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지도자들의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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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ING: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공산주의 역사이야기' 진행에 전수일입니다.

전수일: 교수님, 지난번 소련 고급간부들의 권력투쟁과 숙청 편에서는, 숙청을 당해 사라진 고급 간부들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그들의 가족들은 스딸린 사망 이후 감옥에서 풀려났고, 대체로 사회 진출에 성공했고, 후손들은 지금 잘 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해외로 간 사람들도 많다고
하셨는데요. 주요 인물 가족들의 동향이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란코프 교수: 우리 청취자 여러분들도 잘 아는 소련 고급간부들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스딸린입니다. 우리는 이전에 스딸린의 가족과 후손에 대해서 살펴본 적이 있어서 이번에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스딸린은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있었는데, 아들 한 명은 제2차대전에서 싸우다가 포로가 되었고 죽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공군 장성이 되었지만, 술을 너무 많이 했고 크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딸은 인도인과 결혼했고, 나중에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지금 스딸린의 손자들은 10명 이상인데요. 흥미롭게도 스딸린의 손자와 손녀 각 1명은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스딸린의 후손들은 매우 다양한 일을 하는데, 그러나 그들 거의 모두 잘 살고, 돈도 많고 힘도 많습니다. 유명한 공연감독도 있습니다. 장사를 잘 하는 사업가 몇 명도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스딸린의 후손 가운데 몇 명은 외국인과 결혼했습니다.

전: 스딸린에 이어서 소련 최고지도자가 된 사람은 흐루쇼프인데요. 그의 후손들은 어떻습니까?

란코프: 흐루쇼프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먼저 우리 청취자들도 잘 아는 스딸린시대 고급간부들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몰로토프와 미코얀입니다. 1956년 8월 사건 때문에 북한에서는 미코얀이 매우 나쁘게 알려져 있습니다. 몰로토프는 스딸린 시대 2번째나 3번째로 중요한 정치인으로 지냈습니다. 미코얀의 아들은 비행사였고, 공군 중장이 되었습니다. 미코얀의 손자는 군사학교를 다녔지만,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록 음악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스타스나민으로 알려진 미코얀의 손자는 구소련에서 서방 현대음악을 확산시키기 시작한 핵심인물입니다. 몰로토프의 경우 조금 다릅니다. 후손들은 다른 성씨를 쓰고 외교관으로 지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중에 한 명은 주 북한 소련대사관에서 오랫동안 지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북한측은 바로 그 사람이 몰로토프의 손자임을 잘 몰랐습니다. 흥미롭게도 지금 몰로토프의 손자는 러시아에서 힘이 매우 많은 정치인입니다. 그는 1980년대 모스크바국립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동안 당 간부로 일했는데, 소련이 무너진 다음에 정치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공산당세력이 아닙니다. 친서방 민주화 정책을 열심히 지지했습니다. 옐친대통령과 가까웠는데, 지금 푸틴과 보다 더 가깝게 협력하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 러시아 정치에서 비공식적인 힘이 아주 많은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당연히 국회의원입니다. 그는 기회를 쓸 줄 아는 사람이지만, 머리가 정말 대단히 좋은 사람입니다.

전: 그렇다면 흐루쇼프의 손자들은 어땠을까요?

란코프: 흐루쇼프는 스딸린처럼 아들 두 명과 딸 한 명이 있었습니다. 스딸린의 장남처럼 흐루쇼프의 장남도 제2차대전에서 비행사였는데, 전사했습니다. 그의 손자는 공군 비행사가 되었지만, 사고로 죽었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은 우주비행 전문가가 되고, 흐루쇼프의 실각 이후에도 소련 우주 비행선을 개발하는 책임 기술자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 우주비행 전문가는 아들 한 명과 딸 한 명이 있는데, 아들은 모스크바에서 기술자이며, 딸은 미국 뉴욕의 한 대학에서 국제관계 교수입니다. 흐루쇼프는 다른 손자 손녀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모스크바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전: 1964년, 흐루쇼프를 쫓아내고 소련 최고지도자가 된 브레즈네프의 가족들은 어땠을까요?

란코프: 브레즈네프는 아마 소련 지도자들 중에서 가족 문제가 제일 심각했던 사람입니다. 아들 한 명과 딸 한 명이 있었습니다. 딸 갈리나는 매우 이상하고 혼란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잘 배우지도 않았고, 남자들과 관계도 복잡했고, 강도사건과도 관계가 있었습니다. 갈리나는 술도 많이 마셨고 비교적 젊은 나이로 죽었습니다. 아들 유리는 아버지의 후원을 받아서 차관, 즉 부상까지 올라갔지만 1980년대 초 퇴직 당했고 조용히 살다가 늙은 나이로 얼마 전에 죽었습니다. 유리는 자녀들이 있는데, 유리의 아들은 사업을 하고 있지만 러시아공산당과 관계가 가깝습니다. 그렇지만 유리의 아들의 아들, 즉 브레즈네프의 증손자는 자본주의 본산인 영국으로 가서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런던에서 세계 자본주의에 열심히 복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일꾼입니다.

전: 교수님, 스탈린과 흐루쇼프의 자손들은 미국으로 갔고 브레즈네프의 증손자는 영국으로 갔습니다. 모두 다 서방 자본주의 종주국가들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들 할아버지들이 신봉하던 공산주의 사상을 위해 활동하지 않습니까?

란코프: 당연히 싸우지 않습니다. 그들 중에 공산주의를 믿는 사람이 아예 없습니다. 그들은 가족배경 때문에 좋은 교육을 받아서, 이민 가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전: 브레즈네프가 1982년 가을 사망하자 안드로포프가 서기장이 되었습니다. 안드로포프는 어떤 인물입니까?

란코프: 안드로프프는 두 번 결혼했습니다. 그는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 한 명과 딸 한 명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예외적으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도 문제가 많았고 절도행위까지 해서 감옥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정치범이 아닙니다. 그냥 형사범입니다. 석방된 다음에 일반노동자
기사로 일했습니다. 딸은 별 문제가 없었는데, 간부나 정치인이 되지 않았고 평생 동안 시골에서 의사로 살았습니다. 노동자가 된 아들은 결혼했고 딸이 1명입니다. 그의 딸은 지금 모스크바에서 음악 선생으로 지냅니다. 의사 딸도 아들이 둘 있었는데, 그들은 할아버지처럼 보위원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많이 성공하지 못했는데, 얼마 전에 중급 보위원으로 퇴직했습니다. 둘 다 지금 시골에서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전: 안드로포프는 결혼을 두 번 했다고 하셨는데요, 두 번째 부인 사이에 태어난 자녀도 있었습니까?

란코프: 네 그렇습니다. 둘째 부인하고도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외교관이 되고 대사까지 되었습니다. 딸은 그냥 출판사 직원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딸의 자녀들, 즉 안드로프프의 손자손녀 가운데 두 명은 미국으로 갔습니다. 무용가로 활동하다가 얼마전에 죽었습니다. 손자는 미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미국과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말하면 안드로포프의 손주들은 모두 보통사람들입니다. 지금 안드로프프의 친손자 몇 명이 있는데, 그들 가운데 미국에서 계속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러시아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 란코프 교수님, 오늘도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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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진행에 전수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