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이야기]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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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전히 매우 가부장적인 북한에는 이런 속어도 있습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즉, 안주인이 자기 설자리 안 설자리를 지키지 않고 '설치면' 집안일이 안 되고, 나중에는 망한다는 뜻입니다.

이와 유사한 격언에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오른다'가 있다고 하겠네요.

요즘 북한의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김정은은 20대 젊은 혈기 때문인지 정말로 많은 곳을 시찰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만경대유희장에 가서는 일꾼들이 일을 잘 하지 않는다고 질책했고, 그 내용이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일제히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유희장 구내도로가 심하게 깨진 것을 보고 '도로 관리를 잘하지 않아 한심하다'고 지적하였고, 측백나무와 향나무들의 밑 정리를 잘하지 않았다며 '나무 주위에 조약돌을 박아놓으면 보기에도 좋지 않겠는가' 나무라기도 했습니다.

보도블록 사이에 돋아난 잡풀은 일일이 뽑으며 '설비갱신은 몰라도 사람의 손이 있으면서 잡풀이야 왜 뽑지 못하나, 유희장이 이렇게 한심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격한 어조로 말했다고 합니다.

북한 공식 언론이 지난 4월 발사에서 실패한 장거리 로켓시험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인정했고, 이번에는 전례 없이 지도자의 비판을 다룬 것을 보면 뭔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가져봅니다.

인민군 군부대들을 방문해서는 칫솔질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시범을 보여주더니, 자기가 올라가서 그 방법을 내려 보내겠으니 군인들이 그대로 하도록 하라고 자세히 지시하는 장면도 기록영화에서 볼 수가 있었습니다.

지도자의 자상함, 인민성을 보여주는 측면에서는 감동적일지 몰라도 현상을 비판적으로 대하는 언론인의 입장에서 좀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면 국가지도자가 너무 자질구례한데까지 참견한다고 할까요.

제가 평양컴퓨터대학 교수로 있을 때 만경대유희장에서 근무하는 통신 생이 있어 온 가족을 데리고 놀러갔던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학생들의 신상을 잘 파악해 신세를 지는 것이 보통 있는 일이죠.

평일이어서 그런지 유희장은 썰렁했습니다. 사람들도 별로 없고, 그야말로 우리 가족이 전세내서 타는 기분이었죠. 애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근데 사실 그날 제가 큰 충격을 받은 것은 화려한 유희장시설도, 우리들의 특권도 아니었습니다. 유희장에서 일하는 그 통신 학생이 싸온 점심 도시락이었죠.

점심식사를 같이 하기로 하고 그가 자기 밥 곽을 여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덜지도 보태지도 않고 쌀알은 한 알도 보이지 않았으며, 100% 시커먼 수수와 밀밥이었습니다. 쌀밥을 싸간 우리가 막 얼굴이 뜨끈뜨끈 할 정도였죠.

그래도 그의 도시락에서는 갓 결혼한 새색시의 정성이 느껴졌습니다. 밀밥이라도 얼마나 꽉꽉 눌러 담았던지 알루미늄 도시락이 터질 지경이었죠.

당시 고난의 행군 때 안 일이지만 닭도 밀만 며칠 주면 알을 낳지 못하고 영양실조를 앓다가 굶어죽는다더군요.

이런 악조건에서 유희장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고, 전체 인민이 자기 고향을 뜨지 않고 가꾸고 있습니다. 유희장이 잡초더미로 변하지 않고, 유희시설이 녹슬어 무너지지 않은 것도 사실 기적이죠.

물론 잡풀도 없어야 하고, 나무주변에 옥돌이 있으면 더 좋겠죠. 군인들이 아침에 일어나 김정은 대장동지께서 하는 방법으로 칫솔질도 하면 좋고요.

그러나 그들에게 훨씬 더 긴박한 것, 그들이 김정은대장에게 더 절실히 바라는 것은 잡초가 있다고 꾸지람하거나 100% 통 밀밥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이밥에 고기 국을 먹을 수 있도록 나라를 이끌고 정책을 폈으면 하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