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로 주목 받는 미술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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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열린 문화여행 이 시간 진행에 이장균입니다.

그 동안 우리의 대중문화는 물론 전통문화까지 세계로 뻗어 나가는 다양한 모습을 전해 드렸습니다만 최근 우리의 미술 쪽도 한류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분야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오늘 열린 문화여행을 통해 자세히 알아 봅니다. 문화평론가이신 동아방송예술대 김헌식 교수님 모셨습니다.

한국 사극의 궁중장식화 등으로 한국 민화에 대한 관심 커져

한국 텔레비전 사극 '철인왕후'에 궁중 장식화로 민화가 대거 등장하며 우리 민화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민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드라마 한류를 타고 민화의 감성과 미학이 세계를 넘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위치한 작은 나라 조지아(구 그루지야)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의 한 갤러리에서 2년전 한국 민화 전시회가 열린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서 찾은 민화 관계자들도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민화 전시회에 매일 3000명에 육박하는 현지인들이 몰려들며 문전성시를 이룬 것이다. 갤러리의 페이스북 홈페이지는 한꺼번에 방문한 수천명의 네티즌 때문에 일시적으로 접속이 중단되기도 했다.

관람객들은 민화의 독특한 제작 기법을 물으며 분채나 봉채 등의 물감에 호기심을 보였고, 봉황이나 토끼, 까치호랑이 등 그림 속 동물들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또 그림 값이 얼마에 책정돼 있는지 묻느라 바빴다. 판매를 위한 전시가 아니라는 설명에 안타까워하며 발길을 돌리는 컬렉터도 종종 눈에 띄었다.

특히 국내 화단에서의 민화 전시는 중장년층이 즐겨 찾는 반면에 이날 카미오 갤러리를 찾은 관람객은 대부분 20대로 30, 40대가 일부 섞여 있는 정도였다. 이에 대해 "방탄소년단(BTS) 등이 촉발한 한류 물결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것과도 무관치 않은 것 같다"고 현지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북한 미술에 익숙하던 구 소련권 조지아, 새로 접하는 남한 민화에 매료

당시 현지의 한 미술애호가는 십장생도나 일월오봉도, 모란도 등의 민화 작품 앞에서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아 일본 그림도 많이 봤는데 디테일한 기법에 화사한 색상의 민화에서는 일본 그림에서 못 느낀 동양적인 신비가 넘치는 것 같다"고 극찬했다.

조지아국립대에 재학 중인 타무나(Tamuna) 씨의 경우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아 일본 그림도 많이 봤는데 디테일한 기법에 화사한 색상의 민화에서는 일본 그림에서 못 느낀 동양적인 신비가 넘치는 것 같다"며 "BTS 등 한국의 팝가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한 이후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주변에서 더 커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민화는 화려한 안료로 그린 채색화로서 그 어떤 그림보다도 분명하게 한국적인 변별력을 지닌 그림" "유럽인들은 원근감이 무시된 민화의 파격적인 화면 구성과 원색의 강렬한 색채감, 해학적인 내용을 특히 높이 사고 있다"고

조각가이기도 한 카미오 갤러리의 다르자니아(Darjania) 대표는 "오랫동안 조지아가 구소련권에 속해 북한 작품은 많이 접했는데 한국 작품은 미술애호가들이 처음 보는 것이어서 더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선백자를 화폭에 담은 달항아리, 세계인들 이목 사로 잡아

조선백자인 '달항아리'도 세계인을 매료시켰다. 달항아리 작가'로 불리는 최영욱(54)은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세를 누린다. 마이크로 소프트(MS)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를 비롯해 스페인과 룩셈부르크 왕실, 필라델피아 뮤지엄 등 세계 유수의 기업(인)과 기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타이완 등에서 30여 회 이상 개인전을 열었고 해외 유명 아트페어에도 지속적으로 참가할 만큼 높은 지명도를 자랑한다.

빌게이츠재단에서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 그림을 3점이나 구매한 것은 유명하다. 지난해에는 호주 빅토리아국립미술관이 전시를 위해 18세기 달항아리를 구매해 문화재청이 영구 반출을 허가했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흐뭇한 일이다.

달항아리는 하얀 바탕과 둥근 형태가 보름달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원이 아닌 달항아리의 둥근 선은 둥글고 넉넉한 맛을 지닌 한국미의 특질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현대미술의 다양한 장르에서 달항아리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에는 우리 인생이 담겨 있어

최 작가는 달항아리를 캔버스에 펼쳐낸다. 독창적인 화법으로 섬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자신만의 의미를 담아 새로운 시각으로 달항아리를 바라보게 한다.

