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에 정책이 있으면 우리에겐 대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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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요즘 북한에서는 이런 유머도 유행한다죠. '노동당이 정책을 내놓으면 우리에겐 대책이 있다.'

주민들을 통제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당이 정책을 제시하면 주민들은 그에 대응한, 그를 피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 적응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주민들의 귀신같은 대책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대부분 생존과 생계, 정보유통을 위한 대책들입니다.

우선 가장 대표적인 것이 '8.3 노동자'입니다. 북한이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생겨나기 시작했죠.

원래 8.3이라는 이름은 1984년 8월 3일 김일성이 부족한 생필품을 공장에서 완제품을 생산하고 남은 부자재나 자투리를 재활용해 만들어 공급하라는 지시에 의해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만든 제품을 일명 '8.3 제품'이라고 불렀죠. 10월 5일 전기공장, 전선공장, 평양화력발전소 등 공장, 기업소들이 밀집되어 있는 평양시 평천구역에서 시범적으로 이 운동이 창조되었죠. 그리고 만들어진 제품들은 구역 직매점들에 진열돼 판매됐습니다.

또 전국의 공장, 기업소마다 이 제품만을 맡아 생산하는 8.3 인민소비품직장들이 만들어졌죠. 워낙 원자재 자투리로 만들고 질이 나쁘다 보니 8.3이라는 이름은 좀 부실한 사람, 공사, 물건에 붙게 됐고, 북한주민들의 합법적인 디스 유머 대명사가 되었죠.

그런데 이 명칭이 노동시장에도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당은 계획경제가 마비되고 공장가동률이 20-30%로 추락하자 각 단위, 공장, 기업소들에서 자체로 식량을 해결해 직원들에게 공급할 정책을 마련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지배인, 회사 사장들의 대책은 8.3 노동자를 만들어 8.3돈을 거두어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즉, 돈을 잘 버는, 또 자신 있다는 직원들을 선발해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 대신 한 달에 10만원 또는 50만원씩 바치게 한 것입니다.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장사를 해 달마다 할당된 8.3돈을 직장에 바쳐야 합니다. 그래서 인민들은 장마당경제, 시장경제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하게 됐죠.

아마도 지금 사상 최강의 대북제재를 받고 있는 조건에서도 북한내부에 아직까지 경제파탄의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간부들과 주민들의 이 8.3대책이 한몫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좀 뜸해졌지만 과거 장마당을 축소하고 달러유통을 금지시키고 공업품판매를 통제할 때마다 그리고 비사회주의 그루빠를 만들어 통제를 강화하는 정책을 노동당이 쓸 때마다 북한인민들은 기발한 대책들을 마련해 이에 대처해 왔죠.

일명 메뚜기장을 만들어 단속하러 오면 이리저리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면서 장사를 했고 외화를 쓰지 못하게 하면 외화상점이나 장마당에서 몰래 돈 장사를 하면서 버티곤 했습니다.

학교나 인민반에서 모래, 석유, 장갑, 못, 군복 등 온갖 세 부담을 안겨주면 이에 대한 시장을 형성해 돈으로 모든 것을 편하게 해결하는 대책도 세웠습니다. 오죽하면 인분 시장도 생겨났겠습니까.

농촌지원이나 적위대 같은 정기적인 동원도 돈으로 해결했고, 비사회주의 그루빠를 만들어 남한노래나 드라마를 검열하면 온갖 수단과 대책을 마련해 이를 피해왔습니다.

노동당위에 장마당이 있다는데 이에 더해 정책위에 대책이 있는 건 아닐까요?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