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의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로 7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소연 씨는 남한에 도착한 이듬해 아들도 데려왔는데요.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남한에서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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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던 노재완 기자의 사정으로 제가 잠시 다시 인사드립니다. 박소연 씨와 함께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소연 씨! 설날 잘 보내셨습니까?
박소연 : 잘 보내습니다. 잘 보내셨어요?
진행자 : 소연 씨도 남한에서 이제 꽤 여러 번 설을 지내시죠? 몇 번 째 설이었어요?
박소연 : 여섯 번째 설이네요.
진행자 : 매년 설을 맞는 느낌도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박소연 : 많이 달라지죠. 외로움이 덜 해져요. 처음에는 설에 누구 만나기도 싫고 고향 생각도 많이 했어요. 지금은 누가 나오라고 해도 바깥 날씨 보고 추우면... 집이 최고야 이러면서 안 나가고요. (웃음) 아직도 고향 생각 많이 나지만 맨날 내가 울어서 부모님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이제 여유가 많이 생긴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드네요?
박소연 : 맞죠.
진행자 : 설은 남북이 함께 지키는 민속 명절이지만 지내는 풍경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남한은 설하면 떠오르는 것이... 귀성길 막히는 고속도로, 명절 음식, 고부 갈등...? (웃음)
박소연 : 북한은 설날이 설사 날입니다. (웃음) 일 년에 한번 목에 때를 벗기는 날이라고 하거든요. 콩을 들어간 송편을 많이 하니까... 절편은 쌀 한 킬로 해봤자 회령 사발에 한 사발 밖에 안 나오는데 송편은 2킬로 하면서 콩을 넣으면 진짜 양이 많거든요. 그래도 설사 날이라도 늘 설날만 같아라 그러죠. (웃음)
진행자 : 남자 분들은 설날은 술날이라 하시던데...
박소연 : 안주를 바닥까지 먹는다고 남편 손님들을 안주 돌격대라고 하기도 합니다.
진행자 : 술날이든 설사날이든 설날은 즐거운 날입니다. 아... 혹시 북쪽도 세배 하시나요? 세배하고 나면 세뱃돈도 받습니까?
박소연 : 세배도 하고 똑같이 세뱃돈도 줍니다. 대신 액수는 크죠. 5만원 권 지폐(약 50달러 정도)가 나온 뒤로는 오 만원 지폐 한 장을 많이들 주는 것 같아요.
진행자 : 그래서 부담이 크다니까요! 아이들 세뱃돈이 엄마 지갑으로 들어가는 것도 비슷한가요?
박소연 : 당연하죠. (웃음) 탈북 전 나는 큰 집 며느리로 살다보니 설전이면 가족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친척들이 와 세뱃돈을 주면 쓰지 말고 엄마에게 바치라고 미리 암시를 주죠. 그러다나니 아이들은 세뱃돈을 받아도 당연이 엄마에게 바쳐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우리 아들도 북한에서는 당연히 그런 것으로 알고 살았는데 남한에 오니 아이의 순종심도 변해 갑니다. (웃음) 올해는 엄마에게 하나도 안 주고 자기가 챙겨요.
진행자 : 영, 서운하셨겠는데요?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박소연 : 우선은 서운하더라고요.
가족이 아들과 저, 단둘이다 보니까 설 즈음이 되면 지인들과 만나서 식사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번에는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같이 일하던 분이 식사자리에 초청해서 갔는데 아들에게 세뱃돈은 미리 준다고 5만원짜리를 꺼내들었습니다. 저는 끝나면 당연히 나에게 줄 것이라고 타산했는데 그리고는 끝이었습니다. (웃음)
그 다음 며칠 뒤엔 우리 모자를 자식처럼 생각해주시는 아버님이 오셨는데 지갑에서 또 5만권 한 장이 나왔습니다. 아들은 돈을 받아들고 환하게 웃더니 지갑 속에 돈을 넣고 아무 말을 안 하더라고요.