최 작가는 항아리가 유약을 바른 후 가마 속에서 구워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균열을 그려낸다. 불교에서 '업보'를 뜻하는 Karma를 제목으로 사용한 것처럼 작가는 도자기의 균열을 하나하나 그리면서 자신의 얘기를 담아내고 그 과정에서 보편적 삶의 모습을 발견한다.

최 작가는 "달항아리의 균열은 만났다 헤어지고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는 우리의 인생길"이라며 "작품을 만들면서 삶은 우리가 의도한 데로만 가지 않고 어떤 운명 같은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고 밝혔다

세계 미술애호가들, 독특한 한국적 미감이 담긴 단색화에 큰 관심

아직도 단색화의 개념·용어는 미술사적으로도 정확한 정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용어만 해도 '단색화' '단색조 회화' '모노크롬' '한국적 모노크롬' 등 여러가지다.

1970년대부터 나타난 한국 현대미술의 한 경향으로 불리는 단색화는 단색으로 화면을 채우고, 작가의 반복적 행위, 시간의 축적, 정신성, 한국적 미감 등이 특징으로 언급된다.

한국 현대미술의 한 사조인 단색화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서양 모노크롬의 아류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의 유명 미술전에서 누구나 'Dansaekhwa(단색화)'라 부르는 고유명사가 됐다.

반복과 수행의 정신을 드러내는 단색화는 2014년부터 국제갤러리 등이 집중 마케팅을 벌였고, 경매 시장에서 잇따라 거액에 낙찰되며 열풍이 불었다. 박서보, 정상화 등 단색화가의 작품은 세계적인 경매에서 고가에 팔린다.

실제 해외 경매 시장에서는 단색화가 상한가를 치고 있다. 홍콩경매에서 단색화의 인기를 업고 90%가 넘는 낙찰률을 기록했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 '단색화' 집중 조명

미국 주간지 뉴요커는 기획기사를 통해 단색화를 집중 조명했다. 크리스티 뉴욕전의 개막에 맞춰 쓴 '세계 미술계에서 우뚝 선 한국 작가들'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다. 이 매체는 1970년대 단색화를 이끈 주역들이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개별 작가들의 작품 가격까지 거론하며 세계무대에서의 인기를 전했다.

이 매체는 단색화 인기가 2014년 서울의 국제갤러리 및 로스앤젤레스 블룸앤포 전시를 통해 시작됐다고 진단하는데 이어 "원로작가들의 특정한 미술사조가 이렇게 큰 관심을 받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단색화 거장 권영우, 박서보, 하종현 작품 영구 소장

퐁피두 센터는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프랑스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며 시각예술, 사진, 뉴미디어, 영화,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 작품 12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소장품은 4·5층 상설 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선보인다.

국제갤러리는 지난 5월 "퐁피두센터가 권영우의 채색 한지 회화 2점, 박서보의 색채묘법 1점, 하종현의 접합 1점 등 총 4점을 소장하게 됐다"고 전했다.

퐁피두센터의 단색화 작품 소장은 국제 무대에서 한국미술의 위상을 보여준다. 동시에 해외 미술사적 맥락 속에서 단색화의 학문적 가치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준다.

한지에 물감 스며 드는 기법으로 독특한 표현 인정받은 권영우 작가

채색 한지 회화 2점 '무제'(1984)와 '무제'(1986)는 화면 전체를 일정하게 반복적인 패턴으로 채워가듯 구멍을 뚫고 선을 만들어 염료를 흘린 1980년대 권영우 작가의 대표작이다. 먹으로 채색된 작품에는 종이의 찢긴 부분으로 물감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권영우는 초기에 한국화 기본 재료인 수묵으로 구상적 추상의 표현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하다가 1962년을 전후하여 필묵을 버리고 한지를 작품제작의 본격적인 매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기본 행위를 배제하는 대신 주로 손톱을 이용해 종이를 자르고, 찢고, 뚫고, 붙이는 행위 등을 통해 반복적인 행위와 종이의 물질성과 촉각성을 작업의 중심에 놓았다.

