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꾸면 로력영웅, 꿔준 돈 받아내면 공화국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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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북한에서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때문에 비상이 걸려있죠. 김정은도 지난 1월 25일 음력설 음악공연을 고모 김경희와 함께 관람한 이후로는 22일 만에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해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코로나전염병때문인지 소규모로 정치국 간부들 일부만 대동하고 나타났죠. 최고 존엄에 대한 만수무강, 신변안전 때문에 비록 간부들이 공개 장소에 마스크는 쓰고 나타나지 않았지만 극도로 조심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북한에서는 최근 장성하는 경제, 이미 실천하고 있는 변화들,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법․ 제도에 대한 정비보강, 정리정돈을 끊임없이, 실속 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금융에 대한 변화도 포함되어 있죠.

이미 중앙은행법, 상업은행법, 회계법, 보험법 등 재정금융에 대한 법을 새로 제정하거나 개정해 비록 사후적이지만 그 변화들을 제도에 반영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앙은행이 모두 하던 국가자금의 공급, 국가재정의 집행, 상업은행 역할 등을 나눠 재정과 금융의 분리를 꾀하고 있으며, 국가자금공급을 줄이고 되도록 기업들의 자율성을 높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또 각 도 은행들에 함경남도은행, 강원도은행 등 독립성을 부여해 운영상으로나마 상업은행의 역할을 높이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농업부문에서 분조관리제 하 포전담당책임제를 강화하고, 공업부문에서 기업들의 자율성과 채산성을 높이는 우리식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확대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는 분위기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금융은 올 스톱 상태였죠. 개인들이 은행에 돈을 맡기면 찾을 수 없고, 국가가 월급을 주면 그 돈은 다시는 은행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인민반장들이 집집마다 매일 문을 두드리면서 강제저축을 요구하는 것이 일상사였죠.

국가역할의 빈 공간을 메우며 생겨난 것이 바로 사금융업 돈주였습니다. 비록 불법이지만 시장에 자본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은 거죠. 지금은 그들을 '돈데꼬', 또는 '빚주'라고도 한답니다. 이들의 시련도 사실은 만만치 않았죠.

그래서 사람들은 '돈 받기는 나라 찾는 다음으로 힘들다.', '돈 꾸면 로력영웅, 꿔준 돈 받아내면 공화국영웅'이라고 했죠. 즉, 돈을 빌리는데 성공하는 자는 로력영웅, 꿔졌던 돈을 받아내는 자는 그보다 한수 위인 공화국영웅이라는 의미인데, 오죽 어려운 일이면 이런 유머를 만들어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시장경제에 대한 수십 년간의 학습효과, 시장 메커니즘에서의 경쟁의 대두, 규모의 경제의 성장 등으로 하여 장마당 금융업에서도 많은 개선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점점 더 신용을 중시하게 되고, 신뢰가 쌓이면서 이자도 낮아지고, 금융상품도 다양해져 서로 윈-윈하다고 하죠.

사람들이 국가은행도 찾고 은행을 통한 예적금, 대출도 일정부분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좀 있으면 돈을 빌려주고 받는 일이 죽음을 각오한 로력영웅, 공화국영웅들만이 하는 치열한 직업이 아닌 일상의 기능적 일이 되겠죠?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