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열린 문화여행 이 시간 진행에 이장균입니다.
음악이면 음악, 영화면 영화, 거기에 한국의 음식까지 최근 이른바 한류의 열풍이 거셉니다.
세계에는 오랜 전통을 지닌 문화강대국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국의 대중문화, 혹은 전통문화가 전 세계로 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게 참 자랑스럽고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화, 드라마, 또 음악이 전 세계 곳곳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가운데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그 열기가 뜨거운데요, 오늘 열린 문화여행에서는 동남아에서 어느 정도 우리 한류가 인기를 끌고 있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문화평론가이신 동아방송예술대 김헌식 교수님 모셨습니다.
과거 동남아 문화 패권국 일본, 한류에 위기감
지난 달 15일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15개국이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에 가입하면서 세계 최대 FTA가 탄생하게 됐다. 이번 체결로 한국 정부가 중점 추진해 온 '신남방 정책'에도 한층 탄력이 붙게 됨에 따라 동남아 시장에서 한류 확산에 거는 기대도 커졌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인식된 경향이 있지만, 동남아 시장은 한국에 있어 일본에 버금가는 중요한 시장이다. 특히 한일 양국은 그간 드라마, 음악, 영화 등 대중문화 시장을 중심으로 동남아에서 경합해 왔다.
사실, 진출 시점 면에서도 수십 년 이상 앞섰지만 일본이 아세안에서 갖는 영향력은 한국에는 소위 '넘사벽'이었다. 인도네시아,태국,미얀마 등 동남아 지역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막대해 ODA(공적 자금 원조) 등 정치·경제적 영향력과 별개로, 일본은 문화적 패권을 쥔 나라로 인식됐다.
문체부 산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내놓은 '2020 해외한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동남아 4개국 국민이 꼽은 '자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에서 일본 드라마, 예능, 영화가 차지한 비율은 미국, 한국은 물론 중국 콘텐츠보다도 낮았다.
동남아에서 처음 한류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여 년 전 일이지만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일본 내에서 의식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지난 달 13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발간하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태국에서 한일 양국 대중문화의 위상을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태국에서 한류 영향력은 상상 이상으로 "일본에서 더 위기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는데, 해당 기사는 1000개 넘는 댓글이 달리는 등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코노미스트는 "태국에서 애니메이션 이외에 일본 콘텐츠가 누리던 인기는 한류에 잠식된 지 오래"라며 "일본 콘텐츠가 세계적 인기라는 건 일본인들만의 착각"이라고 주장했다.
대중문화 시장 규모 크고, 성장세도 가장 가파른 인도네시아에서의 한류바람 거세
일본의 식민지배 영향 때문인지 소위 '일류'(일본 대중문화 유행 현상)가 동남아 에서도 가장 오래 지속된 곳이며 베트남, 태국 등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 한류가 늦게 전파된 곳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에서 일류는 1980년대 '오싱' 이란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면서 시작돼 2000년대까지 계속됐다. 패션도 일본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이 1990년대부터 같은 시기까지 젊은 층 사이에 유행했고, J팝은 2010년대까지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
한편 인도네시아에서 한류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02년 무렵으로, 드라마 '가을 동화'와 '겨울 연가'가 연이어 큰 인기를 얻고부터다. 자체 제작보다 한국 드라마를 수입하는 편이 비용은 적게 들고 시청률 효과도 보자 현지 방송국들이 한국 드라마를 대량 방영하면서 한류는 점차 확산됐다.
초기 드라마가 중심이었던 인도네시아 내 한류도 지금은 K팝으로 중심이 옮겨간 상태. 그리고 동남아 주요 4개국(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 현재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 예능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한류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에서 빠르게 확산된 요인 중 하나는 일본에 비해 느슨한 저작권 검열과 단속. 일본에서는 저작권이 최근에야 일원화돼 드라마 한 편을 수출하려 해도 원작자, 각본, 출연자, 음향 등 모든 권리자들에게 승인을 받아야 했다.
이렇다 보니 현지에서 한국에 비해 일본 콘텐츠는 접근도가 떨어지거나 합법적으로 구하더라도 철 지난 것만 손에 넣게 되니 찾는 이들도 점차 줄어들게 된 것. 해적판 등 영상 제작물의 불법 유통은 큰 문제지만, 역설적으로 현지인들로 하여금 접근을 쉽게 해 한류의 빠른 전파로 이어진 면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내수에만 몰두한 일본, 경쟁력 상실이 주요 원인
동남아 시장에서 일본이 추락하고 있는 이유 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건 역시 일본 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꺼리고 내수에만 몰두하다 경쟁력을 상실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비록 2014년 전후 중국에 역전되긴 했지만, 일본의 콘텐츠 시장 규모는 여전히 세계 3위로 한국의 3배에 달한다. 내수 시장이 크다 보니 가전, IT처럼 콘텐츠 산업에 있어서도 일본 기업들은 국내 수요에만 집중해도 충분히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특히 미주, 유럽도 아닌 동남아는 일본 기업들로선 수익성에 대한 위험부담으로 진출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는 시장이었다.
큰 내수시장이라는 유리한 조건이 되레 일본 연예 기업들의 해외 진출 저해 요인이 된 것이다. 이는 일본 영화와 가전 산업 등에서 발견되는 '갈라파고스화', 즉 상품에 있어 자기들만의 표준에 안주하다 세계 트렌드와는 동 떨어지는 경향과도 일맥상통한다.