여러 겹으로 겹쳐진 한지의 섬세한 재질감을 강조하면서 작가는 종이 위에 만들어진 입체감과 리듬으로 조형성을 구성했는데, 이는 동양화의 매체를 재조명해 그 영역을 초월한 새로운 문법으로 평가된다. 권영우의 작품세계는 현재 도쿄 블럼앤포(Blum & Poe) 갤러리 개인전 'Kwon Young-woo'(5월 22일까지)를 통해서 회자되고 있으며, 올 연말 국제갤러리 서울점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비 미술적인 소재로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한 하종현 작가

하종현 작가는 올이 굵은 마포 뒷면에 두터운 물감을 바르면서 앞면으로 배어 나온 걸쭉한 물감 알갱이들은 나이프나 붓, 나무 주걱과 같은 도구를 사용해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하종현은 전위 미술가 그룹인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결성한 1969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석고, 신문지, 각목, 로프, 나무상자 등 오브제를 중심으로 한 '물성 탐구의 기간'을 거쳤다.

이 시기에 마대자루를 비롯해 밀가루, 신문, 용수철, 철조망 등 비미술적이고 비전통적 매체로 화폭의 양면을 모두 활용하는 실험적인 작업방식이 시도됐다. 하종현은 "무엇이 그려지고 있는지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묘사하는 행위나 대상보다 매체의 물리적 특성을 강조했다.

단색화 거장 박서보,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집중 조명

최근 미국의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한국 미술 거장이 그의 유산을 계획하다'(A Towering Figure in South Korean Art Plans His Legacy)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묘법'(Écriture) 연작 및 작품 세계에 대해 상세히 소개했다. 또한 딸이 집필한 박서보의 자서전, 최근 별세한 김창열 화가와의 인연 등을 폭넓게 다뤘다.

박서보는 1950년대 문화적 불모지였던 한국미술에 추상미술을 소개했다. 1957년 한국 엥포르멜 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현대미술가협회의 주요 멤버로 활동한 뒤, 1961년 세계청년화가 파리대회에 참가해 추상표현주의 미학을 바탕으로 한 '원형질' 시리즈를 전개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유전질', '허상' 연작을 발표하며 보다 발전된 추상표현주의를 선보인 데 이어 1970년대 이후 '묘법'을 통해 새로운 전환을 시도했다.

작가 스스로가 '손의 여행'으로 일컫는 '묘법'은 그의 회화의 정점을 이룬다는 평을 받으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오고 있다.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후기묘법'에서는 종이 대신 한지를 사용한 화면 안에 반복적인 선 긋는 행위를 통해 고도의 절제된 세계를 표현한다.

아시아 미술 중심이 한국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도

올해 상반기 미술품 경매 시장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매출을 올리며 호황을 알렸다. 한국의 경매시장인 서울옥션과 K옥션의 경우 상반기 낙찰총액이 지난해 연간총액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최근 이러한 역대급 경매 실적을 보여주면서 아시아에서 미술의 중심을 지키던 홍콩의 세가 약해지면서 한국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런 경향은 코로나19 시기와 맞물려 미술품이 부를 쌓을 수 있는 재테크 수단으로 부각된 점과 밀레니얼 세대, 즉 20-30대 젊은 세대의 미술계 유입, 경매장에 직접 가지 않고 컴퓨터 등 온라인을 통해한 경매가 활성화된 점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어느 때보다 호황기를 맞은 미술시장이 강세라는 게 재확인된 것이다. 따라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의 경매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한국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미술품시장을 초호황으로 이끄는 젊은 세대

20~40대 젊은 컬렉터, 미술품수집가들의 미술품 시장 참여 열풍으로 올해 상반기 미술 경매 매출액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올해 1~6월 미술 경매 거래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나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12월 전체 거래액을 넘어서는 규모다.

한국의 단색화, 1세대 '전기 단색화' 중심에서 벗어나야

전문가들은 "일부 화랑에서 1세대 유명작가들의 단색화를 홍보 전략으로 남용한 나머지 1970년대 1세대 작가에만 주목이 쏠리고 2000년대 이후 작가는 배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1세대 '전기 단색화' 에서 이제 '후기 단색화' 작가들이 부각돼야 한다는 것이다. 단색화 거장들의 제자뻘인 이배·김택상 등 50~60대 작가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뒷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한국의 후기 단색화' 전시를 연 리안갤러리 성신영 큐레이터는 "단색화 작가군을 다양화하면서 이론적인 틀을 정립해 단색화를 한국 대표 예술 운동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기자 이장균,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