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지난 29일 코로나 비상사태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또 공개 활동을 했죠. 10개월 만에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다시 열어 매우 이례적으로 당 조직지도부 부장인 이만건과 농업당당 부위원장 박태덕을 공개적으로 해임하는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2013년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후로는 당 정치국위원 급 고위간부를 공개적으로 처벌한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구체적인 사유에 대해선 알리진 않았지만 ‘우리 당 골간 육성의 중임을 맡은 당간부양성기지’에서 부정부패가 발생했다는 것, 김정은이 회의에서 해당 부정부패사건을 다루며 ‘비(非)당적, 반(反)인민적, 반사회주의적 행위들에 강한 타격을 가하신 다음 모든 당 일군들과 당 조직들이 이번 사건에서 교훈을 찾으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조직지도부가 맡아보는 김일성고급당학교에서 엄중한 사고가 났고, 이에 대한 책임으로 이만건이 해임된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조직지도부 1부부장으로 옮겼는데 그가 아마 부서를 요해하고 장악하는 과정에 비리가 발견돼 기강을 세우는 것으로도 평가됩니다. 박태덕은 농사준비와 관련해 책임을 지고 해임됐겠죠.
노동당 고위관료들을 공개적으로 해임해 전국에 알리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 아마도 대북제재로 북한경제와 인민생활에 큰 구멍이 생기고, 더욱이 최근 터진 코로나 비상사태로 민생고와 인민생활이 큰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해 민심을 달래고 전 사회적 기강확립과 긴장을 불어넣는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 것 같습니다.
오늘자 노동신문의 논설에서도 그 기조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우리 당의 인민적 성격을 뚜렷이 과시한 역사적 회의, 일꾼들이 세도와 관료주의를 부리고 제 살 궁냥(궁리)만 한다면 당의 본태가 흐려지는 것은 물론 혁명까지 망쳐먹게 된다’고 고급당학교 사태의 심각성을 지적했습니다.
더욱이 ‘인민을 외면하거나 인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곧 혁명에 대한 포기이고 인민에 대한 배신. 사상과 노선이나 제시하고 호소나 하는 광고당, 허수아비당을 인민은 따르지 않는다’고 까지 했습니다. 노동당 기관지가 노동당을 ‘광고당, 허수아비당’이 될 수 있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한 셈이죠.
정말 오래 살다 볼 일이다는 말도 있듯이 북한이 언제부터 이렇게 노골적인 표현을 써 가면서 당 기관지가 신성한 노동당을 비판하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는지 희한한 일입니다.
원래 오래전부터 북한에서는 노동당의 권위이자 김부자의 권위이기 때문에 노동당을 비난하거나 그 어떤 부정적인 이슈가 공개되는 것조차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노동당간부들의 이력, 주민등록문건도 따로 비밀장소에 보관했고, 인민보안성의 범죄관련 수사도 특별히 창광안전부를 통해 비공개로, 비밀리에 진행하군 했죠. 간부들 해임이나 처벌, 부정부패 관련 정보도 비밀이었죠.
물론 주민들은 노동당에 대해서 몰래 조롱하군 하였습니다. ‘장마당이 노동당보다 좋다.’ ‘고마워, 고마워, 우리 당이 고마워’ 노래가사를 ‘너희 당이 고마워’라고 하기도 했죠.
북한에서도 이것이 발전해 머지않아 북한판 ‘글라스노스찌’가 나오지 않을까요?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