너무 많이 비난했던 사람이라면 거의 확실히 출국허락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출국 허락을 주는 사람들은 당 조직, 국가기관 그리고 보위부에 해당하는 KGB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출국 전에 교육을 받고 시험까지 치뤄야 했습니다.

전: 시험이라면 어떤 시험이었나요?

란코프: 소련 국내 및 국제 정치에 대한 질문입니다. 예를 들면 세계 주요 정치인들의 이름을 알아야 하고, 소련의 공산당 대회가 최근에 언제 열렸고 어떤 중요 결정이 있었는지, 그리고 수상과 같은 최고 간부의 이름도 알아야 했습니다.

전: 출국 전에 교육도 받아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무슨 특별 교육 같은 겁니까?

란코프: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내용이 어렵지 않습니다. 방문할 나라의 기본 내용을 소개했고, 술을 많이 마시지 말고, 질서를 잘 지키고, 그 나라 사람들과 잠자리를 가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단체여행으로 가면 담당자가 있었는데, 담당자는 보위원은 아니지만 당성이 높고, 경험이 많은 사람입니다.

전: 그렇군요. 북조선에서는 공식적으로 해외에 파견되거나 여행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국내에 남아 있는 가족을 사실상 인질로 삼아 여행자가 망명을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소련에서는 어땠나요?

란코프: 북한에서는 가끔 해외 친족방문이 가능하지만, 진짜 여행은 아직 불가능합니다. 인질은 복잡한 이야기입니다. 소련에서 해외 친족방문의 경우 부부와 자녀들이 같이 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해외에 있는 친구나 가족들이 사회주의 나라에서 살았을 때 그렇습니다. 하지만, 개인여행의 경우, 특히 자본주의 나라를 여행할 때에는 보통 배우자와 가족이 함께 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가족이 인질이라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전: 란코프 교수님, 오늘도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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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