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아렛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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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에서는 '남조선'을 '아랫동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욕할 때는 당연히 '남조선'이라고 하지만 아랫동네라고 할 때는 사정이 다릅니다. 자기만 아는 정보를 조용히 속삭이거나 칭찬해야 할 경우 친근감을 갖고 부르는 은어입니다.

'아랫동네가 세계축구선수권대회 (월드 컵)에서 4등 했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아랫동네가 종합 7등 권에 들었어.' '아니야, 6등 했어.' '아랫동네 화장품이 최고야.' '아랫동네 전자제품이 일본과 경쟁한대.' '아랫동네가 인구 1만 명당 대학입학율이 세계 1위래.' 'LG 콤퓨터 (컴퓨터)는 어디 제품이야?' '오, 거 아랫동네 꺼야.'

약간 잘 못 전달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확한 정보입니다. 이렇게 아랫동네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기 일처럼 기뻐하면서 어깨를 으쓱이는 모습은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아랫동네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사실을 처음으로 접하고 놀란 것은 세계기록 집으로 유명한 기네스북을 통해서였습니다. '남조선'이 세계 선박수주 1위, 세계에서 쌍둥이가 제일 많은 마을은 전라남도 여수 중촌, 세계 최대의 합동결혼식은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3만 5,000쌍의 결혼식 등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관련 강연을 듣고 고 정주영현대회장에 대한 자료를 보면서 또 한번 아랫동네에 대한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강연에서는 '남조선'의 한 기자가 정주영 회장에게 '김정일을 왜 김 위원장이라고 부르십니까?'라고 질문하자 '남들이 다 그렇게 부르지 않느냐'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신상자료에는 존경하는 명인은 누구,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뭐, 취미는 뭐, 이렇게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북한의 관료들에게 '우리 현대그룹의 건설은 세계가 알아줍니다'라고 자랑했던 대목도 눈에 띄었습니다.

남한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자 김정일이 노발대발하며 '정상회담은 내가 승인해서 가능했다. 남한의 정치권과 방북자들이 나를 얼마나 추앙했는지 알려주라'고 지시해 열린 특별강연을 통해서도 남한의 모습을 조금 상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받은 충격 중의 하나가 '청와대에 경애하는 장군님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의문과 호기심은 둘째 치고 제가 반신반의 했던 것은 '남한의 경제력이 어느 정도기에 선박수주가 1위지?' '남한에서 정말 김정일을 위원장으로 호칭할까?' '청와대에 김정일 초상화가 걸려있다면 통일은 멀지 않았네.' '남한사람들은 모두 각기 숭배하는 명인, 좋아하는 취미도 있나?' 뭐 이러루한 것이었습니다.

외국에 출장나올 때면 비행장과 관광지 곳곳에서 들리던 '낯익은 조선말,' 명승지 가는 곳마다 차고 넘치던 '남조선' 사람들, 피는 물보다 진한지 그들을 볼 때마다 혈육의 정이 느껴졌고 말을 걸고 싶었습니다. 싱가포르에 살 때는 '남조선' 드라마에 푹 빠져 몇십부짜리 영화를 하루 종일 본 적도 여러 번 됩니다. 이런 것들이 대체로 저를 포함한 북한사람들이 접하는 아랫동네에 대한 이해입니다.

지금 그 아랫동네에서는 또 하나의 역사적인 '사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88올림픽, 2002년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 이어 이번에는 G20정상들이 모여 세계경제의 회복과 금융질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G20 (Group 20)란 세계선진국들인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의 G7회의와 러시아가 포함된 G8외에 신흥경제국들인 중국,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메히코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토이기 (터키) 등 11개국과 유럽연합 (EU)을 포함하여 만든 세계최대 정상들의 경제논의 협의체입니다.

이 나라들은 세계경제의 85%, 교역량의 80%,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아랫동네는 아시아에서 처음, G8이 아닌 나라 중에서도 처음으로 의장직을 맡고 이번 회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가발을 만들어 팔고 간호사를 수출하던 최빈국 한국이 지금은 '한강의 기적,' 세계의 기적을 이뤄내 선진국들과 신흥국을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셈이죠.

아랫동네의 자랑은 이것뿐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인터넷이 가장 발달한 나라, 교육열과 교육수준이 최고인 나라, 삼성의 메모리 반도체를 비롯하여 세계시장점유률 1위를 차지하는 상품이 120개가 넘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입니다.

밝은 빛에는 항상 그늘이 따른다고 할까요, 아랫동네에는 안 좋은 일, 골칫거리도 많습니다. 출산율 세계 꼴찌, 자동차 사고율은 OECD 최고를 '자랑'합니다. 이 보다 북한사람들에게 더 충격적인 것은 남한의 역대 대통령들이 대부분 불운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현대 한국의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와이에서 씁쓸한 말년을 보냈고 오늘의 경제기적을 가능하게 했던 '잘 살아보세, 새마을 운동'의 지도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측근의 총에 맞아 사살되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강원도 산골에서 2년을 '유배생활'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부정비리로 수억 달러의 추징금을 내고 있습니다. 평양을 방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향마을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습니다.

이외에도 우리의 상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많은 일들이 아랫동네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명백한 것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절대로 3대 세습을 할 수 없으며 법을 어기면 그들도 감옥에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