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의 날 특집] 가사 노동과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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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3월, 미국 여성 노동자 1,500여 명이 궐기 대회를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다가 화재로 숨진 사건이 계기가 됐는데요, 이들은 노동환경 개선과 참전권 보장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지금은 당연하다 여겨지는 것들이 당연한 것이 되기까지, 누군가는 목이 터져라 외쳤고, 또 누군가는 아까운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문화의 차이를 경제로 풀어보는 '통통경제' 시간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진행에 권지연이고요, 오늘도 박소연 씨와 함께합니다.

기자 : 소연 씨, 혹시 3월 8일이 무슨 날이었는지 아세요?

박소연 : ‘국제 부녀절’입니다.

기자 : ‘세계 여성의 날’인데, 북한에서는 ‘국제 부녀절’이라고 하나요?

박소연 : 북한에 있을 때는 3.8절이면, 여성의 명절이라고 했어요. 북한은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데, 그날만큼은 북한에서도 남편들이 아내에게 밥을 해줍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밥을 해주는 날이라고 인식했어요.

기자 : 서구 사회에서도 옛날에는 여성이 물건 취급을 당하기도 했죠. 재산을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했고요. 그런데 여성 인권과 지위가 많이 높아졌죠. 여성이라고 해서 더 하대받는다는 느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여성보다 남성들의 평균 임금이 더 높은 것이 현실이고 여성이 많이 하는 직군들이 있습니다.

서비스업 종사자는 유독 여성이 많죠. 코로나 비루스가 전 세계를 뒤흔든 2020년. 미국에서 서비스업 종사 여성들이 실직을 경험한 비율은 남성보다 높았습니다. 지난 1월 미국에서 발생한 1,000만 명의 실직자 중 여성의 숫자가 절반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을 못 미치는 것을 고려하면, 여성 실직률이 높았던 것이죠. 그래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코로나 비루스가 여성의 일자리에 "극히 불공평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기도 했죠.

기자 : 무엇보다 여전히 가사 노동은 여성이 주로 해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하긴 합니다. 요즘 남한은 대부분이 맞벌이 부부이고, 남성들이 가사 일을 함께하더라도 ‘돕는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소연 : 한국 텔레비전 방송에는 연예인들이 자신의 생활을 공개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거기서도 남성이 요리하면, 뭔가 대단하게 보고 여성이 음식을 하면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입니다. 가사 노동은 함께하는 것이란 인식을 하도록 하고 있지만, 아직 부엌일은 은연중에 여성이 하는 것이란 인식은 여전한 것 같아요.

기자 : 남성이 가사 일을 하면 자상하다고 생각하죠. 요즘 북한은 어떤가요? 북한도 여성 인권이 많이 향상됐다고 하던데요.

박소연 : 북한도 지역별로 차이가 있는데요, 어떻게든 한국 문화를 많이 접한 지역에서는 드라마의 영향인지 확인할 순 없지만 확실히 다릅니다. 아내가 하루종일 시장에서 장사하고 돌아왔는데 남편이 집에 앉아서 점잔만 빼고 있으니까 싸우게 되는 거예요. 국가가 보장해 주는 것이 없는데 아내가 시장에 나가서 일하고 우리 가정을 먹여 살리니까 남편들이 이제는 도와야 한다는 생각하는 거죠.

기자 : 북한에도 여성 가장이 많군요?

박소연 : 북한은 90% 이상이 여성 가장입니다.

기자 : 그래요?

박소연 : 북한에서는 장사는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자는 국가에서 정해주는 직장을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죠.

기자 : 그것도 이해가 잘 안 되네요.

박소연 : 남성이 할 수 있는 장사는 제한돼 있습니다. 철물점 같은 걸 제외하면 모두 여성들이 장사하죠. 이런 상황에서 아내를 돕는 건 정말 보기 좋은 모습이잖아요. 그런데 남들이 보고 흉볼까봐 집에서 남자들이 아이를 업고 있으면 문을 걸어 잠급니다. 빨래 같은 것도 문을 걸어 잠그고 합니다.

기자 : 부끄러워하는 건가요?

박소연 : 그렇죠. 탈북자 중에서도 한국에 와서 싸우는 부부들이 많습니다. 남한에 와 있는 탈북민 남성들이 불만이 많죠.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니까요.

기자 :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통통경제’ 이 시간에 해보려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사 노동을 돈으로 환산해 볼까요? 예를 들자면, 소연 씨는 하루에 설거지는 얼마나 많이 했나요? 지금은 아들과 둘이 사니까 설거지할 게 별로 없겠지만 북한에 있을 때를 생각해보시죠.

박소연 : 하루 세 끼를 먹었으니까 하루에 너덧 시간은 하지 않았을까요.

기자 : 설거지를 그렇게 오래 했다고요?

