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진행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기자: 란코프 교수님, 지난 시간에 공산주의 국가에서의 비리를 살펴보았는데요. 원래 돈이 별 가치가 없었고 주로 물물교환 형태의 부정부패가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돈의 힘이 커지면서 뇌물을 주고받는 부정부패가 늘어났는데요. 소련 말기에는 어땠나요?
란코프 교수: 소련 말기는 소련과 동유럽에서 매우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또 이 시대를 다루는 북한 소설이나 자료를 볼 때는 웃음을 참기 힘듭니다. 북한 소설은 공산주의체제를 그리워하면 눈물을 흘리는 간부들을 열심히 묘사하고 있는데, 당연히 헛소리입니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공산당 간부들 중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수백 명 있었을지도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특히 청년동맹 간부들 즉 젊은 간부들은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에 새로운 사회에서 성공하려 미친듯이 노력하기 시작하고, 거의 불가피하게 성공을 위해 많은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자: 그렇다면 승진은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되었나요?
란코프 교수 : 물론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도 소련과 다른 공산주의국가의 간부들 중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들조차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지지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들은 시장경제에 대해 희망이 아주 많았습니다. 당시에 대부분의 간부는 승진에 관해서 관심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1990년대 초 간부들은 승진한다고 해도 얻을 게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중급간부라고 해도 국가가 주는 생활비로는 살 수 없었습니다. 고급간부라고 해도 간단한 음식을 살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 때문에 거의 모든 간부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부정부패를 저질렀습니다.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습니다.
기자: 교수님, 그렇다면 90년대 초 간부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부정부패를 저질렀다고 할 수 있을까요?
란코프 교수: 그런 사람들이 없진 않았지만, 부자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당시에 부정부패를 많이 초래한 것은 국가재산의 매각입니다. 당시 소련과 동유럽에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만들기 위해 국가재산을 개인에게 매각하고 있었습니다.
기자 : 말씀하신 국가재산의 판매 대상은 누구였나요? 소련시대 장사를 잘했던 돈주들이 샀을까요? 아니면 외국 사람들이었나요?
란코프 교수: 1990년대 초 소련에서 외국 사람들은 국가자산을 구매할 자격이 없었습니다.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돈을 많이 가지고 와서 투자할 경우에 국가자산을 사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매우 예외적인 일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소련시대 장사꾼과 돈주들도 공산주의가 무너진 다음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소련에서도 1970-80년대 사이에는 물밑에서 개인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했습니다. 오늘날 북한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개인경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이 소련의 돈주들은 공산주의가 무너진 다음에 거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속과 금지가 많았던 소련사회에서는 장사를 잘했지만, 금지와 통제, 그리고 단속이 없어지자마자 그들의 경험과 솜씨는 아무 가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러시아 부자들 가운데 소련 말기 돈주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몇 퍼센트에 불과합니다.
기자: 그렇다면 대부분의 부자들은 어디 출신이었을지 궁금한데요.
란코프 교수: 4분의 3 정도가 공산당 간부, 보위원 그리고 특히 경제일꾼 출신들입니다. 매우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말씀드리자면, 어느 공장을 관리했던 한 지배인은 이 공장을 국가에서 어떤 방법으로 구입하고, 자신의 개인 소유로 만들고 사장이 됩니다. 물론 당시에 국가 소유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법칙과 규칙을 위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러한 욕심을 갖게 된 지배인은 제일 먼저 그를 감시하는 고급관리들을 찾아가 뇌물을 주고, 그들의 묵인을 받아 냅니다. 물론 뇌물을 받은 감시자들도 지배인들도 모두 다 소련시대 공산당 간부 출신들인데 아마 같이 당중앙학교를 다닌 시절부터 서로 잘 아는 사이입니다. 단순히 뇌물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고급간부들은 새로 생긴 공장의 지분을 받거나, 이익의 일부를 취하는 제안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보니까, 구소련에서 1990년대는 국가재산의 절도 시대입니다. 이것은 당연히 비도덕적인 행위인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단순히 나쁜 일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기자: 왜 그럴까요? 1990년대 구소련 간부들은 파렴치한 도둑들이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란코프 교수: 물론 저는 당시에도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불법적으로 얻은 국가재산, 쉽게 말하면 훔친 국가재산을 잘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러시아는 세계의 다른 나라들처럼 신형 코로나 때문에도, 석유가격 폭락 위기 때문에도 문제가 많은데요. 하지만 대체로 말하면 개인소유가 된 공장은 2000년 이후에 소련시대보다 훨씬 더 품질이 좋고 효율성이 훨씬 더 높아졌습니다. 공산당 지배인이 그럭저럭 관리했던 공장은, 지배인이 사장이 된 다음에 훨씬 효율적인 공장이 된 사례가 없지 않다는 겁니다.
기자: 1990년대 소련에서 공산주의가 무너진 다음에, 새로운 부자들 가운데 4분의 3 정도가 공산당 간부, 보위원 그리고 경제일꾼들 출신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럼 나머지 4분의 1은 누구였나요?
란코프 교수: 나머지 사람들에 관한 얘기는 조금 재미있는데요. 그들은 일찍이 1980년대 말부터 개인 장사를 시작해서 돈을 잘 벌기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장사를 잘할 줄 아는 평백성 출신들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 중에 진짜 평백성 출신은 거의 없었는데요. 간부가 아니어도 지식인 출신 혹은 교육수준이 높고 사회관계가 많은 계층 출신입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은 소련시대 공산당 간부나 보위원이 아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간부출신 사업가들이나, 지식인이나 평백성 출신 사업가들 사이에는 별 대립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출신성분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자 : 앞서 교수님께서는 소련말기부터 부정부패가 아주 심해졌다고 하셨는데요.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출신 국가들은 부정부패를 막으려 아무런 조취도 취하지 않았었나요?
란코프 교수: 구소련은 15개 독립국으로 분리되었는데, 국가별로 상황이 매우 달랐습니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설명드리자면, 1990년대 말 들어와 부정부패가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본 이유는 어려운 과도기가 끝났고,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세금을 받고, 공무원들 즉, 북한식으로 말하면 간부들은 이제 국가가 주는 돈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뇌물을 많이 받으면 부자가 될 수도 있었는데요. 뇌물을 받길 거부한 청렴한 관리들도 어느 정도는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중급관리나 하급관리들의 비리가 더 빨리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대체로 오늘날 러시아에서의 부정부패 수준은 1970-80년대초 소련의 부정부패 수준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 네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한국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오늘 순서 여기까지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