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공산주의 역사 이야기, 기대와 좌절.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합니다.
특히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는데요.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합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러시아 출신 안드레이 란코프 (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와 함께 공산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미래도 조명해봅니다. 진행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5월 1일은 국제 노동절이었습니다. 공산주의 운동에서 원래 국제주의 정신이 많았는데요. 그 때문에 얼마전까지 북한 노동신문과 같은 당 기관지에서 전 세계 노동자들은 단결하라는 구호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공산주의 세력에게 국제주의 정신은 왜 이렇게 중요했을까요?
란코프 교수: 공산주의는 1840년대, 즉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에 탄생한 정치사상과 철학입니다. 당시에 공산주의 사상가들은 민족주의를 없애버려야 하는 잔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공산주의 사상가들은 혁명이 일어날 때 무조건 세계혁명을 목격하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들에게 애국정신은 무엇일까요? 바로 착취계급, 즉, 지주와 자본가들이 노동자와 농민들을 속이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맑스는 당시에 노동계급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노동계급에게는 조국이 없다. 당시에 공산주의자라면 자기 조국에 대한 충성은 바로 반동적인 사상, 꼭 없애버려야 하는 옛날 사상이라고 생각해야 했습니다.
기자: 교수님, 정말로 공산주의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는 건가요?
란코프 교수: 네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국가를 장악할 때까지, 국가를 너무 싫어했습니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전까지 전 세계 공산주의자들에게 국가는 바로 적이었습니다. 제1차 대전 당시에 프랑스 공산주의자들은 무기공장 노동자들에게 무기를 만들지 말라는 지시까지 했습니다. 당시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의식이 높은 노동자들은 무기생산이나 수송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전쟁의 목적은 타국 노동자들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맑스와 공산주의자들에겐 계급과 사상에 대한 충성만이 의미가 있었고, 조국에 대한 충성은 상상할 수도 없는 만행이었습니다.
기자: 그렇다면 왜 공산주의자들은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생각이 바뀌었나요?
란코프 교수: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야당세력은, 그러니깐 정부를 반대하는 세력은 권력을 잡으면 가치관도, 세계에 대한 의식도, 역사관도 하루아침에 바꾸고는 합니다. 원래 자신들이 싫어하고 욕했던 것을 많이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1917년에 제정 러시아의 권력을 잡은 레닌과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은 약 10-15년 동안 여전히 국제주의를 진짜로 믿었고,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열심히 비판했습니다. 당시에 러시아 공산당은 국제 공산당 운동을 후원하기 위해서 국가예산에서 막대한 돈을 투자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학교 교육에서도 애국주의정신을 많이 없애 버렸고, 러시아 역사는 낙후한 반동적 나라의 과거역사일 뿐이라고 폄하했습니다. 당시에 소련의 어린이들은 자기 나라의 과거를 자랑스러운 것보다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부추기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시에 소련공산당은 소련 국가가 전세계 혁명을 위한 일종의 기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몇 년 이내에 세계혁명이 가능할 줄 알았습니다.
기자: 하지만 세계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도이칠란트(독일)에서는 극우익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는데요. 소련공산당은 어떤 태도를 취했었나요?
란코프 교수: 1930년대 들어와 상황이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제일 중요한 이유는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는 정치적으로 아주 가치가 높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인민들은 자기 민족의 우월성, 위대성, 자기 민족 제일주의를 매우 쉽게 믿을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믿는다면 전쟁 때 더 잘 싸우고, 평화의 시기에는 더 열심히 일한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정치인들이 잘고 있던 것인데, 1930년대 초 소련공산당 간부들도 그 사실을 잘 발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련공산당 간부들의 구성도 바뀌었습니다. 1917년 혁명을 주도하고 1920-30년대에 개싸움을 했던 스탈린은 유일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탈린을 지지한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맑스나 앵겔스를 열심히 읽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추상적인 세계혁명보다 자기 나라 즉, 러시아나 소련에 대한 충성과 사랑을 느꼈습니다. 맑스의 예언과 달리 그들에게 조국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기자: 소련공산당은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꾸었는데요. 열심히 비난하던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이제 어떻게 다루기 시작했을까요?
란코프 교수: 당연히 소련의 공식입장은 1991년 붕괴 때까지 많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민족주의를 비난하던 맑스와 옛날 노작을 그대로 배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선전과 사상 뿐입니다. 실제 정치에서 1930년대 소련은 세계혁명의 이익보다 자국의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를 조용하게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자: 교수님, 보통 사람들은 당의 입장이 바뀐 것에 대해 모순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란코프 교수: 물론 느꼈습니다. 하지만 소련공산당은 이것을 설명하는 그럴듯한 논리를 개발했습니다. 그들에게 자본주의국가에서 노동자 농민은 이런 국가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새로 생긴 사회주의 국가는 성격이 다릅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노동자, 농민의 국가이니까 인민들이 자연스럽게 이 국가에 충성을 바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탈린은 이제 노동계급을 위한 국가가 생겼으며 그 국가는 바로 소련이라고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기자: 소련공산당은 소련 인민들은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가지는 것은 좋지만 외국 사람들이 자기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는 주장 같은데요.
란코프 교수: 1970년대 소련의 백과사전을 보면 매우 흥미로운 설명이 있었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오늘날 국제주의자들의 기본 의무는 혁명의 선봉자인 소련 국가를 보호하고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소련은 혁명을 체제화한 국가이기 때문에 소련를 도와주는 것은 바로 혁명을 돕는 것이며, 소련을 반대하는 것은 반동 행동이라느 주장입니다. 소련은 공산주의 세계혁명을 주도하는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30년대 초부터 소련은 외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자기 나라 정부를 반대하고 소련을 도와야 한다고 시끄럽게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갈수록 이러한 주장이 그냥 듣기만 좋은 소리라는 사실이 명백해졌습니다. 그래도 1991년 소련이 붕괴할 때까지 소련 사상을 가졌던 일꾼들은 국제주의를 찬양하는 동시에 소련의 애국자들도 많이 찬양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정책을 보면 벌써 1930년대부터 소련은 자신의 국가이익 외에 다른 것은 거의 모르는 그냥 보통 국가가 되어버렸습니다.
기자: 그래도 1945년 이후 소련은 유일한 공산국가가 아니었지 않습니까? 다른 공산국가들은 어땠을까요?
란코프 교수: 물론 당시에 소련의 주장은 다른 공산주의국가들이 소련의 이익을 자신들의 이익처럼 여길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공산주의국가에서는 1930년대의 소련과 매우 비슷하게 공산주의사상이 국가화, 민족화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소련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자: 네 란코프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란코프 한국 국민대 교수와 함께 알아본 공산주의 역사 , 오늘 순서 여기까지입니다 .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