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고 병든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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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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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에도 개와 관련된 표현과 특히 욕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오죽했으면 나쁜 단어나 표현을 지양하고 평양문화어를 잘 살려 쓰도록 선전하는 유명 예술인들의 만담에도 개가 단골 주제로 등장하겠습니까.

사실 개만 들어가면 대체로 나쁜 용어들, 부정적인 표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개가 북한에서 요즘 또 다른 수모를 당하고 잇다네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나라가 어려운데 평양시민들 속에서 애완견을 기르는 것은 부르주아 사상에 물든 행위, 자본주의 요소로 규정하고 강력 단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민반들에서는 애완견 키우는 집들을 모두 장악해 그들이 스스로 바치게 하거나 강제로 잡아다 처분하고 있다죠.

또 일부는 중앙동물원에 보내고 일부는 단고기집에 팔아넘기거나 잡아먹고 잇다네요.

저도 평양에서 살 때 애완견을 키운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창 유행하기 시작했었고, 많은 사람들이 애완용 보다는 돈벌이 목적으로 키웠죠. 좋은 종 수컷을 키우면 종부대가로 달러를 받고 암컷은 새끼를 낳아 분양하면서 외화를 벌었습니다.

키워보니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사람도 먹지 못하는 고기를 먹여야 하고, 집안 가구는 당 망가지고, 산책도 시키면서 힘들게 쫓아다니기도 해야 했죠. 아프면 자체로 주사도 놓고, 그리고 새끼를 배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저절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시 애완견을 허락한 것은 김정일 덕분이었습니다. 개를 키우게 해. 뭐가 문제야. 그리고 자기가 직접 키우던 개들을 최룡해를 비롯해 측근들에게 선물도 해줬죠.

최룡해가 과오를 범해 혁명화를 할 때 그래도 끝까지 그 선물 개는 안고 가 키웠다고 했죠. 그리고 굶주림 속에 사람도 먹지 못하는 소시지를 개에게 먹이는 것이 주변 마을주민들에게 띄워 혼쭐을 당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애완견들이 사회주의의 적, 부르주아의 온상, 자본주의 날라리로 다시 찍히게 됐군요.

북한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썩고 병든 자본주의 세계를 '개 같은 세상'이라고 불렀습니다. 돼지에게 옷을 해 입히고, 우유로 목욕을 시키고, 개에 다이아몬드 장식을 달아주고, 등을 소개하면서 말이죠. 정말 어디가 더 썩고 병들어 있을까요?

잠간 인민들에게 사소한 낙을 선사했던 것도 이제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애완견을 배척하는 정책을 선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기야 오랜 기간의 대북제재, 더욱이 코로나 사태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자 인민들 속에서 불평, 불만이 증폭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반 평민들, 지방주민들은 옥수수 국수도 마음껏 먹지 못하는 형편인데 평양의 부유한 가정들에서는 개에게 매끼 고기를 사료로 먹일 것이니 그 사회적 괴리도 엄청 크겠죠.

그러나 외부세계에서는 요즘 페트문화가 엄청 발달하고 있습니다. 동물을 학대하거나 마음대로 하면 벌금을 물리고 심지어 감옥에도 가죠. 북한사회가 이를 이해하려면 꾀나 시간이 걸리겠죠?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