또한 일본 방송산업은 수익 구조상 제작물의 최초 방송만으로도 제작비 회수는 물론 수익도 낼 수 있는 규모의 안정된 광고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굳이 국외 판매 등 2차 방영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작품당 한국에 비해 10배나 되는 광고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수익 회수가 우선시되고, 국외 판매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이에 반해 한국의 작은 내수시장은 한국 기업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더 큰 시장의 문턱을 넘게 하는 촉매제가 됐다. 최근 만들어지는 한국 방송 콘텐츠들 상당수가 처음부터 수출이나 외국 시청자들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며, 부족한 제작비를 수출을 통해 조달하기도 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2018년 기준 한국 드라마 수출액은 연 2억4190만달러로, 일본 드라마 수출액(3148만달러) 대비 8배에 달한다
동남아 한류 바람은 현지인 멤버' '적극적 투자' 등 한류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
태국에서 K팝 인기는 2010년대에 접어들며 크게 고조됐다. K팝 가수들의 역량과 콘텐츠 수준도 요인으로 꼽히지만, 한국 기획사들의 전략적이고 적극적인 시장 공략도 주효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K팝그룹의 현지 국적 멤버들이 아세안인들로 하여금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2PM'의 닉쿤을 시작으로 '블랙핑크'의 리사 등 태국인 멤버들은 고국에서 최고 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
주목해야 하는 건 이들이 태국인이지만 태국뿐 아니라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등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적도 다르고 인접국끼리 라이벌 의식도 존재하지만, 리사 라는 자신들과 같은 "아세안인" 이 K팝 무대에서 활약한다는 데서 오는 동질감과 뿌듯함이 팬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태국뿐 아니라 베트남에서는 전원 현지 국적 멤버로 구성된 K팝 그룹을 만드는 등 한국 기획사들의 동남아 공략 행보는 매우 적극적이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드라마 제작비가 한국 드라마보다 평균적으로 높게 책정됐다지만 지금은 반대다. 이 같은 투자액 차이는 곧 작품의 퀄리티 차이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은 한국 소설 '82년생 김지영'
김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지난해 고작 34일 팔린 실적만으로 '2019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했다. 공식 집계상 현지에서 출판되는 책이 매년 3만권, 수입도서가 10%인 현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적이다.
'82년생 김지영'은 동명 영화의 현지 개봉을 이틀 앞둔 작년 11월 18일 출간됐다. 영화는 '기생충'(재개봉 포함 52만여명)에 이어 지난해 한국 영화 관람 2위(7만여명)를 기록했다. 회사원 치트라(24)씨는 "대사 하나하나에 감정 이입된 여성 관객 때문에 영화관이 울음바다로 변했다"며 "감동을 연장하기 위해 책을 사 본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무슬림 국가라 성 평등을 강조한 작품에 반감을 가질법한데 현실은 정반대다. "남녀 대부분 공감하는" 분위기다. 최근 현지 서점들에서도 김지영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여전히 김지영이 자리잡고 있다.
'82년생 김지영' 외에서 한국의 다양한 작품들 인기몰이
'이달의 베스트셀러10선'에도 한국 도서 번역본인 오수향 작가의 '1등의 대화습관'(2위),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10위) 두 권이 올랐다다. '한국 책 번역 바람'이라고 일컬을 만큼 K-도서가 K-드라마, K-팝과 더불어 당당히 인도네시아 한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최대 종합미디어그룹으로 현지 도서시장 점유율 61%를 차지하는 콤파스그라메디아 소속 두 개 출판사는 "한국 도서 인기에 맞춰 지속적으로 번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엔 현지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 등장한 동화책 판권을 놓고 GPU 등 인도네시아 출판사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한국 책은 2000년대 초반 인도네시아어로 번역됐다. 주로 만화였으나 그마저 일본 책에 밀렸다. 판도를 바꾼 건 아동용 과학책이다. 2009년 번역된 'WHY(와이)' 시리즈는 지난해까지 200만부 넘게 팔리며 인도네시아 최고의 과학만화 반열에 올랐다. '쿠키런 과학상식' 시리즈 등 유사 도서 번역도 잇따랐다.
한국 소설은 2011년 번역된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가 지평을 넓혔다. '엄마를 부탁해'는 GPU가 처음 번역 출간한 한국 소설로 김지영에 이어 한국 소설 역대 판매 순위 2위에 올라있다. 3위는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이다. 아나스타시아 무스티카 GPU 매니저는 "가족을 중시하는 동양 문화의 유사성, 미디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한류의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한국 책 번역, 기존 한류에 영향 받아 동반 성장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아이돌 스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소개한 에세이나 시집, 드라마로 만들어진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책들이 번역되는 식이다. GPU는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한국 소설의 독자들이 늘면서 자기계발서, 위인전, 에세이, 시집, 심리서적 등 번역 분야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고 했다.
대학원생 무티아라 하에라니(25)씨는 "2013년 K-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가수들이 읽은 책들 위주로 읽기 시작했다"며 "K-팝에선 경험하지 못한 한국인의 문화, 사고방식, 특성 등을 책을 통해 더 알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원 디나 찬드라(26)씨는 "한국 소설 여러 편이 번역된 2012년부터 한 달에 한두 권씩 읽고 있다"며 "처음엔 K-드라마로 만들어질 소설을 미리 찾아 읽다가 한국 문학에 매료됐다"고 했다. 딘다 푸트리(25)씨는 "요즘엔 소설을 넘어 자기계발서도 많이 읽는다"고 전했다.
독서열 높은 인도네시아 젊은 층 상대 전략 필요
인도네시아는 연평균 독서량이 2권일 정도로 독서 인구가 적다. 다만 인구가 많아 시장 규모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독서열이 높다.
인도네시아 도서 판매량은 2018년 이후 매년 10%가량 성장하고 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더 늘어나는 추세다. 주로 소설과 만화를 많이 읽고 자기계발서도 차츰 주목 받고 있다. 한국 책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커졌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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