박소연 : 설거지라는 게 그 준비 과정부터 다 들어가잖아요. 음식 재료를 손질하는 것부터.

기자 : 아, 주방일을 모두 통틀어서 말씀하신 거군요.

박소연 : 그렇죠. 또 북한은 가스레인지 켜면 불이 올라오는 나라가 아닙니다. 나무를 패서 그걸 말려서 아궁이에 넣어서 불을 때기 때문에 하루에 반나절은 부엌에 들어가 있습니다.

기자 : 자, 그러면 돈으로 한번 환산해 보겠습니다. 남한 노동자의 임금을 기준으로 해보죠. 제가 식당에서 하루에 너덧 시간씩 시간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최저시급보다 조금 높은 시급을 받았습니다. 보통 식당 주방일은 힘드니까요. 1시간당 1만 원 정도, 10불 정도가 됐습니다. 주방 아주머니를 도와서 서빙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쓰레기도 가져다 버리고... 이런 일들을 했거든요. 당시 5시간 일하고 일당으로 50달러 정도를 받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집안일에는 부엌일만 있는 게 아니죠. 청소는 얼마나 하셨나요?

박소연 : 집에서 청소를 그래도 한두 시간은 하지 않았을까요?

기자 : 집이 대궐이었나요? (웃음) 너무 긴 시간에요!

박소연 : 남한 기준으로 생각하지 말라니까요! (웃음) 수돗물 틀어서 쓰는 게 아닙니다. 강에 가서 물을 길어 와서 걸레 빨아 청소하고 아이들 씻어주면 그게 두 시간 더 걸리는 겁니다.

기자 : 제가 오늘을 위해 휴대 전화 어플리케이션을 하나 다운받아 놨습니다. ‘알바천국’이라는 것이고요. 중장년층이 시간제 일자리,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수 있는 엡입니다.

박소연 : 공개 게시판 같은 건가요?

기자 : 비슷하죠. 일을 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여기에 들어가서 조건을 보고 연락해서 일자리를 구하는 겁니다. 여기서 청소하는 일자리를 제가 찾아볼게요. 여기 있네요. 지금 보고 있는 건, 1시간당 20달러입니다. 이 기준으로 하면 아까 두 시간은 청소한다고 했으니 40달러, 부엌일 50달러와 합하면 90달러네요. 그런데 주방일과 청소만 있는 게 아니죠?

박소연 : 빨래도 하죠. 그런데 수도가 안 나오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북한은 땅 집이라고 해서... 여기로 말하면 주택인데요. 마당 청소부터 시작해서 할 일이 엄청나게 많거든요.

기자 : 지금 주방일과 청소만 계산해도 일당 90달러인데 아이가 어린 주부들은 육아도 해야 하잖아요. 이것도 시급으로 환산하면 만만치 않습니다.

박소연 : 저도 다른 북한 여성들처럼 당연히 아이를 키우며 집안일을 했었거든요. 아기를 업고 밥하고 빨래하고 그랬습니다. 남한에는 아기를 봐주는 베이비시터라는 직업이 있잖아요. 이런 사람들이 아기를 봐주는데, 한 달에 3,000달러 가까이 받는 거예요. 놀라웠습니다.

기자 : 그러면 이 모두 일을 돈으로 환산해서 노임으로 받는다면, 얼마나 받아야 할 것 같나요? 휴일도 없잖아요.

박소연 : 하루에 최소 150달러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한 달로 치면 4,500달러 나옵니다.

기자 : 이 정도면 남한에서도 고연봉에 속합니다.

박소연 : 저는 이제 이걸 어디 가서 받아야 할까요? 저는 남한에 와서 엄마들이 아기에게 일회용 기저귀 채우고 유모차 밀고 다니면서 힘들다고 말하는 걸 보면 화가 나더라고요.

기자 : 그렇게 생각하면, 여자의 적은 여자가 되는 겁니다. (웃음)

박소연 : 처음에 그랬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차원을 넘어, 가사일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하는 일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려면 사회적 제도가 갖춰지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기자 : 여성의 경제활동이 높은 국가일수록 노인 부양 부담이 적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20세부터 64세까지, 노동할 수 있는 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하는 노인의 숫자를 수치로 나타낸 노인부양률... 급격한 인구 고령화가 진행 중인 남한은 2080년이 되면 노인부양률 94.6명으로 명예롭지 않은, OECD 국가 1위가 예상됩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을 보다 높이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박소연 : 그건 당연한 거죠. 여성이 사회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이란 뜻입니다.

기자 : 그리고 여성이냐, 남성이냐가 아니라 우리가 모두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자/박소연 : ‘통통경제’

또한번의 세계 여성의 날이 지났습니다. 여성 인권을 향상시키자는 것은 모든 인간이 똑같이 존엄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지, 여성이 더 우월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존중하며 공존하는 세상, 우리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이 아닐까요. 오늘은 얘기는 여기까집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