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혁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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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이 드디어 자기의 본심을 드러내고 있죠. 미국에서 코로나에 더해 흑인관련 인종갈등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약간의 곤경에 처한 타이밍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모습입니다. 언젠가는 치고 나올 텐데 지금을 적기로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김여정 1부부장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참 이례적입니다. 과거 수령유일영도체제, 유일사상체계에 전면 배치되는 김씨 가계의 한 사람을 수령의 역할과 비슷한 수준에서 띄워주고 내세우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아마도 지금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김여정의 기에 눌려 유명무실해진 모양입니다.

김여정이 전면에 나선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대남이든, 대미 메시지든 김정은 대리인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그 무게감, 효과를 최대한으로 만들 수가 있겠죠. 그리고 남한에도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있어 메시지의 생동감이나 파괴력도 극대화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남존여비사상 때문에 남자들이 여성에게서 꾸지람을 듣거나 여자상사 밑에서 일하면 '재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아마도 여자 1부부장한테 남한정부가 야단을 맞는 창피한 이미지를 연출하려는 의도도 있을 겁니다. 옥류관 주방장을 내세워 비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죠. 최대한 창피를 주려는 겁니다.

개인숭배, 개인우상화, 지방주의, 가족주의를 철저히 배격하는 북한에서 이렇게 까지 무리하면서 김여정을 내세우는 것은 김정은 건강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시한부 인생을 산다고 하기까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김여정의 리더십, 2인자의 자리를 확실하게 하려는 의도도 엿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고 리스크가 크면 클수록 그에 따르는 비용도 올라갈 수밖에 없겠죠.

김여정이 자기 입으로 '남조선 것들과 결별하겠다.'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번 대적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는 등의 말들을 쏟아내면 한번 쏟은 말은 다시 주어 담기가 어렵고, 또 이런 이미지가 각인될 것이고, 한번 뱉은 말은 곧 수령의 말이기 때문에 반드시 집행해야 해 많고도 많은 리스크, 대가를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남존여비가 매우 강한 북한에는 여성과 관련된 유머 등이 여러 가지가 있죠. '암탉이 꼬기요 하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가 차에 타면 재수가 없다. 치마 두른 위원장 밑에서 고생이 많다. 변소와 가시집은 되도록 멀리 있어야 한다. 가마뚜껑 운전사. 내무부장관.'

여자가 차에 타면, 특히 조수석에 타면 재수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일하던 기관의 운전기사는 그때만 되면 자꾸 차를 긁거나 사고를 치더라고요.

표현들 중에는 '가정혁명화'라는 것도 있습니다. 간부들이 자기 여편네 교양, 다루기를 잘못해서 집안에서 부부싸움이 잦다거나, 자식들이 사고를 치거나, 부인들이 권력남용을 하거나 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일부 지나칠 경우 간부들 본인이 해임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김여정에 대한 가정혁명화는 지금 그의 남편의 힘에 닿는 영력이 아니겠죠?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