다음 날 저녁 아들과 함께 밥을 먹는데 아들이 심각한 얼굴을 하더니 입을 드디어 열었습니다.
"엄마 나 내일 축구부 친구들과 함께 동묘시장에 가기로 했어, 거기에 가면 옷도 멋있는 것이 많고 가격도 싸대 그러니까 내 가 받는 세뱃돈은 내가 다 쓸게..." 제가 뭐라 대꾸할 말이 없더라고요. 작년에 비해 너무 변해버린 아들이 행동에 나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왕이면 엄마와 함께 그 돈으로 좋은 옷을 사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친구들과 함께 다니며 마음에 드는 옷을 사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자기 옷은 자기가 보고 마음에 드는 옷을 사고 싶다고요. (웃음)
진행자 : 어떻게 생각하면 다 컸다고 대견해할 일인 것 같은데 어머니의 마음은 다른가 봅니다.
박소연 : 항상 반반이죠. 그래도 서운한 마음이 기특한 마음보다는 크고요. 어쨌든 동묘 시장에 가서 옷을 사오긴 했습니다. (웃음) 특이한 옷을 많이 파는 곳이라는데 어디 북한에선 입을 수도 없을 것 같은 이상한 옷을 사왔습니다. 청바지는 가위로 찢은 것 같고... 그런데 이상한 건 다음날 입은 모양을 보니 정말 괜찮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입을 닫았죠.
진행자 : 남쪽의 아이들은 중학생 정도 되면 엄마들과 하던 일들을 친구들과 하려고 하고 좀 더 독립적이 됩니다. 그 나이도 점점 빨라지고 있는데요. 북쪽의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박소연 : 절대 그럴 수가 없죠. 시장에 가서도 맘에 드는 것이 있어도 좀 조르다가 맙니다. 사정이 뻔하거든요. 세뱃돈도 엄마랑 눈이 마주치면 바로 줍니다. 그걸로 쌀 사고 밥 먹고 사는데 보태야 하는 걸 잘 알거든요. 어떻게 보면 북한 아이들은 선택의 권리가 없어요. 따라야할 의무만 많습니다.
진행자 : 그렇죠. 확실히 남쪽 아이들은 권리가 많고요, 저희 자랄 때보다도 훨씬 많습니다.
박소연 : 아... 여기는 자기 자식이라고 막 때리고 욕하고 하면 안 되잖아요? 아이들도 인격체라고... 누리는 권리도 많고 지켜줘야할 인권도 다양하고요. 참 엄마 노릇하기도 힘듭니다. (웃음)
진행자 : 그건 남한 엄마들도 똑같은 심정이고요. (웃음) 전통적으로 남북 모두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컸다고 해요.
박소연 : 아니, 그게 정답 아닙니까? 내가 낳은 내 자식인데요?
진행자 : 글쎄요... 예전에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훨씬 일찍 깨이고 아는 것도, 보는 것도 많아진 이 시대에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할까요? 더 이상 단순히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지 않을까요?
박소연 : 맞는 얘기이긴 한데 그게 갑자기 받아들여지진 않네요. 그걸 인정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 같고요. 그냥 일단은 자식이지만 존중을 해줘야할 것 같습니다. 예전엔 저도 엄마가 동쪽으로 던지면 동쪽으로 가야한다, 독단적으로 생각해왔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우리 부모에게 그렇게 했던가? 그런 일방적인 독단은 사실 폭력적이었다고 생각하고요, 저도 바뀌기 위해서 노력해야겠죠.
진행자 : 아이가 올해 몇 살이죠?
박소연 : 그 무섭다는 중학교 2학년이 됩니다. (웃음) 내려놓을 것이 더 많아 진 것 같고 엄마에게 독립하고 점점 자라는 아이를 존중하도록 노력해야겠지요.
진행자 : 올해 세뱃돈의 교훈이 바로 이것이었네요.
박소연 :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진행자 : 값비싼 교훈이었습니다. (웃음)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얘기는 여기까집니다.
박소연 : 고맙습니다.
진행자 : 지금까지 박소연, 이현주였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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